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100] 리틀포레스트 인 스톡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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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 마을의 끝자락, 베이지빛의 오래된 라다키 전통집인 남샨 하우스가 우리의 목적지이다. 줄레, 인사를 건내며 집으로 들어가니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남샨 하우스는 라다크인 왕보와 일본인 에치코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이다. 왕보와 에치코와의 인연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처음 알게된 건 2008년이다. 한겨울에 호기롭게 레로 비행기를 타고 왔지만 문 연 게스트하우스가 있을리 없었고 우리는 친하게 지내는 이시 스님이 있는 한국 절, 대청보사에서 그 겨울을 났다. 그 당시 이시 스님이 우리를 이곳저곳 많이 데리고 다녔는데 그 때 간 이시 스님 친척의 생일파티에서 왕보를 처음 만난 것이다. 에치코와도 몇 차례나 만났다고는 하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기억력인지. 우리가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특별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서이다. 남샨 하우스는 숙박하는 손님들에게 직접 자기의 밭에서 나고 기른 야채와 직접 만든 빵을 활용해 식사를 내오는데 그 모습이 어찌도 정갈하고 맛깔스러운지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인스타를 통해 전 날 미리 예약을 하고는 초모의 차를 타고 스톡으로 향했다. 남샨 하우스는 쉽게 찾아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표지판도 없어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매고 이리 묻고 저리 묻다 가까스로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눈이 내리고 있었고 눈보라 치는 스톡 깡그리가 아주 코 앞에서 보였다. 6,153m의 스톡 깡그리는 한때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트레킹 코스지만 지금은 과도한 관광으로 폐쇄된 곳이자 <카페 ,두레> 창문에서 늘 들여다 보던 설산이다.

우리를 알아보지 못할까 조심스레 말을 꺼냈지만 그들은 우리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을 오히려 꺼내어 말한 것도 왕보와 에치코 부부였다. 잠깐의 반가운 인사가 있은 뒤 그들은 우리의 식사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남샨 하우스의 거실은 라다크식 전통 가구를 좀 더 모던하고 세련되게 해석한 모습이었고 주방은 너무나도 일본 그 자체였다. 가장 먼저 내온 것은 씨벅톤 베리 주스였다. 작년부터 라다크에서 씨벅톤 베리 관련된 상품들을 살구만큼 찾아볼 수 있다. 고산지역에서 많이 난다는 씨벅톤 베리는 우리나라에선 산자 나무 열매로 불린다는데 전혀 들어본적도 없다. 걸쭉하면서도 상큼 새콤한 그 맛은 입맛을 돋운다. 다음으로는 직접 내린 연한 커피가 나왔다. 우리는 연거푸 마실 것을 마시며 우리의 식사를 기다렸다. 거실은 유리문으로 연결되어 있어 주방에서 거실이 환히 들여다보였고 통로문은 열려있어 요리하는 소리를 전부 들을 수 있었다. ㄴ자의 라다크 좌식의자에 앉아서 듣는 소리는 마치 ASMR과도 같이 들렸고 남샨 하우스 특유의 따뜻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와 어우러져 기다리는 시간 역시 하나의 코스인 것만 같았다.

덜그럭 덜그럭, 탁탁탁, 띵, 쪼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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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그 소리를 조용히 듣는다. 마치 영화 리플 포레스트나 카모메 식당의 실사판이다. 비록 두 영화다 보지 못했지만 그냥 그런 기분이다. 사워 도우와 식빵 한 조각 노란색 포테이토 수프가 가장 처음으로 나왔다. 직접 구워 따끈하게 내온 식빵은 부드러우면서도 바삭했고 사워 도우는 새큼한 맛을 내면서도 쫄깃쫄깃 입에 착착 붙었다. 수프 역시 일반적인 맛은 아니었는데 당근과 고수 등 앞마당에서 기른 각종 야채가 아낌없이 들어가 정성스러우면서도 신선한 맛이 났다. 입을 가시라고 준 메밀 차 한잔을 마시다 보니 메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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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으로 나온 건 메밀 갈레트이다. 메밀 역시 최근 라다크의 떠오르는 특산물로 2년 전부터는 메밀꽃 축제를 할 정도이다. 갈레트는 크레프 위에 다양한 재료를 얹어 먹는 프랑스 요리이다. 메밀로 만든 크레이프를 곱게 접어 한켠을 장식하고 그 옆에 오렌지와, 치킨, 당근을 비롯 텃밭표 각종 푸른 채소와 케이퍼가 어우러진 샐러드로 채워져있다. 심플해 보이는 이 음식은 생각보다 너무도 맛있어서 우리 모두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크레이프를 살짝 찢어 각종 야채와 치킨, 오렌지와 살구쨈, 후추까지 팍팍 쳐서 한입에 넣으면 소박한 행복이 입안에 꽃핀다. 자극적이고 매운 맛에 환장하는 내겐 사실 좀 슴슴할 수 있는 맛인데 그것과는 상관없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마지막으로는 오트밀 쿠키와 초콜릿 아이스크림, 딸기까지 정말 행복한 식사였다. 우리가 밥을 먹는 와중에는 왕보와 에치코의 두 아이가 주방 옆 공간에서 티비를 보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그들의 시간을 보냈고 검정 고양이도 살금살금 우리 곁을 돌아다녔는데 무해한 그 풍경 또한 값을 치뤄야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사실 그 값도 치룬 것 같긴 하지만,,)

하지만, 목가적이고 서정적이며 한 편의 일본 영화와 같은 그 장면은 내가 그것과 조금도 상관없는 타인이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결코 이 아름다운 일본 영화 안의 사람이고는 싶지 않았고 초대된 사람인 것에 만족했다. 이 아름다운 집은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그것은 춘자 인사이드에 어떤 식으로든 묻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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