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선수에게 '국가'를 위한 희생을 강요하지 마세요.

in #kr7 years ago

마리아 할머니가 조용히 물었다.
"이번에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너와 같은 도시 출신이야?"
황영조가 삼척 출신이라는 것을 알 턱이 없는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감격에 겨워 외쳤다.
"중요한 것은 그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말없이 따뜻한 맥주만 마시던 콜베르크 할아버지가 한마디 했다.

"나치 시대에 독일 사람들도 그랬어."
아직도 그 말이 잊히지 않는다.

이정모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中

 평창올림픽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시끌시끌합니다. 사실 저는 올림픽 개회식 날까지만 해도 정말 1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개회식 이후 경기가 시작되니 관심을 가지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평소 애용하는 카톡, 네이버, 옥수수에서 올림픽 관련 뉴스, 영상 등의 콘텐츠로 온통 도배가되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대부분 스포츠가 그렇듯 관심을 두고 보게 되니 또 흥미가 생겼습니다. 평소는 알지도 못했던 컬링의 규정을 찾아보고,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 옷의 기능을 알아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중계방송을 보며 조금씩 불편한 점들이 생겼습니다. 그중 하나는 서이라 선수의 1000m 동메달에 대한 설왕설래였습니다.  서이라가 임효준의 길을 막아서 치고 나가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임효준을 보내주고 본인은 보다 쉽게(?) 은메달을 땄었어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서이라가 아니라 황대현이 결승에 올라갔어야 한다는 말까지 합니다.

 정말 그랬어야 했을까요? 임효준보다 기량이 달리는 서이라는 임효준을 보내주는 작전을 써야 했을까요?
단체전이 아닌 개인전에도 같은 국가 선수 2명 이상이 출전하면 상대적으로 실력이 좋은 선수를 위해, 실력이 좋지 못한 선수가 작전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긴 합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메달 획득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관습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래야만 할까요?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입니다만 정말 국가를 위해 본인의 성적, 메달이라는 결과를 포기하는 게 합리적일까요? 엄청난 경쟁을 뚫고 국가대표가 되었으며 최소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식상하지만 피땀을 흘려가며 연습을 했을 겁니다. 그런 그가 더 잘하는 선수를 위해, 금메달 획득을 통한 국가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희생을 하는게 관습이라는 명분으로 당연시되어야 하는 걸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들의 훈련을 위한 비용에는 나라의 세금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것이 개인의 희생을 정당화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켜보는 국민들이야 잊혀질만하면 한 번씩 돌아오는 동계/하계 올림픽이지만 선수들에게는 그렇지 않을겁니다. 언제 또 출전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그야말로 꿈의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나라 선수이지만 개인전 경기에선 경쟁자 중 한 명입니다. 선수 인생에 또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꿈의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은건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을까요?  그런 그들에게 '다음엔(4년 혹은 그 뒤에) 너를 위한 무대를 만들어줄게'라는 말로 희생을 강요하는건 매우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도 최근 전체적인 추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보다 선수 그 개인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금메달 혹은 메달 자체를 따지 못하더라도 결과에 관련 없이 진심어린 격려와 축하를 건내는 모습입니다. 대통령 축전의 변화도 그 방향성과 일치합니다.  “나라의 명예”→“사랑합니다”…대통령 올림픽 축전, 이렇게 변했다.

올림픽은 새삼스럽지만 해당 종목 선수들이 그 주인공이며 그들의 축제입니다. 국민들은 그들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나, 너무 나아가 그들에게 국가를 위한 희생을 강요하진 않았으면 합니다. 너무나도 새삼스럽지만 선수들은 무엇보다도 선수 본인을 위해 피땀을 흘립니다. 국민들을 위해 연습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어렵겠지만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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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씀입니다. 이번에 매스스타트 종목에서도 정재원 선수가 이승훈 선수 금메달을 위해 희생한 것 같아, 이승훈 선수의 금메달은 진심으로 축하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게 봤네요.

제가 하고싶은 얘기를 딱 정확히 해주셨네요^~^;;

동감합니다. 사람들은 정재원 선수가 '금빛 조력자'라며 엄지를 치켜 세우고 있는데, 정재원 선수 본인도 정말 만족한 레이스였을지는 의문이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훈련비용이라든지
연금 문제라든지
국민들의 인식 문제라든지
사실 좀 복잡한 문제긴 하지만 개인전이라면 온전히 개인으로서 그들의 경쟁을 지켜보고 응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완전히 자유로울순 없겠지만, 말씀주신대로 적어도 개인전 만큼은 전체/단체가 아닌 개인을 응원했으면 합니다.

리스팀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공감합니다.
기량에 상관없이 모두들 최선을 다해 임했을텐데 이런 말들이 오가서 안타깝네요.

"나치 시대에 독일 사람들도 그랬어."

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인데....
한쪽으로만 쏠린다는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경각심을 가지게 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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