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242
이름에 자리잡은 뿌리를 뽑지 못한다면 아무리 거대한 부귀권력을 가볍게 여기고 한 바가지의 물을 달게 여길지라도 결국 세속의 감정에 떨어진 것입니다. 충동적인 객기가 조금이라도 사라지지 않았다면 아무리 세상에 혜택을 주고 이롭게할지라도 결국 군더더기의 재주일 따름입니다.
名根未拔者 縱輕千乘̖甘一瓢 總墮塵情 客氣未融者 雖澤四海̖利萬世 終爲剩技.(前 64)
멋있지만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숨을 콱콱막히게 하는 고지식한 표현이기도 하다. 좋은 의도 때문에 그거 실천하려다 몸살이 나고 주위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위와 같은 표현을 뜻대로 받아들인다면 명예에 대한 기대와 감정적 동요를 아주 쪼금이라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종교적 추종자들에게서 많이 드러난다. 원수를 제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추종자들은 금욕적인 삶과 박해를 명예로 여겼고 지장보살은 지옥의 단 한 중생이라도 구제하지 못하면 스스로가 성불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완전 미션임파서블이다. 그들에게는 타자에게 분노(감정적 동요라는 客氣)하거나 자랑하고 인정(이름값이라 부르는 名根)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을 뿐이다. 그래서 맥락적 이해가 중요하다.
자신의 신념에 확신이 선다면 그렇게 행하고 스스로의 삶에서 반성과 발전을 추구할 뿐이다. 그런데 그 신념을 이해하지 못한 다른 사람에게 이게 좋다고 강요한다면 폭력과 부조화를 일으킬 뿐이다. 감화는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에서 빛이나는 것이다. 종교가 타락하는 이유는 가르침을 지도 믿고 이해하지 못하면서 강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