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2(일) 『소명문선 昭明文選』과 우리역사
삼국지 위나라의 전략가 사마중달이 공손연을 공격해서
멸망시켰다는 이야기를 어제 했다.
싸움이 일어났던 장소가 유명한
요동군(遼東郡)에 속한 '요수遼隊현' 과 '양평襄平현' 인데
여기서 '요수遼隊현'에 사용된 '隊'는 '통로'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요수遼隊현'은 '요遼'로 통하는 길목에 있는 현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중국의 역사기록을 통해 위치를 확인한
'요양遼陽현'은 산서성 진중시 좌권현을 말한다.
이건 중국의 역대 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고
중국인들도 부정하지 않는다.
다음이 중요하다.
중국 남북조 시대에 남조 양梁에 소명태자(501년 ~ 531년)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이 문학에 조예가 깊어서 [소명문선昭明文選]이라는 책을 편찬했는데
그 책이 대단한 평가를 받았던거 같다.
조사를 해보니
『소명문선 昭明文選』은 선진先秦 시대부터 제齊나라와 양梁나라에 이르는 수백 년 사이의 작품 700여 편을 수록하였다.
당 唐나라 과거 시험에서 『문선 文選』을 중시했기에 당 唐나라 선비들은 이를 필독서로 삼았고, 이백李白, 두보杜甫, 한유韓愈 등의 창작 또한 모두 『문선 文選』의 혜택을 깊이 입었다.
선진시대란 진시황이 통일을 하기 이전의 시대이니 기원전 220년 경이다. 후대 사람들은 그 작품을 감상하기에 앞서 해석하는 능력이 있어야 했기에 주석이 필요했다.
그래서
< 六臣註文選(육신주문선)>이라는 것이 등장한다.
《문선(文選)》에 당나라 시대 이선(李善)을 포함한 6명의 학자(이선, 여연제, 류량, 장선, 여향, 이주한)가 주석을 단 '六臣註文選(육신주문선)'은
1016년 송나라 때 처음 출간되어 문학 연구의 표준 교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6명 중에서도 '이선(李善)'이라는 인물이 유명했다.
라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당나라 과거필독서였다는 이 책에 실린 내용이다.
宣王薄伐,猛鋭長驅,善曰:魏志曰:景初三年,遣大司馬宣王征淵,傳首洛陽。
선왕(宣王, 사마의)이 위엄을 갖추어 정벌하니,
사납고 날카로운 기세로 멀리까지 거침없이 진격하였다.
(선 善 주석: 『위지 魏志』에 이르기를, "경초景初 3년에 대사마 선왕을 보내 공손연을 정벌하게 하니 그 머리가 낙양 洛陽에 전해졌다"라고 하였다.
師次遼陽,而城池不守,桴鼓一震,而元㐫折首。
善曰:漢書曰:遼東郡有遼陽縣。
군대가 요양遼陽에 이르자 성城과 못池을 지켜내지 못하였고,
북채로 북을 단 한 번 울리자 큰 흉악의 우두머리(공손연)의 목이 떨어졌다.
(선 善 주석: 『한서 漢書』에 이르기를, "요동군遼東郡에 요양현遼陽縣이 있다"라고 하였다.
역사기록에는 숨겨져 있던 진실이다.
사마중달(사마의)가 공손연을 공격했던 장소는 바로,
'요양遼陽현'이었고, '양평襄平현'이었으며
『한서 漢書』에 이르기를, "요동군遼東郡에 요양현遼陽縣이 있다"
는 그 곳이다.
광개토대왕이 요동을 회복했다고 했을때 바로 그 요동이다.
요수의 동쪽이며, 요수는 바로 산서성 진중시 화순현과 좌권현을 흐르는
청장하이고 하북성으로 나오면 '장하'라고 불리는 그 강이다.
몇 년간 역사책을 뒤져도 찾을 수 없던 진실을
당나라 이후의 과거시험 필독서였던 『소명문선 昭明文選』에서 찾았다.
우리 역사해석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