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낭만일기] 무장해제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years ago (edited)

06


2021 06 22

KakaoTalk_20210621_173807559_01.jpg


예능 '달리는 사이'에 출연한 EXID 하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갑자기 '위아래' 직캠으로 빵 뜨고 역주행했을 때 마음껏 즐기지 못했다고. 풀어본 포장지 안 선물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아서 마음대로 기뻐하지 못했다고. 다 지나고 나서야 그거 내거 맞는데 더 즐겨도 되었는데 했다고.

내 감정의 파동이 몰아치고 세상 모든 사람이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내가 너무 멋없고 싫었다. 그 감정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 했다. 감정의 진폭이 큰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한 번 갇히면 온 세상이 모조리 변해서 잿빛 필터를 씌우고 생지옥을 만들어내니까.

감정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감정에 끄달리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억지로 그걸 없앨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진폭을 인위적으로 줄이려 할 수록 오히려 방어기제만 커진다. 그 후로는 즐기게 되었다. 슬프고 괴로운만큼 누구보다 설레고 신나고 행복할 수 있으니까. 내일은 감옥에 갇히더라도 오늘 즐겁다면 더 크게 웃고 신나하고 마음껏 일희일비 해야지.

오늘은 10년만에 머신을 배우며 알았다. 그 전에 커피머신을 다룬 방식은 모조리 엉터리였고, 커피 머신으로 커피 내리기는 어렵지만 참 재밌었다. 강 매니저님이 없었으면 우리는 한참 헤매고, 어쩌면 기계를 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무슨 운인지 계속 우리를 도와줄 전문가가 나타나서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해주신다. 그가 있어 참 다행이고 고마웠다. 처음엔 조금 그의 속내를 알 수 없어 무서웠는데 이젠 그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미소를 좋아하게 되었다.

커피를 가장 많이 내려야 하는 사람은 나인데다가 정말 맛있는 커피를 내리고 싶은데 아직 많이 부족하다. 가장 탬핑을 잘하는 건 역시 마법사님이였고, 우유 스팀을 잘 만드는 사람은 광희 작가님이였다. 아직 머신 셋팅은 완료되지 않았지만, 우리의 공간에서 우리가 내린 기계로 만든 커피가(특히 라떼가) 너무 맛있어서 순식간에 행복해졌다.

본격 머신 실습을 하기 전 잠깐 라라님은 나를 불러내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차분히 자초지종을 말하려고 했건만, 라라님의 다 이해한다는 표정에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울먹거리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우니까 라라님도 울었다. 우리가 우니까 젠젠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커피를 먹다가 대낮에 울어버리는 이상한 사람들, 우리는 서로 울면서 웃었다.

예전의 나라면 또 보통의 나라면 이런 말을 당사자에게 하지도 못 했고, 조용히 혼자 생각하다가 서서히 멀어지고 나서 후회를 하며 자책했겠지. 소속감, 이건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나의 과업이자 아킬레스건이다.

그런데 굳이 굳이 바쁜 와중에 이토록 소심하고 비합리적이고 찌질한 마음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잠시 멈춰서 내가 슬픈 게 싫고 즐겁기만 하면 좋겠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나는 나의 밉고 못난 구석까지도 괜찮다 예쁘다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손길이 너무 따스하고 감사해서 왈칵 눈물이 났다.

너무너무 다행이었다. 사실은 계속 그들을 사랑하고 싶다. 계속 여기 있고 싶고 계속 이 프로젝트를 아니 계속 계속 재미난 일을 하고 싶고 계속 계속 진심을 다해 조금의 거리낌없이 그저 그들을 사랑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흔들리고 멀어지려고 할 때 잡아주는 사람이 있었나. 내가 관성에 의해 도망가려고 재고 있을 때 탓하지 않고 업신여기지 않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또 있었나. 이들은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무장해제되었다.

7년 전 갑자기 별 이유도 대책도 없이 여행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내게 물었다. 진짜 여행 갈꺼야? 다른 건 모르겠고 세계 여행을 한 나와 세계 여행을 선택하지 않은 나 중 내가 함께 살고 싶은 건 세계 여행을 한 나야. 그거 하나면 다른 이유는 필요 없다. 난 내 마음과 감정에 휘둘려 세계를 창조하는 일희일비의 아이콘이니까.

오늘 둘러 앉아 치킨을 먹으며 음성으로 20세기 소년과 20세기 여름의 프로젝트가 탄생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새삼 내가 여기에 함께 있다는 게 감동적이고 벅차올랐다. 역시 내가 맞았어. (돌아와서 잠시나마 여행간 걸 후회하기도 했지만 진심이 아니었다) 그 여행을 떠난 덕분에 또 그 이후에 만난 인연 덕에 꼬리가 연결되고 연결되어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다. 여기서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거짓말처럼 그 모든 조급함과 압박감과 걱정이 사라졌다. 듣고 싶은 말은 다 들었기에.

정말이지 라라님은 루피 선장 같다. 외관도 능력도 닮지 않았지만 괜찮은 척 하다가 마지막에 살고 싶다고 애원하는 로빈의 마음이 뭔지 너무 알 것 같아. 또 늘 유쾌한 농담을 던지지만, 누구보다 내 진심을 경청하고 안아주는 편안한 젠젠님은 춘자의 윤활유이자 비타민이고. 나는 이들을 사랑한다. 많이 많이 많이.


p.s. 일지는 점점 매우 개인적인 일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p.s. 빠박 작가님이 너무나 화들짝 놀라며 진심을 담아 '법사형 완전 미남이잖아'했고 마법사님은 당연하다는듯이 '사람들이 왜 그걸 말로 안 해주지.' 했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매우 귀여운 모멘트!!ㅋㅋ

Sort:  
 3 years ago 

'법사형 완전 미남이잖아'했고 마법사님은 당연하다는듯이 '사람들이 왜 그걸 말로 안 해주지.'

ㅋㅋ
QmYq7RVFtfmm8HUzwKVTUhRVA1WEfgESw7YWhTVNgqXy94.jpg

ㅋㅋㅋㅋㅋ 스팀시티 미남들 대거 보유중

 3 years ago 

또 슬퍼지고 문득 답답하고 두려워질 때가 있겠지만, 그런 마음이 생겨나면 우리가 지난 6개월 나눈 본질대화 위에 싹튼 사랑을 언제나 기억해요! 그것은 진짜야!

고무인간 라라님 우리의 대화를 기억할게요. 이건 그 대화의 연장선이죠!

좋은 인연들을 만난것 같아서 저도 괜시리 울컥은 좀 거짓말 보탰고 ㅎㅎ

부럽습니다!! ㅋㅋ

 3 years ago 

오이님도 같이 해요!

오이님 눈시울 붉힘 거 다 알아요 🥺🤭 ㅋㅋㅋ
스팀이 폭락해도 꼭 와주세요 오이님 그럼 반드시 다시 투더문 할 것입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28
TRX 0.11
JST 0.030
BTC 67689.07
ETH 3801.39
USDT 1.00
SBD 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