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금의 일기
20세기의 여름, 일기 담당 젠젠입니다.
수요일은 정말 믿을 수 없을만큼 바빴다. 광희 작가님이 프랑스에서 만난 승희님은 오전부터 20세기 소년에 머물며 스팀시티와 자신의 그림을 맞대어 보았다. 같은 그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아있었지만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아직은 불분명하다. 정해진 유일한 건 내년 9월 승희님이 사는 닐에서 있을 유럽 최대 규모의 플리마켓을 가서 참가하는 것. 3년 만에 한국을 왔다는 승희님을 만나기 위해 그 친구들이 시간대별로 모였다. 춘자의 학교 선배인 동수오빠와 그의 여자친구는 벌써 3주 째 방문 중이다. 언니는 지방에 살아서 일주일에 한 번 서울에 올라와 데이트를 하는데 장소가 번번이 20세기 소년인 것이다. 어머니와 싸우고 기분이 상한 푸줏간 사장님은 잭다니엘을 보틀로 시켜 킴리님과 마신다. 1층에는 맥주와 블랙러시안을 먹는 커플이, 지하에는 맥주와 모스코뮬과 감자튀김, 동글이 카프레제를 시켜 먹는 커플이 있다. 늘 화이트 와인을 마시는 인근 패션회사 사람은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마신다. 영화판에 있는 작가님 지인 둘은 테라스에서 젠젠카세를 마고 진토닉을 진 샷을 추가해서 연거푸 마신다.
"젠젠카세 맛이 참 젠젠하네요. 근데 젠젠이 뭐죠?"
"젠젠은 바로 접니다."
젠젠을 설명하기 <어쩌다, 크루즈> 책을 가져가 표지를 보여줬다 판매까지 이어졌다. 팔 생각은 아니었다만...뿌듯. 이 날 우리는 최고매출을 올렸고 마감을 한시간이나 했다.
내 전 회사 동료들과 약수역 근처 마라탕집에서 점심을 같이 먹고 20세기 소년으로 같이 갔다. 반차를 쓴 그들과 지하에서 한가로이 낮술을 했다. 전 날 화이트 와인이 다 팔린 탓에 갓 입고된 와인은 덜 시원했만 얼음통으로 최대한 칠링을 시켰다. 와인 잔에 마카로 그림을 그리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지하에는 작업을 하는 택슨님 외에 한 명의 손님이 더 있었는데 한참을 떠들다 보니 그가 춘자 옆에서 반갑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젠젠, 누굴 거 같아?"
워낙 오랜 친구라 서로의 지인은 다 아는데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럼 스팀시티 사람인가? 머릿 속에 두 개의 닉네임이 떠올랐다.
"나루, 나루님이야!!!!!!!."
내가 머리 굴리는 시간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춘자는 먼저 답을 말해버렸다.
"세상에!!! 나루님이라고?????우와 우와 반가워요!"
나루님이 넌지시 오겠다는 말을 하셨기에 언젠가는 올거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실제로 오시고 그 정체를 순순히 밝혀주신 것에 우리는 모두 감동했다.
"아래에 계실 때 부터 봤는데 조용히 있다 가시려고 했던 거 아니였어요?"
"그럴려고 했었죠."
"근데, 왜 마음을 바꾸신거예요?"
"노래...노래요. 오는 길에 들었던 노래가, 여기에서도 플레이 되고 있었거든요."
목요일에 플레이 리스트 선정한 사람 누구야? 무지막 칭찬합니다. 비록 나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젠젠카세를 만들고 설거지를 하느라 나루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꽁꽁 숨어있던 그가 불쑥 우리에게 나타나주고 오랜 시간 이 공간에 머물다가고 다음을 기약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벅찼다. 다음엔 꼭 젠젠카세를 드세요! 술 약하게 말아드릴게요♥ 아 근데 , 그 노래 제목이 뭔가요?
금요일엔 낮부터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듯 바빴다했다. 킴리님의 감사한 기증으로 우리 모두 b&b를 기쁘게 나누어 마셨다. 승희님이 떡볶이를 쏘셔서 저녁은 떡튀순에 먹다남은 김밥전, 먹다남은 족발을 곁들였다. 2일 동안 바빴던 것과 달리 오늘은 한가한 편이었다. 그래도 젠젠카세 2잔, 3잔 주문이 맞물리고 맥주도 근근히 따르긴했다. 안주 주문이 고작 1개 였어서 유난히 더 한가했다. 광희 작가님이 영업으로 맥캘란 보틀을 판매해서 손님이 없던 것 치고는 선방했던 하루. 요 며칠 과중하게 일하고 술을 마셨어서 그런지 참으로 피곤하다. 내일도 지인들이 오니까 잔뜩 술을 마시고 모레는 아무것도 안하고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