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상황
북한괴뢰군은 중공군의 개입을 기회 삼아 남한을 순식간에 제압하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였으나 오산 선에서의 아군의 전면적인 반격 작전으로 그들의 야망은 또다시 분쇄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적은 수도 서울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처럼 수도 서울을 포기하고 후퇴하는 적은 서울을 탈환하고 계속 진격 태세를 취하는 아군에 대하여 유인작전을 시도한 나머지 아군이 38선 부근에 도달하여 아군 주력부대가 임진강을 도하하려는 기회를 포착하여 아군을 서남 방면으로 압박하여 격멸하려는 기도였다.
상술한 바와 같은 기도 하에서 중공군과 괴뢰군은 전선 전반에 걸쳐서 병력을 배치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자칭 최강부대로 자랑하는 중공군 제3야전군의 주력부대인 제19병단을 선두로 시변리를 중심으로 하여 소위 그들이 말하는 일대 춘계 공세로 나왔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어디까지나 5월 1일 메이데이를 기회 삼아 그 행사 서울에서 거행한다는 구실 아래 4월 22일 22:00를 기하여 총공세를 개시하려 하였다. 적은 이러한 계획하에 38선 일대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부대를 정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적은 돌연 4월 21일부터 예기한 대로 활발한 행동을 취하였고, 동 23일 이른 아침에는 新장단과 舊장단 일대에 적 약 2개 사단 병력을 집결 대비하였다. 이들 적은 아 제1사단 제11연대 정면으로 도하를 기도하였으나, 지형과 아군의 배치 상황을 탐지하고 고랑포 좌안에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광분하였다. 그리하여 적은 주력부대에 대한 공세 거점을 유지하면서 아 제1사단과 우익 인접 부대인 미 제3사단과의 간격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종심 돌파를 기도하면서 임진강 철교 방면의 우안으로부터 도하 남하하는 적과 합세함으로써 아군 주저항선 전면으로부터 압박을 가하고 돌파구의 확대를 시도하였다.
또한 적은 제공권을 가지지 못하였으므로 야간 공격을 주로 하는 공격계획을 세웠으며, 따라서 보급품의 수송도 주로 야간을 이용한 것이었다. 이러한 반면에 적은 개성으로부터 법원리 간에 산재하는 아군 진지가 감제 할 만한 유리한 지형에다 관측소를 설치하고 통상 아군의 진지 출입을 관측하여 아방의 허약을 발견하는데 분망하였음은 적이 얼마나 서울 점령에 광분하고 있었음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지구에 투입된 적은 북한 괴뢰군이 최강으로 자인하는 제1군단 예하의 제47사단과 중공 제3야전군 예하의 제19병단의 일부 병력으로서 합계 총 병력 약 35,000명이었고, 장비에 있어서도 그 보유한 수자는 미상이나 소련제 장비로서 그 성능은 우수해 보였으며 특히 종래의 중공 제4야전군과 교대하여 남침 초기 동북 지구를 담당한 바 있는 제3야전군을 새로 이 지구에 투입한 사실은 후퇴와 패배의 고배를 다시금 만회하는 데 있었으나, 역시 임진강 패전의 고배로 영영 재기불능 상태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