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buskers/city 100] 일시귀국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5 months ago (edited)



"거 좀 조용히 하세요. 심문 중입니다."



마법사는 납치되었다. 아니 이스탄불 고양이들에게 체포, 소환되었다. 이민법 위반으로. 마법사가 끌려온 곳은 고양이들의 출입국을 관리하는 이스탄불 고양청 출입국사무소. 마법사가 잡혀 왔다는 소식에 이스탄불에 거주하는 수만 마리의 고양이들이 고양청 출입국 사무소에 몰려들었다. 이슬람 양식의 마치 알함브라 궁전처럼 생긴 고양청 출입구 사무소는 수많은 항공편들의 이착륙을 모두 내려다볼 수 있는 공항 루프탑에 자리하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마법사 체포라는 이 초유의 사태가 어디로 흘러갈지 초미의 관심을 보이며, 팽팽한 긴장감 속에 대치하고 있는 심문관과 마법사의 심리전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마법사님, 이런 곳에서 뵙게 되다니 유감입니다. 불쾌하시겠지만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규정을 위반하신 건 아시죠?"

"무슨 규정을 위반했습니까?"



손에는 수갑이, 가슴에는 결박용 하네스가 채워진 마법사가 잔뜩 불편한 표정으로 심문관에게 따져 물었다.



"아, 그러니까. 일주일 전쯤 고양이에게 안수를 거부하신 적이 있으시죠? 그건 마법사의 의무 사항인데 말이죠. 일종의 입국 조건 같은 건데, 마법사님은 체류하시는 동안 단 한 번도 우리 고양이들에게 안수를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규정을 모르셨습니까? 입국하실 때 다 공지해 드렸을 텐데요?"



심문관은 서기를 시켜 심문장 모니터에 마법사가 입국하던 당일 현장의 CCTV 녹화 화면을 재생시켰다. 이스탄불 공항 이민국을 통과한 마법사가 짐 찾는 곳 화장실에 들어서자, 미리 잠복해 있던 검은 고양이 요원 둘이 마법사에게 정중하게 다가가 통지문을 건네고 있었다. 통지문에는 마법사가 안수를 해주어야 할 고양이들의 몽타주가 그려져 있었다.



"저 보세요. 저기, 찬찬히 훑고 계시구만. 마법사님은 분명히 통지문을 보셨습니다. 그런데, 왜 안수를 거부하셨죠?"



마법사는 말 못 할 사정이 있는지 입을 꾹 다문 채 묵비권을 행사했다. 마법사의 침묵이 계속되자 심문관은 답답한 듯 재차 물었다.



"어허 마법사님! 묵비권을 행사하시려나 본데, 그럼 서로 피곤해집니다. 심문을 멈출 수가 없다고요. 마법사님도 가시던 길 가셔야 할 거 아닙니까?"



심문관의 재촉에도 마법사는 꽉 다문 입을 좀처럼 열 생각이 없는 듯했다. 마법사의 완고한 태도에 심문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양이 관중들이 웅성웅성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기 시작했다.



"지가 꼴에 무슨 마법사라고. 왜 안수를 거부해. 손에 깁스라도 했나."

"그러게 말이유. 다들 우릴 못 만져서 안달인데."

"아, 예언자께서 우리를 얼마나 총애하셨나. 우리가 이 땅 어디서든지 이렇게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것도 다 예언자님 덕인데. 고작 마법사 나부랭이가 어딜 버릇없이. 쯔쯧."



이스탄불 고양이들은 예언자 마호메트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 자신들의 존재감을 증명하려 들었다. 예언자의 총애로 그를 따르는 수많은 민족들은 고양이를 특별한 영물靈物로 여겼다. 고양이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곧 예언자를 욕되게 하는 행위로 여겨졌다. 특히 이스탄불의 시민들은 다른 어떤 도시의 시민들보다 더 고양이를 좋아해서, 언제나 그들에게 충분한 먹이와 안전한 거처를 제공했다. 고양이들이 나타나면 모두 그들을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바쁘고,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조심조심하면서도 어떻게라도 그들을 만지려 들었다. 심지어 어떤 심리학자는 고양이 신체를 자주 만지면 우울증이 치료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덕분에 거리에서, 카페에서, 음식점에서 고양이들은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좌석과 테이블을 점령하고 누워 단꿈에 빠져들 수 있었다. 누구도 감히 그들을 치우거나 비키게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벽과 나무처럼 고정된 풍경 그 자체였다.



고양이들은 꿈을 통해 우주의 모든 시공간을 구석구석 여행한다. 연체동물처럼 온갖 공간을 자유자재로 통과하는 고양이들에게 있어 우주여행의 장애물은 없다. 그게 현실이건 꿈이건. 이스탄불은 그들의 휴식처이자 집이다. 고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이스탄불의 시민들은 그들의 안전한 휴식과 안락한 삶을 보장하는 집사들이다. 그런데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르는 마법사 따위가 감히 고양이를 개무시한 것이다. 심지어 거룩한 심문장에서조차 묵비권을 행사하며.



"계속 묵비권을 행사하시겠다면 할 수 없죠. 그럼 일단 증인 심문부터 진행하겠습니다. 증인 고양이 출석해 주세요."



심문관의 호출에 관중들 사이로 앳되게 생긴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증인석을 향해 걸어 들어왔다. 얼핏 보기에도 세상물정 모르는, 마냥 꿈에 부풀어 있기만 할 것 같은 청춘 고양이 한 마리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뚜벅뚜벅 심문장을 걸어와 증인석 앞에 섰다. 증인 고양이의 눈은 눈물로 밤을 지새워 잠을 자지 못했는지 빨갛게 부어 있었다. 관중석에서는 저 귀엽고 가엾은 고양이가 어찌 그리 험한 꼴을 당했냐며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증인석에 선 고양이는 오른발을 들고 고양이 선서를 시작했다. 그런데 고양이 선서를 낭독하던 증인 고양이는 갑자기 설움이 복받치는지 선서를 하다말고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슬픔이 심문장 전체로 퍼져나갔다. 증인 고양이의 슬픈 흐느낌에 관중들도 저마다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증인 고양이, 심정은 알겠습니다. 마법사에게 거부당한 심정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자주 나타나지도 않는 마법사들인데 말이죠. 순서를 놓쳤으니,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생을 반복해서 태어나야 이런 기회를 맞을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심문관도 그 심정을 알기에 마음이 착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래도 여기는 공정해야 할 심문장이니 마음 추스르시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찬찬히 증언해 보세요."



증인 고양이는 울컥울컥하는 심정을 애써 억누르며, 입에 설움을 머금고는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증언을 시작했다.



"음.. 저는 만 이천 번째 순서표를 가지고 이번 생에 왔습니다. 그러니까 만 이천 번의 생을 기다려야 했죠. 마법사가 이스탄불로 향하기 시작했다는 DM을 받고는 얼마나 마음이 설렜는지 모릅니다. 마법사들은 좀처럼 보스포러스 해협을 넘어오지 않으니까요. 저는 아시아지구에 살고 있습니다. 유럽지구의 고양이들을 언제나 부러워할 수밖에 없죠. 마법사들은 아시아지구로 넘어오지 않으니까요.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유럽에서 활동하는 서편 마법사들은 위수지역을 넘어 아시아지구로 넘어오는 일이 별로 없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번에 동편에서 활동하는 마법사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혹시나 아시아지구로 넘어오실까 싶어 너무 마음이 설레였어요. 지난 여름에도 그 희귀한 동편 마법사님이 이스탄불에 방문하긴 하셨으나 결국 아시아지구로 넘어오시지는 않으셨거든요. 당시에도 저는 혹시나 마법사님이 아시아지구로 넘어오시지 않을까 잔뜩 기대를 했었어요. 하지만 역시나.. 저는 이렇게 이번 생에는 다시 기회가 없을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가을, 로마 고양청에 근무하는 제 사촌 고양이가 동편 마법사님이 지금 파리를 거쳐 로마에 와 계시는데 곧 이스탄불로 넘어가실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번에는 아시아지구에 숙소를 잡으실 것 같다는 기쁜 소식을. 저는 정말 뛸 듯이 기뻤어요. 내 고양이 묘생에 드디어 볕이 들겠구나. 이제 나도 해묵은 카르마를 풀고 새로운 묘생을 살 수 있겠구나. 마법 고양이, 어쩌면 마법 고양이가 될 수도 있겠구나. 그리하여 우리 고양이들의 이상향인 이상한 도시에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꿈에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저 마법사가, 무참히 짓밟고 말았습니다. 흑흑"



증인 고양이는 앞발로 마법사를 가리키며 울분을 토하더니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관중석 여기저기서 분노의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장 저 마법사를 쥐떼들에게 던져주라며 폭언을 외치는 성난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구 삿대질을 해대는 바람에, 심문장에는 고양이 털이 베개 싸움을 하듯 마구 흩날렸다. 묵비권을 행사하던 마법사는 휘날리는 고양이 털을 들이마셨는지 쿨럭거리며 연신 기침을 해댔다. 그러더니 갑자기 얼굴이 점점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조용! 조용!! 여러분, 털 날립니다. 다들 진정하시고 모두 앉으세요. 계속 털 날리면 퇴정시키겠습니다. 그리고 경비묘는 가서 물 좀 가져오세요. 마법사님 기침하시다 피 토하겠습니다."



마법사는 경비묘가 가져다준 물을 보고는 기가 차다는 듯 웃다가 다시 연신 기침을 해댔다. 경비묘는 물컵이 아니라 고양이용 물 쟁반에 물을 떠 온 것이다.



"아니, 지금 이걸 저보고 마시라는 겁니까?"

"마법사님, 어쩔 수 없습니다. 여긴 인간들이 사는 곳이 아니잖습니까. 혀로 핥지는 못하실 테니 그냥 들고 마시면 됩니다. "

"손을 풀어줘야 들고 마실 거 아닙니까."

"거참 귀찮게스리, 경비묘. 뭐합니까? 손을 풀어줘야 사람이 저걸 마시지. 암튼 하는 짓들 하군."



경비묘가 마법사의 손에서 수갑을 풀자, 마법사는 찝찝한 표정으로 쟁반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입은 데지 않은 채 쟁반을 기울여 물을 마셨다.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릴 듯 타오르던 얼굴이 이내 진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법사님 무슨 알러지 있으십니까? 불편하신 점 있으시면 말씀하셔도 됩니다. 우리 고양이들은 관대한 존재들이라 규정을 위반했다고 해서, 함부로 인권을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스탄불 고양이들은 더더욱 관대하답니다."

"아, 그렇군요. 그래서 이렇게 아무 죄도 없는 마법사를 납치 감금하고 계시군요. 관.대.하.셔.서"

"뭘 그렇게 비꼬고 그러십니까? 아직 심리중이니 죄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규정을 위반하신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말씀해 보세요. 왜 안수를 거부하신 거죠? 그냥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출국 일주일 전, 마법사는 이스탄불의 야외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카흐발트(이스탄불의 전통 아침식사)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법사를 찾아 배회하던 증인 고양이가 마법사를 발견한 것이다. 드디어 마법사를 알현하게 된 고양이는 마침내 안수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마법사는 느긋한 아침의 브런치로 차이티와 카이막을 얹은 에크멕을 먹고 있었다. 식사 중에 방해가 될까 염려가 되긴 했지만 얼마나 오랜 세월 기다려온 기회인가! 드디어 만 이천생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를 긴장되는 순간인 것이다. 하지만 증인 고양이는 살짝 망설였다. 입국하고 한 달여간 이 나라 여기저기를 여행한 마법사에 대한 목격담이 뜬소문처럼 고양이들 사이에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 동편 마법사가 우리나라에 왔다며?"

"그렇데. 그런데 그렇게 까칠하다는 소문이 있어. 도대체 고양이들한테 곁을 내주지 않는다지 뭐야? 곁이 뭐야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는 거야."

"뭐시라? 아, 왜 그런디야. 그 마법사 안수 한 번 받으려고 순번표 프리미엄이 얼마나 붙었는데. 그거 산 고양이들은 우짜라고."

"낸들 아나. 암튼 졸졸 따라가기라도 하면 축지법으로 줄행랑을 쳐버리질 않나. 사람들이 우덜 사진 찍느라고 정신들이 없으면 멀찍이 떨어져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서있는다는군. 재수 없게시리. 다른 도시 고양이들 말로는 찬 바람이 너무 쌩쌩 불어 차마 접근해 볼 엄두도 내보지 못했다는 거야."

"그거 큰일이네. 동편 마법사는 자주 나타나지도 않는데 말여."



지난 여름 동편 마법사의 이스탄불 방문 시, 유럽지구 고양이들이 매우 까칠한 그에 대해 불평을 해댄 것을 증인 고양이는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눈길도 주지 않는다는. 열심히 따라가 봐도 생까며 바쁜 걸음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증인 고양이는 소문이 사실일까 두려웠다. 혹 마법사에게서 외면이라도 당한다면 실연한 것보다 더한 감정의 후폭풍이 몰려올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나 오랜 세월을 기다렸던가.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면 한낱 소문에 불과한 말들로 자신에게 온 기회를 포기할 순 없는 것이다. 유럽 지구 고양이들이야, 서편 마법사들이 이따금 방문을 하기도 하니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닌데, 아시아 지구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그간의 마법사들의 행적에, 기회가 많이 없는 걸 증인 고양이는 알고 있었다. 마지막 방문이 백 년 전이었다는 전설도 있었다. 그러던 참이었다. 그런데 마법사가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증인 고양이의 순번. 마지막 순번의 고양이가 이상한 나라로 떠난 지 벌써 백 년이 흐른 것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언제 기회를 맞이할지 알 수 없다. 게다가 고양청 이민법에 따르면, 일단 마법사와 조우한 고양이는 안수 여부와 상관없이 기회가 다음 순번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자니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증인 고양이는 마법사가 아침 식사를 마칠 때까지 참지 못하고, 마법사의 허벅지 위로 펄쩍 뛰어 올라버렸다. 순간 우주가 멈춰 섰다. 고양이도, 마법사도. 모두 어쩔 줄 모른 채로 동작을 멈춰 버렸다.



"저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 마법사를 쳐다보았는데, 그도 마치 얼음이 된 듯 한 손에 카이막이 발린 빵칼을 들고는 정지화면처럼 멈춰 있었어요. 저는 순간, 혹시나 저 빵칼로 내 배를 찌르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아침 식사를 방해했으니까요.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생각났거든요. 그런데 마법사가 내게 저주를 걸려면 주문을 외우면 되지, 굳이 잘 들지도 않는 저 빵칼을 쓰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암튼 꽤나 정적이 흐른 듯했어요. 긴장했으니까. 어쩌면 짧은 순간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 순간이 하나의 생이 다 흐른 듯이 길게 느껴졌어요. 마법사가 나를 내동댕이치면 어떡하지? 걱정이 들어서 마음이 콩닥콩닥했는데, 다행히 마법사가 빵칼을 들고 있던 손을 슬며시 내려놓더군요. 저는 내려오는 손이 제 머리에 안수를 하는 줄 알고 얼마나 긴장했던지. 그런데 마법사의 손이 제 머리로 오지 않고 테이블 위로 향하고는 손에 들고 있던 빵칼을 내려놓는 것 아닙니까? 그러고는 의자에 팔을 걸쳐 버리더군요. 저는 잔뜩 긴장하며 언제 안수를 해줄까 싶어 눈치를 계속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법사는 좀처럼 의자에 두른 팔을 풀 생각을 하지 않는 거예요. 조바심이 난 저는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꾹꾹이를 하기 시작했어요. 뭔가 예쁜 짓이라도 하면 마법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의 허벅지를 연신 눌러댔는데 그만, 그런데 그만.. 흑흑"



증인 고양이는 다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당시의 상황을 다시 회상하자니, 이제는 트라우마가 된 아픈 기억이 몰려와 그의 눈물샘 둑을 무너뜨리고 만 것이다. 그의 슬픔이 쏟아져 나와 심문장 전체로 퍼져 나갔다.



"자, 들으셨죠. 마법사님,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증인 고양이가 꾹꾹이를 한 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답해 보십시오."



고양이들은 모두 쥐 죽은 듯 입을 다물고 일제히 마법사의 입을 쳐다보았다. 과연 마법사가 계속 묵비권을 행사할지, 아니면 도대체 그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신의 입으로 자백을 할지, 모두가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무거운 침묵이 심판장을 가득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고개를 떨구고 생각에 잠겨 있던 마법사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일어나 버렸습니다."

"네? 일어나 버렸다구요?"



침묵을 깨는 마법사의 한마디에 긴장감 넘치던 심판장의 공기가 와장창 깨어져 나갔다. 마법사는 꾹꾹이를 해대는 증인 고양이를 털어내듯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고 말했다. 관중들은 그의 말에 분노하여 심문장 뒷편에 쌓여있던 해외 원조용 사료들을 쏟아내 그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성난 관중 중 일부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마법사를 향해 점프를 했다. 발톱을 잔뜩 세운 채로. 그러자 경비묘들이 재빠르게 방패를 들고 막아섰다. 방패는 성난 고양이들의 발톱자국들로 마구 할퀴어졌다. 소란과 소동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 폭동으로 돌변할 듯 보이자, 심문관은 단상의 판정봉을 세게 두드렸다.



탕탕탕탕!! 탕탕탕탕!! 탕탕!!!



"다들 뭐 하는 겁니까! 당장 멈추세요! 계속 소동을 부리면 스프링쿨러를 작동시킬 겁니다!"



계속 소동을 일으키면 스프링 쿨러를 작동시켜 관중들에게 물세례를 퍼붓겠다고 심문관이 경고하자, 관중석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



"자자, 여러분. 명색이 이스탄불 고양이가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아니 예언자이자 대마법사이신 마호메트께서 우리를 얼마나 이뻐하셨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사람들의 귀여움을 받으면서,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대대손손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는데, 예언자의 말씀을 따라 여행자를 환대해도 모자를 망정, 게다가 마법사를 이렇게 대우해서야 우리가 어떻게 이상한 도시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마법 고양이가 될 수 있겠냐구요! 우리는 이 자리에서, 왜! 마법사가 안수를 거부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들의 안수를 받고 마법 고양이로 거듭날 거 아닙니까? 그러잖아도 요즘 마법사들이 코로나다 뭐다, 도통 자기 지역을 떠나지 않으려고 해서 안수받을 일이 별로 없는데. 게다가 수피 마법사 루미 이후로 이 나라에서는 아예 마법사가 자취를 감춰버리지 않았습니까? 유럽지구의 고양이들이야 이따금 서편 마법사들이 들린다지만, 이 나라의 대부분이 속해있는 동편지구에는 도통 마법사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걸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여기서, 이 마법사에게서, 답을 듣지 못한다면 크나큰 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도 왜 마법사가 안수를 하지 않았는지 원인을 반드시 들어봐야 한단 말입니다. 대대손손 우리만 이상한 도시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니 다시 한번 더 소란을 피우면 모두 체포해다가 중성화 수술을 시켜버릴 겁니다."



중성화수술을 시켜버린다는 심문관의 협박에 고양이 관중들은 분노를 삼켜야 했다. 하지만 아직 마법사의 진술이 끝나지 않았다. 관중들의 분노도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마법사의 진술에 따라 고양이들의 분노가 언제 폭동으로 발화할지 알 수 없는 대치 상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마법사님. 제가 이렇게 규정을 위반한 피고임에도 경어를 쓰며 존중하는 데는, 마법사들과 고양이들이 맺은 상호조약 때문임을 잘 아시죠?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다 서로 좋은 방향으로 오해를 풀자고 하는 일이니까요. 물론 규정 위반이니, 그에 따른 응당한 처벌은 있어야 할 겁니다."

"어떤 처벌을 받게 됩니까?"

"진술에 따라, 추방을 당하거나, 향후 백 년간 이스탄불은 물론 그간 여행하신 모든 도시에 입국 봉쇄령이 내려질 수 있습니다. 이미 마법사님이 거쳐 간 도시의 고양청들과 모든 협의를 마쳤습니다. 이 심문의 결과에 따라 일시에 모든 조처를 할 준비를 하고 있단 말입니다."

"고양이가 어떻게 인간의 입국을 금지시키죠?"

"이스탄불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공항, 항만, 터미널에 고양청 출입국 사무소가 소재하고 있습니다. 규정 위반 마법사가 탑승한 교통편이 발견되면 즉각 우리 요원들이 출동하여 엔진룸을 마비시킵니다. 몇 개의 칩에 발톱으로 스크레치를 내면 교통편이 작동할 수 없게 되죠. 아니면 블랙 요원들이 예약 정보에 접근하여 예약을 취소시키거나 교통편을 무한정 연기시킬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나 의심하지만, 실은 우리 블랙 요원들이 내부망을 해킹해서 일어난 일들이죠. 괜히 영물이겠습니까?"

"그렇군요. 그 일들이 다 고양이의 소행이었군요."

"마법사님은 오히려 혜택을 받으신 걸로 아는데요. 언제나 교통편이 정시에 도착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다 자기 지역으로 마법사를 유치하기 위한 고양이들의 서비스란 말이죠."

"그러고 보니, 교통편 때문에 골탕을 먹거나 한 적은 없었던 것 같군요. 오히려 운이 좋다고 느낄 때가 많았는데. 제 전공인 타이밍의 마법 때문인 줄 알았더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군요."

"그렇습니다. 마법사님의 지난 여정 중에도 저희 출입국 사무소 요원들이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하려고 얼마나 교통통제에 신경을 썼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좀 안수를 해주시지 그러셨어요? 그게 무슨 돈 드는 일이라고 아낍니까, 아끼기를. 자, 그러니 이제 솔직하게 진술해 보셔요. 왜 안수를 거부하셨는지."



마법사는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다. 그간 유독 순조롭게 흘러갔던 교통편들, 예약의 과정들이 모두 고양이들의 서비스였다는 사실을. 마법사는 한편으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마법사의 안수가 뭐라고 이렇게 까지들 했을까? 그렇게 마법 고양이가 되어 이상한 도시에 들어가고 싶은 걸까? 하지만 인간이 고양이의 마음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찬가지로 고양이들 역시 인간, 게다가 마법사의 마음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없다면.. 마법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각오를 한 듯 입을 열어 진술을 시작했다.



"음.. 말씀드리지요. 여러분들께는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는 어떤 동물에게도 안수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고양이는 물론 강아지들도. 저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마법사가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다시 관중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심문관은 또 소동이 일어날까 싶어 마법사의 말을 끊었다.



"아, 그러니까 동물을 원래 좋아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태어날 때부터?"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유년 마법사 시절에도 동물을 접촉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그렇게 이상한 도시를 자주 오가십니까? 토끼와 고양이들 천지일 텐데."

"토끼의 인도를 받는 건 앨리스들이지요. 마법사들은 토끼의 인도 없이도 이상한 도시를 드나들 수 있는 자유입장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법 고양이들과는 언제나 탁자를 사이에 두고 대화하지요. 이상한 도시의 마법 고양이들은 함부로 마법사를 터치하지 않습니다. 마법사도 마찬가지구요. 잘못 터치했다간 존재가 지워질지도 모르거든요."

"존재가 지워진다구요??"

"아, 네. 그건 이상한 도시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니까, 여러분들은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이상한 도시의 고양이들은 중첩되어 있어서 마법사와 접촉하는 순간, 하나로 고정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워지지요. 고정될지, 지워져 버릴지는 접촉하기 전까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건 신의 영역이니까요."

"허, 거참 신비로운 이야기군요. 아니 무서운 이야기인가? 마법 고양이가 되는 게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군요."

"그건 고양이 여러분들의 사정이니 저는 알 바가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상한 도시가 여러분들의 이상향인 거 아닙니까?"



관중석의 고양이들은 지워질 수도 있다는 마법사의 말에 모두 충격을 받은 듯했다. 세상 모든 고양이들이 선망하는 마법 고양이의 삶이, 언제든 지워질 수도 있는 위험한 삶이라는 걸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습니다. 물론 증인 고양이의 일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저는 그 자리에서 일어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죠?"

"증인 고양이의 발톱이 정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죠."



마법사가 증인 고양이의 발톱이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고 진술하자 관중들은 일제히 증인석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몸 위에서 발톱을 세우는 일은 최후의 방어 수단이 필요할 때를 빼곤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건 인간의 공격성을 자극하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자칫 불상사가 일어나고 인간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라도 하면, 그간 평화롭게 공존해 오던 인간과 고양이 사이에 거대한 불안이 조성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먼저 아이들에게서부터 고양이를 분리시킬 것이다. 점점 고양이를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성장하여 도시를 이끌기 시작하면, 자칫 고양이의 위상이 위험한 존재로 고정될지도 모른다. 수많은 역사를 겪은 고양이 현자들은 대대로 사소한 갈등의 시작을 먼저 제거하지 않으면 관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그래서 고양이가 인간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금기들이 계명으로 제정되었는데, 그중에 발톱 세우기야말로 목숨의 위협을 느끼기 전에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금기 중의 금기였다. 그런데 증인 고양이는 흥분한 나머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증인, 발톱을 세웠습니까?"



증인 고양이는 새파랗게 질려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증인, 말해보세요. 발톱을 세웠습니까? 안 세웠습니까?"

"그, 그러니까.. 잘 기억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허 이런, 그러니까 발톱을 세웠다는 겁니까? 안 세웠다는 겁니까? 블랙 요원, 어서 사건 현장 CCTV를 찾아오세요. 이거 발톱을 세웠다면 큰일입니다. 증인."



블랙 요원들은 사건 당일, 마법사와 증인 고양이가 앉아 있던 카페 CCTV 망에 접속해 사건 당시의 화면을 심판장 모니터에 띄웠다. 하지만 CCTV의 화면은 증인 고양이의 발톱 대신 마법사의 뒷모습만을 비추고 있었다.



"이런, 현장이 보이질 않는군요. 천상 진술만으로 판정을 해야 하는데... 마법사님, 다시 묻겠습니다. 증인 고양이가 발톱을 세운 게 확실한가요?"

"존경하는 심문관님."



마법사는 갑자기 공손한 태도로 심문관과 관중석을 번갈아 바라보며 진술을 하기 시작했다.



"네. 갑자기 존경은 무슨. 저 어디 안 갔으니 말씀해 보세요."

"그리고 이스탄불 고양이 여러분. 저는 고양이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동물들 역시 격하게 좋아하지 않을 뿐 경멸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고양이 여러분들은 영물이 아닙니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고 고양이들은 영물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상한 도시의 마법사들은 고양이에 대해 이렇게 교육을 받습니다. 그들의 선택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말이지요. 그들은 영혼을 가진 존재들이라, 그 영혼의 선택은 언제나 존중되어야 한다고 배운답니다. 그래서 이상한 도시에선 언제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좋다고, 친하다고 붙어 앉아서 친밀감을 과시하다간, 고양이의 발톱이 무심코 마법사의 몸에 상처를 낼 수도 있고, 자칫 고양이들에게는 문제가 없으나 인간에게는 좋지 않은 알러지를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십 년 전 괴생물체의 습격으로 매우 고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길고양이들을 데려다가 며칠 밤을 재워 주었는데, 물론 그때도 고양이를 만진 건 아닙니다. 저를 졸졸 따라오길래 평소에 쓰던 축지법을 쓰지 않고 그냥 집에 따라 들어올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머물기 시작하자, 어디서 옮아왔는지 진드기류로 보이는 괴생물체가 습격하여 제 거처를 모두 갉아먹어 버렸습니다. 나중에는 제 피부를 뚫고 들어와 알을 낳더군요. 그것들은 매일 밤 부화하여 제 몸을 뚫고 방안을 날아다녔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퇴치하려고 매일 밤 제 온몸을 청 테이프로 감쌌습니다. 파리 끈끈이처럼 부화하는 그것들을 들러붙게 만들려구요. 저는 어떠한 소유도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소지한 모든 것에 그 괴생물체들이 알을 낳아댔거든요. 매일 속옷까지 전부 새로 사 갈아입고 그날이 지나면 비닐봉지에 밀봉해 버리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놈들은 일년내내 저를 괴롭혔습니다. 여름이 다 지나가고 찬 바람이 분 뒤에야 놈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더군요. 지금도 매년 봄만 되면 그것들이 뚫고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건 트라우마인지 알러지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제가 다시 고양이를 안을 수 있겠습니까? 쓰다듬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증인 고양이를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스탄불에 고양이가 많다는 소식을 미리 듣기도 했습니다. 옛 트라우마에 불안하긴 했지만, 그 십 년 전에 집을 잃은 뒤로, 저의 여정은 아직도 끝이 나질 않고 있습니다. 돌다 돌다 결국 이스탄불에까지 오게 된 것이죠. 다른 지역의 고양이들은 인간을 경계합니다. 아까도 심문관께서 말씀하셨지만, 예언자이자 대마법사이신 마호메트께서 여러분들을 극진히 사랑하셨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여기 이스탄불은 고양이들의 천국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이 천국에서 천수를 누리시면 되지 왜? 굳이 이상한 도시에 들어오려 하십니까? 마법사의 안수를 받아야지만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토끼를 따라가면 되는데 왜 굳이 마법사의 안수를 받으려고 하시는 겁니까?"

"아, 그건 마법사님이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어떤 고양이들은 마법에 걸려 있습니다. 아니 저주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어느 생의, 어떤 선택에 의하여, 이상한 도시에 들어 갈 수 없는 저주에 걸려 버렸지요. 사연은 저마다 다르지만 아무튼 갖가지 선택의 결과로 저주에 걸려 버렸습니다. 그런데 저주를 건 이들은 흑마법사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들은 자신의 마음과 다른 선택을 한 고양이들에게 저주를 건답니다. 지독하게도. 그 저주를 풀려면, 이상한 도시의 마법사들이 안수를 해주어야지만 저주에서 놓여날 수 있다고. 그래서 그 고양이들은 마법사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안수를 받지 않고서는 저주에 풀려날 수가 없으니까 말이죠."

"어떤 저주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꿈꾸지 못하는 저주 말입니다."

"고양이도 꿈을 꿉니까?"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시니 잘 모르시는 군요. 고양이가 영물이라 불리는 것은 잠을 많이 자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고양이들은 늘 잠들어 있습니다. 배가 고프거나 뭔가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언제나 우주를 탐험하고 있답니다. 그곳 여기저기에서 많은 일들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현실로 가져오려고 밤만 되면 눈에서 불을 켜고 노래를 부르지요. 사람들은 어두운 골목에서 반짝이는 우리들의 눈을 마주치면 겁을 먹곤 하는데, 실은 꿈을 현실로 가져오려고 포탈에 몸을 걸친 채 눈만 현실 밖으로 빼놓고 있어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매일 아침 맞게 되는 도시의 풍경은 실은 다른 우주에서 고양이들이 가져온 꿈같은 현실이지요. "

"그건 참으로 마법 같은 이야기군요."

"마법 고양이들만 마법 속에 사는 게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은 현실과 꿈속을 수도 없이 오가며 마법 같은 풍경들을 만들어 내지요. 이해하지 못한 채. 다만 이상한 도시의 마법 고양이들은 그 현실을 모두 이해한다고 들었습니다. 마법사들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말이죠."

"네 맞습니다. 이상한 도시에 상주하는 마법사들은 대부분 은퇴한 마법사들이라 정말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요. 고양이들이 풍경을 가져오느라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수많은 존재들의 가슴 깊은 이야기, 사연, 꿈들을 마법사들은 모두 듣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뤄주려고.."



마법사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뤄주려고' 감당해야 했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배신감으로 슬픔으로, 때로는 원망과 비탄으로 마법사들의 가슴을 후벼파는 것들이다. '이뤄주려' 했던 시도들이 오해와 불신, 본심을 감춘 주저와 포기를 모르는 탐욕스런 저울질로 말미암아 탈색되어, 마법을 저주로 변환시키는 장면을 목격하는 일 말이다.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들고 하늘을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는 마법사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마법사는 자신의 슬픔을 이 자리에서 한 방울도 내비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고개를 빳빳이 쳐든 채 말을 잇기 시작했다.



"아팠습니다.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었는데 날카로운 발톱을 내밀 때는 마음이 찢어지게 아픈 법입니다. 그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같은 거라 비슷한 동작에도 움찔하게 되는 겁니다. 움찔했다구요. 증인 고양이의 꾹꾹이가 반가웠지만, 정리되지 않은, 아마도 긴장해서 그랬을 텐데, 잔뜩 힘이 들어간 발놀림에 그의 발톱이 제 살을 파고들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당황했어도 좀 참아보려 했는데 아픔이 느껴지자, 옛 기억이, 그때의 트라우마가 밀려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어디서 옮아 왔을지 모를, 좀처럼 떨려나가지 않는 비겁한 진드기들이 그의 발톱 사이로 내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장면이 마구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마법사는 당시의 장면을 회상하며 후회와 아픔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걸 받아줄 수 있어야 하는데 저는 너무 지쳐 있습니다. 아이들의 장난에도 피곤함을 감출 수 없는 저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마법사입니다. 관대함은 더 이상 저의 몫이 아닙니다. 저는 사실 화가 났습니다. 심지어 사건 전날 밤에는 잠을 설치기도 했어요. 고양이 한 마리가 제가 묵고 있는 숙소에 불법침입을 시도했거든요. 거실 창문 밖에서 들어가게 해달라고 창문을 두드리며 계속 울어대더니, 제가 잠든 사이에 부실하게 달려 있던 창문 환기구를 앞발로 쳐서 부숴 버렸는지, 뭔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자다 말고 깜짝 놀라 나가보니 녀석은 겁을 먹었는지 부리나케 달아났습니다. 한밤중에 테러를 당한 거죠. 피곤함이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날도 겨우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지친 몸으로, 잘 소화도 하지 못하는 낯선 음식을 겨우겨우 받아내고 있었는데, 급한 마음은 알겠으나, 매너도 존중도 없는 증인 고양이의 몸짓이 버겁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그만, 저도 모르게.. 골목을 돌면 끝도 없이 나타나는 고양이들에게도 지쳤습니다. 그들은 갈망합니다. 그 눈빛을 거부하기가 힘들더군요. 안수를 해달라지요. 마법사에게 안수를 받으면 자기들은 저주를 풀고 이상한 도시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저는 또다시 괴생물체에게 시달릴지 모릅니다. 그건 인생에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일일 수 있지만, 지친 마법사는 그 작은 염려도 감당하기가 어렵답니다. 그리고 여기 이스탄불, 이 고양이 천국에 살면서 집도 없이 떠도는 마법사에게 더 큰 안락을 요구하는 건, 그건 좀 아니지 않나요?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건 여행이 아닙니다. 그건 방랑이고 떠돌이죠. 여러분들은 이 도시 전체를 제 집으로 삼고 있는데, 그곳에서 제게 조금의 휴식도 제공할 수 없는 겁니까? 어서 빨리 마법 고양이가 되어 신분 상승이라도 하고 싶답니까? 그 신분, 상승해서 뭐 합니까? 중첩된 마법 고양이가 된다는 건, 여러분들이 누리는 모든 물질적 안락함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위험을 말하기도 하는 겁니다. 더 이상 예언자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한 겁니다. 이제는 온전히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존재가 된다는 말입니다. 자신 있습니까? 그래도 괜찮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선택과 행동들을 저울에 달아 카르마를 정산해야 되는데, 그래도 이상한 도시에 들어가고 싶습니까!"



마법사의 음성이 점점 고조되더니 마침내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까맣게 타버린 음성이 퍼져나가더니 이스탄불의 하늘을 검은 그림자가 덮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디선가, 군단이 달려오는 듯한 거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관중석에는 이내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고양이들은 저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공포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저는 레드홀에서 여러분의 고향인 사막의 여신께 청했습니다. 선택을 저울에 달아 아직 미지불된 것들이 있다면, 모든 것을 공정하게 정산하는 신께서 이제 심판을 시작해 달라고. 만일 저에게도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면, 차라리 깨끗하게 감당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해달라고. 이대로, 유보된 심판으로, 세월을 더이상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아브라카다브라!"



마법사는 사막 신전의 레드홀 앞에 우뚝 선, 암사자의 얼굴을 한 사막 여신께 청했던 기도를 다시 올렸다. 청컨대, 이제 대청산의 파티를 시작해 달라고, 마법사의 등골을 빼먹어 달디 단 그들의 피와 절망으로 성만찬을 즐겨달라고, 그래야 희생과 헌신, 관대함과 긍휼로 점철된 마법사의 삶에 균형이 찾아올 테니, 그래야 마법사도 알을 깨고 아브락사스의 신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갈 테니. '아브라카다브라 Abracadabra'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사막 여신의 사자 군단이 한 손에는 보응의 창과 한 손에는 카르마의 저울을 들고 심문장을 급습했다. 그들은 유보되었던 고양이들의 카르마를 정산하기 시작했다. 대청산의 파티가 시작된 것이다. 각자의 행동과 선택에 따른 공정한 대가들이 일시에 청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오랜 세월, 대마법사 마호메트의 보호 아래 태평천하를 누리던 이스탄불의 고양이들에게 청구서가 날아든 것이다. 이제는 그간의 태평시대를 누린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공정할 것이다. 공덕을 쌓은 고양이들에게는 이상한 도시의 들어갈 수 있는 권리는 물론, 원한다면 마법 고양이가 될 수 있는 보상이 함께 주어졌다. 그러나 선택을 유보한 채 타인의 카르마에 업혀 살던 고양이들에게는 무작위 선택의 결과값이 주어졌다. 그것에 대한 불평은 불가하다. 선택을 유보함으로 선택한 결과일 테니까. 심문장의 고양이들은 사자 군단의 급습에 혼비백산,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으나, 사막 여신의 사자들은 대가를 치러야 할 고양이들을 남김없이 색출해 내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미 계량된 저울값에 따라 보응하기 시작했다. 인과응보의 결산이 한자리에서 벌어졌다. 대청산의 대상에는 예외가 없어서 마법사에게도 사자들이 달려들었는데, 아무리 달아보아도 카르마의 저울이 꿈쩍도 하지 않은 채 0을 가리켰다. 사자들은 저울이 움직이지 않아 응징도 보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규정 위반에 대한 대가조차 정산하지 못해 머뭇거렸다. 그런데 그때, 하늘에서 거대한 두루미가 나타나더니, 마법사에게 날아와 그를 훌쩍 태우고는 비명이 난무하는 이스탄불 공항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두루미는 빠르게 이스탄불 상공을 빠져나가며 마법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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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행전 2부] 에필로그






[위즈덤 레이스 + City100] 100. Istanbul Havaliman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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