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47)
적은 상당수의 병력으로서 침투하여 홍천 남방 및 서방 7㎞의 지점까지 박도하여 주보급로를 차단하였고, 이에 대하여 국군 제3사단 및 제7사단은 각자의 전투지역에서 이 적을 요격하여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다.
한편, 미 제2사단은 전선의 돌파구를 견제할 임무를 가지고 전진하였다. 이리하여 적은 이때 이미 제8군의 우측면까지 도달하였고 이러한 적의 침투는 아 진지의 서측방 지구를 강습하여 아군의 주보급로를 차단하려는 기도였던 것이다.
12월 31일 미 제8군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은 국련군으로 하여금 임진강으로부터 38선에 이르는 전선을 방어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그리고 제8군은 남방으로의 무질서한 철수를 방지하기 위하여 최대한의 시간을 요하는 동안 서울 지구를 견지하면서 국련군은 사태가 수습될 때까지 다음의 축차진지를 선정하고 방어하도록 임무를 가졌던 것이다.
4284년 1월 1일 새벽에 이르러 오랫동안 예기하고 있었던 적의 본격적인 대공격 작전은 드디어 개시되었으며, 이 공격에 앞서 각종 포탄이 제8군의 진지에는 평일에 비하여 십배강의 비율로 낙하되었다. 미 제9군단 지구에서는 적이 연속적인 공격을 받았으며 이 공격은 점차로 그 규모가 커지면서 국군 제6사단 지역에 대하여도 가하여졌고, 적은 드디어 아군 진지 깊숙이 침투하여 왔다. 이러한 적은 인명의 손실은 추호도 염두에 두지 않고 인해전술 그대로의 파상식으로 병력을 투입하여 아군의 지뢰밭으로 전진하여 왔던 것이다.
예기하던 적의 남침 공세는 이리하여 개시되었다. 공산군의 공세가 총력을 집중하고 또 적의 돌파가 점점 확대될 때 리지웨이 장군은 한강 남안으로부터 양평을 거쳐 그곳으로부터 동북으로 방향을 바꾸어 홍천, 그리고 동해안의 주문진에 연하는 선까지 철수하도록 명령을 내렸으며, 이 선은 역시 한강 북방의 방어를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8군 예하 각 부대가 38선 전 지역에 걸쳐 치열한 지연작전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 적의 주공 방향인 의정부 방면에서는 적의 강력한 압력으로 인하여 전선 유지가 곤란하였고, 4284년 1월 3일 현 전선이 붕괴됨에 이르러 또다시 수도 서울도 전 전선의 조정을 위하여 부득이 포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적은 이러한 공세의 호전을 이용하여 상당한 속도로서 전진하여 왔으며, 제8군은 완강한 저항을 시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적의 전진을 저지하기는 곤란하였던 것으로 아군은 축차 진지인 오산~제천~삼척을 연하는 선까지 철수하여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하는 동시, 부대를 재정비하여 차기의 반격 태세 완비로 돌입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