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64)

  1. 아군의 상황
    인해전술로서 대량 도살에도 불구하고 계속 남침을 기도하는 중공군에 대하여 민기식 준장이 지휘하는 아 제5사단은 박현수 대령이 지휘하는 예하 제35연대로 하여금 사단 전투 정면의 적 후방을 교란하게 하며 기습작전을 전개하여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동시에 적을 포위 섬멸하고자 하였다.
    한편, 사단은 황엽 대령이 지휘하는 제36연대로 하여금 전투지역 내의 적을 격멸하게 하는 동시에 이상철 대령이 지휘하는 제37연대는 남침하여 오는 적의 진출을 저지하게 하는 한편, 사단 엄호부대로서 사단 철수로의 확보 임무를 수행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일방 춘천지구에서 적 약 3개 사단의 강력한 협격(挾擊)과 인접 부대의 방어진이 돌파됨으로써 전략적 철수를 감행한 최영희 준장이 지휘하는 아 제8사단은 단기 4284년 1월 15일 목계리를 경유하여 황강리로 이동하여 부대 정비에 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년 2월에 들어서자 아 제8사단은 군단명(미 제10군단 군단장 알몬드 소장)에 의하여 적 중공군 제19병단의 행동을 탐색하는 한편 전면의 적을 격멸하고 홍천과 용두리를 연하는 선을 탈환하여 차기에 있어서의 군단의 총반격 작전의 거점이 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할 기도였다. 당시 본 전투에 투입된 아군 병력은 2개 사단의 22,600명이었고 장비로는 105밀리 유탄포 53문, 각종 박격포 240문, 로켓포 397문, 무반동총 72정이라는 적에 비하여 헤아릴 수 없이 열세한 것이었으며, 또한 수적으로 근 십배에 달하는 적 중공군의 중위 속에서 고전을 전개하게 된 아군은 병력의 신규 보충에 따르는 전투 경험 부족과 기타 모든 면에 불리한 환경에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사단장 최영희 준장과 민기식 준장의 과감한 진두 지휘하에 전 장병 일치단결하여 멸공호적(滅共胡敵)의 필승의 신념을 갖고 있었으며 전기의 호전을 기대하면서 사기는 점차로 충천하고 있었다.
    그리고 후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중동부 전선을 담당한 미 제10군단(한국군 제2, 제5, 제8의 각 사단이 배속되고 있었음)은 당시 적 중공군 제19병단의 10만 대군이 춘천까지 남침한 경로에 대하여 이를 탐지하고 있었으나, 춘천 침입 이후의 행동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였으므로 새로운 적정을 탐지할 목적으로 한국군 제8사단으로 하여금 이의 탐색 임무를 부여하여 북진 공격을 명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실로 군단의 차기 작전을 위하여 1개 사단의 병력을 희생시켜도 적군의 상황과 능력을 탐지하려는 대담한 작전이었던 것이며, 이러한 작전의 제1단계로서 한국군 제8사단이 선정된 것은 칠전팔기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동 사단으로서는 또 하나의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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