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94)
이렇게 ‘BULL’ 선에 배치된 아군은 각각 영월, 삼척 북방 선을 유지 강화 중이며 각 부대는 정찰대로서 전면에 적을 수색하였으나 접적은 없었다. 그리고 영월 남방에서 단양 북방에 이르는 선상에 배치된 미 제10군단 미 제7사단 및 아 제5사단과 제23연대는 각각 소탕전을 완료하고 각 군단별 측방 경계를 강화하였다.
그러던 중 수도사단은 제26연대 제6중대의 2개 소대로서 강릉, 옥계 등지까지 원거리 수색을 전개하여 1월 24일 04:00에 이르러 덕우리(DS9864)에서 적 9명을 발견하고 이 적을 격퇴시켰다. 그리고 송계리와 후천 선에서 중점 배치를 실시한 제9사단은 1월 23일에 이르러 다음과 같이 부대 배치를 완료하였다. 즉 제28연대는 광동리에 있는 지휘소를 추동(DS9031)으로 이동 설치하고 제1대대를 문래산(DS8639)~968고지(DS8139)간에 배치하여 인접 기갑연대와 연계를 짓고 제3대대를 제미곡(DS8139)~덕산기(DS7735) 간에 배치하고 제2대대를 연대 예비대로서 추동에 집결하였으며, 제30연대는 제2대대 주력을 시치(DS7435)~720고지(DS7232)간에, 제5중대를 정선(DS7036)에, 제3대대를 720.6고지(DS7232)~역전(DS6930)~899.6고지(DS6928) 간에 각각 배치하고 제1대대는 연대 예비대로서 문곡리에 집결하였다.
그리고 영월 동남방 진지에서 방어 중인 제8연대 제1대대는 정면에 침투한 소수의 적과 대치 중이며 제2대대는 반송 부근에서 1월 23일 14:00 영월 시내에 진출하여 그 북방에 진지를 편성하고 있는 적을 공격하였으나 적의 우세에 진출이 돈좌 되었음으로 동일 23:00 철수하여 282.4고지(DS5414)~(DS5616) 간에 배치하였다.
1월 24일 00:01을 기하여 아 제3군단장 유재흥 소장은 인접 미 제10군단장과 협의한 후 영월 북방에 집결 중인 적에 대하여 협동 공격을 개시하였다. 제3연대는 녹전리에서, 제23연대는 외용리에서, 미 제7사단 제17연대 제3대대는 연당리(淵堂里)에서 각각 행동 개시, 제3연대 제2, 제3대대는 주공부대로서 1월 24일 04:30 제8연대를 초월 공격 동일 14:45에 제2대대는 연래산(蓮萊山)(DS5464)을 점령, 제3대대는 발침산(發針山)을 점령하고 계속 북방으로 공격 중이며 후속하는 제1대대는 동일 14:00 영월 서방을 점령하고 동진 중인 미 제17연대 제3대대와 연계를 지은 후 영월 시내에 진주하였다.
1월 23일 임시로 제7사단장 김형일 준장 지휘에 들어가게 된 제23연대는 영월, 제천 선을 완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제천, 단양 선에서 동진하는 미 제31연대와 호응하여 1월 24일 06:00 영월 남방에서 준동하는 적의 패잔병을 소탕하면서 전진을 감행, 동일 17:00에 이르러 제2대대는 덕복리(DS6115)에 도착하여 제3연대의 후방 지원을 담당하였고, 제1대대와 제3대대는 주문리(DS6508)에서 덕천(DS6008)에 이르는 선상에 진출하여 진지를 확보 중 동일 15:00 미 제31연대의 수색 중대와 각동리(DS5907)에서 연결을 유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풍기 북방에서 진출 중인 제5사단은 그의 진출 임무가 자연 해소되고 현진지상에서 이 부근 일대에 준동하는 패잔병을 소탕하면서 후방 경계에 임하였다.(이상 부도 제26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