[Movie 100] 마지막 테스트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8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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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다 끝난 거 아니었어?'



마법사는 시험장 넘버가 적힌 응시서류를 받아 들고는 황당해했다. 세 가지 시험을 모두 통과하고 보너스 문제까지 통과했는데 또 테스트라니. 다행히 서류 봉투에는 'Last Test'라고 적혀 있었다.



'Last라고? 마지막의 시작이겠지. 믿을 수가 있어야지.'



마법사는 투덜대며 서류에 적힌 시험장 넘버를 따라 501호실 앞에 도착했다. 마법사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자신의 비관적 전망과는 다르게 이번이 제발 마지막 테스트이길 바라며 501호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마법사의 눈앞에는 한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봄의 여신의 아름다운 나신이 빛나고 있었다. 아니 불타고 있었다.



"기다렸어요. 세 가지 시험을 모두 통과하셨더군요. 축하드립니다."

"오랜만입니다. 봄이라니. 대체 얼마 만인가요? 그런데 출제자가 직접 시험문제가 되는 건 반칙 아닌가요? 이번 시험은 대체 뭔데 그렇게 벌거벗고 계신 거죠?"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은 사랑이죠."



마법사는 봄의 여신의 빛나는 나신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글이글 불타는 여신의 나신에 조금만 가까이 가도 온몸이 불타버릴 것만 같았다. 마법사는 여신의 나신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물론 나신이라는 것을 본 적이 언제인지 마법사는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그의 기억은 모두 고독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여신의 눈과 마주쳤다. 여신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어서 나를 안으라고. 마법사는 일렁이는 여신의 눈빛을 피하지 않은 채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이제 마지막이에요. 마법사님. 오래 참은 그 시간들의 마지막이랍니다."

"하지만 그러면 저는 불타겠죠."

"그래서 시험이죠."

"아니요. 이건 저만의 시험이 아니랍니다."



불타는 여신의 눈길을 피하지 않고 있던 마법사의 눈에서 검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마법사의 오랜 외로움이 녹아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검은 눈물은 마법사의 전신을 타고 흘러나가 501호실 전체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켜켜이 쌓인 마법사의 외로움이 모두 녹아내리면 501호실뿐만 아니라 하나의 대륙이 모두 그의 눈물에 잠겨 버릴 것이다. 그러면 불타는 여신의 몸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멘탈이 대단하시네요. 하지만 저의 멘탈은 엘리멘탈(elemental)이라 광포하답니다. 그러니 이제 피하시죠. 더 녹아내리면 당신은 나의 눈물 속에 잠겨버릴 거예요. 물거품으로 사라지게 될지 몰라요. 어서 저를 외면하셔요."

"마법사님은 역시 물이고 얼음이군요. 그래서 눈물을 흘리지만. 저는 불이고 빛이랍니다. 그러니 내가 흘리는 건 눈빛. 기다리다 모두 타올라버린..."



여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불꽃 같은 눈빛들이 여신의 눈에서 피어올라 허공을 가득 채우더니 마구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불꽃놀이가 벌어진 듯, 차오르는 검은 눈물 위로 타오르던 눈빛들이 반짝이며 부서져 내렸다. 대지의 여신은 완전히 태워 재가 되어버릴 작정인 듯 모든 열정을 타오르는 불길로 뿜어내며 마법사에게 말했다.



"이것이 나의 사랑이에요. 이것이 나의 마음이에요."



튀어나온 불꽃 중의 일부가 마법사의 눈에 날아와 꽂혔다. 그러자 마법사의 눈에서 흘러 내리던 검은 눈물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501호실에 차오르던 마법사의 눈물들 위로 붉은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린 선홍빛 색깔의 붉은 봄꽃들이. 꽃들을 바라보며 마법사는 답했다.



"이것은 나의 외로움입니다. 이것은 나의 삶입니다."



여신과 마법사는 한 발짝도 서로 다가서지 않은 채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말 없는 고백과 소리 나지 않는 연가를 불렀다.



탈 거면 다 태워야지요.
타다 남은 동강은 쓸 데가 없으니까요.



차오르는 마법사의 검은 눈물과 폭발하는 여신의 불타는 몸이 격렬한 상호작용을 일으키자, 땅이 진동하고 바다가 요동쳤다. 둘의 대치가 이대로 계속되다간 세상이 붕괴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상대를 끌어안을 수 없었다. 누군가는 사라지고 말 테니까. 불이 꺼지든 물이 증발하든. 대치가 절정으로 치닫자 마침내 마법사가 말했다.



"졌습니다. 눈물을 거두겠습니다."



마법사가 패배를 인정하자 501호실에 차오르던 마법사의 검은 눈물이 말라 들기 시작했다. 일부는 붉은 꽃과 함께 벽에 물들어 벽지의 문양처럼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봄의 여신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테스트까지 통과하셨네요."

"그러면 저는 하늘과 산과 비바람을 따라 고독한 여정을 계속 이어가야겠군요."

"마법사님의 운명에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깃들거든 언제든 저를 찾아오세요. 빛나고 있을 테니. 저도 계속 기다리겠습니다."



타오르던 봄의 여신은 마법사에게 합격증이 담긴 봉투를 내밀었다. 그리고 어둔 밤 속으로 사라졌다. 이것으로 마지막 테스트가 끝이 났다. 삐그덕 하고 501호실의 문이 열리자 마법사는 여기저기 그을린 얼굴을 하고 501호실을 나섰다. 그의 손에는 봄의 여신이 건네준 합격증과 함께 미션 봉투가 들려 있었다. 마법사는 미션 봉투를 열어보고는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피할 도리가 없군. 게다가 언리미티드라니.'



미션 봉투 속 지령문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글쓰기 유랑단 언리미티드>





_ 마법행전 2부 3장 <글쓰기 유랑단 언리미티드> 버전의 서막


[위즈덤 레이스 + Movie100] 069. 엘리멘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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