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살이

in AVLE 일상2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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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행중에 초록빛에 눈이 멈췄습니다.
잎을 다 떨군 나무들 사이에서 혼자 환하게 살아 있는 겨우살이였습니다. 멀리서 보면 까치집처럼 보여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알고 보면 꽤 독특한 식물이더라고요. 다른 나무 줄기에 뿌리를 내려 기대어 살지만, 완전히 의존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광합성도 하면서 필요한 물과 미네랄은 숙주 나무에게서 얻는 반기생식물이라고 하니, 참 묘한 생존 방식입니다.

그래서인지 겨우살이를 보면 얄밉다기보다 오히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겨울 숲에서 제일 먼저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주변은 모두 잿빛 가지뿐인데, 그 한 덩이 초록은 마치 마른 장작더미 사이에 숨겨 둔 작은 불씨 같았습니다. 크지는 않지만 분명하게 살아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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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이나 들길을 걷다 보면 우리는 자꾸 큰 풍경만 보게 됩니다. 하늘이 어떻고, 바람이 어떻고, 나무가 얼마나 많은지만 보게 되는데요. 그런데 이렇게 겨우살이 하나를 발견하고 나면 풍경이 조금 달라집니다. 메말라 보이던 숲에도 저마다 버티는 방식이 있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에서도 생명은 자기 몫의 색을 끝내 지켜내고 있었습니다.

주로 참나무나 밤나무, 팽나무 같은 활엽수에 붙어 산다고 하는데, 잎이 무성한 계절보다 오히려 겨울에 더 잘 보인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다 비워진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존재가 있다는 뜻이니까요. 사람 사는 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삶이 복잡할 때는 놓치던 것이, 조금 비워지고 조용해진 뒤에야 또렷이 보일 때가 있으니까요.

겨우살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꼭 가장 좋은 자리에서만 살아남는 것은 아니라는 것, 여건이 넉넉하지 않아도 자기 빛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쁜 하루 속에서도 마음 한켠에 작은 초록 하나 품고 가셨으면 합니다.

오늘도 자기 자리에서 단단히 버티는 하루, 그리고 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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