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33)
제2절 전투 경과 개요
제1항 혜산진 및 청진 철수작전(부도 제7참조)
단기 4283년 11월 중순경 불의에 한국전에 개입한 중공군의 대부대 공격으로 인하여 서부전선 및 중부전선이 압축되고 동 전선에서 국군 및 국련군이 철수작전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동북부 전선에 있어서도 11월 30일 혜산진, 청진을 각각 제압한 아 제3사단과 수도사단도 증강된 적 공격에 조우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길주에 지휘소를 설치하고 있던 아 제3사단장 최석 준장은 혜산진 점령부대인 예하 제22연대를 점령 수 시간 후에 철수시키는 동시에 약 1개 중대 병력을 백암에 배치하여 아군부대의 남하를 엄호하는데 필요로 한 작전을 취하게 함으로써 적 공격부대를 견제하게 하였다. 동시에 사단장 최석 준장은 제22연대 주력으로 하여금 당시 성진에 전진, 지휘소를 설치하고 있던 아 제1군단 작명 제122호에 의거하는 혜산진~합수~길주 선에서 인접 수도사단의 전진을 엄호하면서 계속 이 선에서 공격 방어를 실시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아 제22연대장 김응조 대령 이하 전병력은 여전히 12월 2일에도 수도사단의 철수작전을 엄호하고 있었으며 한편 동일 10:00에는 그동안 미 제1해병사단에 배속중에 있던 아 제3사단 제26연대의 연대장 서정철 중령 이하 전 병력이 원대에 복귀되었다.
그리고 제3사단도 점차 길주를 중심으로 집결을 기도하여 12월 1일 주을에 집결한 수도사단도 사단장 송요찬 준장 이하 예하 3개 연대가 동일 13:00 주을에서 길주로 철수하였다. 12월 3일 적은 축차 증강된 병력을 가지고 준험한 산악지대를 이용하여 길주로 철수 중에 있는 아 제3사단을 포위하고자 남하 공격을 가하여 왔다. 그러므로 아 제3사단은 이러한 적의 기도를 분쇄하고자 사단장 최석 준장 이하 예하 각 참모들은 주도면밀한 가운데 질서정연한 철수작전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제22연대는 합수 일대에 배치하고 있던 연대 주력을 길주로 집결하는 한편 나남에서 수도사단을 지원하고 있던 제23연대도 연대장 김종순 대령 이하 예하 전 병력이 길주로 집결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전 전선에 걸쳐 중공군의 출현은 의외에도 대규모적이었으므로 서부전선 및 중부 전선은 완전히 붕괴 상태에 놓여 있었다. 따라서 동해안 지구를 담당하고 있던 아 제1군단장인 김백일 소장은 공세로부터 우선 적과의 접전을 회피하는 철수작전으로 급진전함으로써 예하의 수도사단과 제3사단은 병력의 손실 없이 길주에 집결을 완료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성진에 배치하였던 아 제1군단 전진 지휘소는 함흥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아 제3사단 전차 공격대대는 군단 직할로서 단천에서 서호진으로 전진하는 동시에 제26연대도 군단 직할부대가 되어 군단과 같이 행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