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90)
1월 16일 영월에서 철수한 제7사단의 주력은 약간의 병력 분산을 보았으나 전투 능력에 영향을 받을 만한 변동은 없었다.
녹전리로 철수한 제3연대는 주력으로서 1월 17일 미명, 녹전리 서남방 3㎞ 지점인 외용리 부근에 배치하여 후방 경계에 임하였으며, 내리(DS7206)로 이동한 제5연대는 제2, 제3대대의 주력으로서 내리 서방 3㎞ 지점인 용연리(DS7108)에 배치하여 후방 경계에 임하였다. 제1연대는 영월과 그 동방 진지에서 적과 대치 중이었다. 그리고 남대리까지 남하한 적 제9사단은 아 제3사단의 반격으로 남대리 동북방 3㎞ 지점인 선달산 자락과 남대리 지방 2㎞ 지점까지 철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계속적으로 가하는 아군의 압력으로 인하여 시산혈해(屍山血海)를 이루어가며 분산 도주하기에 급급하였다.
이에 따라서 아 제3사단장 최석 준장은 공격제대인 제18연대 제1, 제2대대를 남대리 서방 2㎞ 지점에서 선달산에 이르기까지 진지를 편성하여 차기 작전을 대비하게 하였고, 주실령에 배치한 제22연대 제1대대는 적의 재침을 불허하기 위한 방어력 강화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옥동리 남방에 침투한 적 제2사단의 일부는 1월 16일 원만허(元滿墟)(DR5897) 남방에서 충북과 경북의 도경을 흘러 미 제10군단과 아 제3군단의 제한점인 조천리(DR6992)와 순흥(DR6284)까지 침투 남하하여 미 제10군단의 측방과 후방 교란을 획책할 뿐만 아니라 단양, 풍기, 영주 간의 주보급로를 위협하려 함으로 아군은 이 적을 저지 격멸하기 위하여 미 제10군단 예비대로서 영주 부근에 주둔하여 재편성 및 교육 중인 제5사단을 미 제10군단장 알몬드 소장은 긴급히 투입하였다.
제5사단장 민기식 준장은 분산되어 있는 예하 3개 연대에게 다음과 같은 임무를 부여하였다. 영주 서방에서 이상철 대령이 지휘하고 있던 제27연대는 사단장의 지시에 따라 제1대대를 풍기 남방 5㎞ 지점인 용산동(DR6074)과 382고지(DR5775)에 진출시켜 부근에 남하 준동 중인 적 소수를 소탕 중이며, 제2대대를 풍기 동북 10㎞ 지점인 오대리(DR6689)에, 제3대대를 조천리(DR6993)에 각각 진출시켜 남하 중인 적을 저지하였고, 황엽 중령 지휘하 풍산에서 재편성 중인 제36연대는 풍산 방면으로 남하 준동하는 수 미상의 적 유격대를 섬멸하기 위하여 제1중대로서 하풍동(DR5761), 마촌동(DR5962), 왕천동(DR6161)에 배치하여 이를 저지하고 제1대대 주력은 천등산(DR7156)으로 남진시켜 이 적을 소탕 중이며 연대 주력은 영주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1월 17일 미명 기동으로서 안동을 경유, 영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김현수 대령 지휘하 수상리(DR2787)에서 군단 후방 경계를 계속하고 있는 제35연대는 제8사단과 임무를 교대하고 기동으로서 제1대대를 순흥에, 제2, 제3대대를 풍기에 각각 이동하여 순흥 방면과 풍기, 단양 간의 주보급로를 위협하려는 적을 구축하고자 하였으며, 풍기 동방에 주둔하고 있는 미 제187공수연대는 영주, 풍기 간의 주보급로를 경계하고 있던 중 영주 서방 5㎞ 지점에서 1월 17일 07:00 적 500명과 조우, 약 2시간에 걸친 교전을 계속하여 이 적을 격퇴시켰다.(이상 부도 제25 참조)
1월 17일 남대리를 탈환한 제18연대 제1, 제2대대는 1월 18일 06:00부터 행동을 개시, 북상 도주하는 적을 계속 진격하여 동 18일 13:00 의풍리를 점령한 후 좌우측 고지에 배치하였다. 김도영 대령 지휘하는 제5연대의 전투 정면을 인계받아 남대리에서 북상하는 적의 우익 배후에서 계속 서남방으로 공격을 가하고 있는 제3연대는 제18연대의 이러한 진출에 따라 도주하고 있는 적으로부터 강력한 저항을 받으면서 1월 18일 06:00 의풍리 북방에 진출하였고, 제18연대와 연계를 짓고 계속하여 제18연대의 공격 정면을 담당하고 옥동리를 목표로 초월 공격을 감행하던 중 주동(DS6506), 풍동(DS6505)에서 적의 맹렬한 반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