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육 해 공군본부의 이동
4284년 1월 3일 서울 지구 방어에 엄호(掩護) 부대로 있던 영국군은 수차의 적과의 격전 끝에 의정부(議政府)를 포기하고 4일 새벽 한강을 도하 한 다음 부교(浮橋)를 폭파함에 이르러 수도 서울은 개성 방면으로부터 임진강(臨津江)을 도하 한 괴뢰군 제1군단이 점거(占據)하게 되었다.
이에 앞서 아군 수뇌부(首腦部)는 육본 작명 제247호에 의거 수도 서울을 사수하고자 하였으나, 중공군의 집요한 침투(浸透) 전술과 작전상 제반 사정으로 말미암아 전선을 정비하여 축차(逐次) 방어선(防禦線)인 양평(楊平)(CS6749)으로부터 동해안 38선 접경인 남애리(南涯里)를 연하는 C 방어선까지 철수 집결시키는 동시, 3군 본부는 각각 이동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즉 4283년 12월 20일부 육본 작명 제255호에 의거하여 육군본부는 12월 22일 경북 대구시로 이동을 완료하였으며, 공군본부는 12월 21일 역시 대구시로 예하 각 부대는 대구, 사천, 김해, 제주, 진해로 각각 이동하였다.
또한 해군본부도 12월 21일 경남 부산시로 이동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육본에 있어서는 본부는 12월 22일 대구로 이동하여 업무를 개시하였으나, 작전 지도에 관하여서는 전방 지휘소를 서울을 위시하여 전방 지구에서 계속 실시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