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14)

12:00에 이르러 제6사단장 김종오 준장은 휴대할 수 있는 장비를 제외하고는 파괴 또는 소각하고 창목동에 집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풍장에서 제7연대의 주력이 재정비를 하는 동안 사단 주력의 강력한 진출로 인하여 적은 아군에 대한 공격을 일시 중지하게 되므로 피아간에는 방어력의 강화에 급급하게 되었다.
제7연대는 공격한 산로(山路)를 택하여 야간 행군을 하려 하였으나, 적의 집중 공격과 지형의 제약으로 인하여 제1대대를 풍장 남방, 제2대대의 방어진지 좌측에 배치하고 풍장에서 철수, 적의 진출을 극력 저지하였다.
이후 제7연대의 각 대대는 강력한 위력 수색대를 전면에 파견하여 적정을 탐지한 바 적은 아 공군의 맹타로 인하여 남진하지 못하는 주간 행동의 제약을 만회하려는 기도에서 야간 행동으로 점차 병력을 증강하는 것이었다.
20:00를 기하여 적은 대거 병력을 아 진지에 투입하여 타격을 가하려 하므로 제7연대의 제1, 제2대대는 이 적을 한사코 저지하였으나 이에 성공하지 못하고 이 지점에서 부대는 분산 상태에 이르렀다.
22:50에 이르러 적의 대부대는 제7연대 제1, 제2대대의 진지를 돌파하고 풍장까지 기습전을 감행해 왔다.
이때 제7연대 본부와 제3대대는 적의 이러한 기습전에 전세를 수습할 수 없을 만큼 혼란 상태에 빠졌으나, 과감한 장병들은 시급히 잔류병력을 재정비하였다.
적의 이와 같은 기습이 감행되자 피아간에는 약 1시간에 걸친 일대 수라장화(修羅場化) 된 육박전이 전개되었으나 수적으로 우세하고 인해전술을 자행하는 중공군이므로 시간이 경과할 수록 아군의 손실은 극심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아군은 부득이 23:30을 기하여 각대별로 철수를 개시하였다.
제1, 제2대대는 총퇴각을 개시하였는데, 제3대대는 창동을 경유, 1714고지를 지향하여 철수하고 제2대대는 분산되어 연대본부와 같이 철수하였다. 적 중공군은 아군의 이와 같은 철수를 추격하기 위하여 일부 병력을 파견하여 강력한 추격전을 감행하여 왔다.
10월 30일 풍장에서 분산되어 총퇴각을 개시한 제7연대는 계속되는 중공군의 추격에서 이탈하기 위하여 제1대대를 선두부대로서 창목동으로 퇴각하게 하고 전 병력은 각각 분산된 채 철수를 거듭하고 있었다. 04:00 제1대대의 주력은 창동을 경유하여 판하동(YE4080)에 철수 중이며 그 뒤를 따라 분산된 병력도 계속 철수해 왔다. 10:00 제7연대는 창목동 북방 5㎞ 지점에서 병기 식료품의 공중 지원을 받고 계속 철수 중이나 집결지인 창목동에는 이미 박광혁 대령 지휘하의 제19연대가 붕괴되어 적이 침투하였으므로 부득이 개천 방면으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도 계속 추격을 감행하고 있으며 더욱이 고장을 위시하여 청천강에 이르기까지 주요 지형지물에는 대부대가 배치되고 있으므로 아군이 철수하는데 일대 난관에 봉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