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95)
영월 북방에서 집결하여 재침을 기도 중인 괴뢰군 제2군단을 격멸하기 위하여 진출 중인 제3연대는 연대 지휘소 및 제1대대를 영월 시내에 두고 주력으로 하여금 계속 공격을 감행시켜 1월 25일 24:00에 이르러 제2대대는 발침산으로부터 약 3㎞ 전진하여 중앙동 남방까지 진출하였고, 제3대대는 연래산에서 약 2㎞ 북방인 592고지에 진출하여 부근에 배치하였다. 제8연대는 제3연대에 후속하여 제3연대가 점령 견제한 후방 진지를 점령하기 위하여 제3연대를 저지진지에 두고 이동을 개시, 제1대대는 1월 25일 24:00 영월에 도착하였고, 제2대대는 반송 남방 1㎞ 지점 신촌에 집결하였다.
한편, 미 제7사단 제17연대 제3대대는 영월에서 아 제3연대와 접촉을 유지하면서 저지진지를 강화 중이고 미 제31 및 제32연대도 단양, 영월 간 차단 진지에서 수색 경계 중이고 아 제23연대도 인접 미 제7사단 주력과 호응하여 영월 북방 공격을 중지하고 제1대대를 옥동리 북방 5㎞ 간에서 제3대대를 대상촌(DS6307) 일대에서 각각 아 제3군단 좌측방 경계차 차단 진지를 강화 중이며 제2대대는 제8연대 지휘소 동방 2㎞ 지점 덕복원(DS6116)에서 제8연대의 이동을 엄호 중이었다.
삼척 영월선으로 남하한 적은 1월 25일 아 제3연대의 영월 북방 공격과 아울러 전반적인 붕괴 상태에 빠졌다. 이에 따라서 아군은 1월 25일 미명을 기하여 아 제3군단과 미 제10군단의 전투지경선 변경과 아울러 육본 작전 지시 제38호에 의거 진출 목표인 평창, 강릉 선을 지향하고 전반적인 공격에 이전하려 하였다. 1월 25일 영월 북방 연래산 및 발침산 북방 3㎞까지 진출한 제3연대는 군단 전투지경선 변경에 따라 약간 철수하여 제2대대를 제하리(DS5118)~발침산(DS5317) 간에 제3대대를, 동동(DS5418)~592고지(DS5518) 간에 각각 이동 배치하여 진지를 정비하고 있으며, 연대 지휘소는 영월 시내로 이동하고 제1대대는 영월 시내에서 연대 예비대가 되었다.
제8연대장은 제3대대를 두평, 완실산 간에서 진지를 확보하게 하였으며, 제1대대는 영월, 제2대대는 신촌에서 각각 집결하였다. 제5연대장은 1월 26일 연대 지휘소를 석경리로부터 의림리로 이동하고 주력을 길운리(DS6220), 가탄리(DS6820) 간으로 진출시켰다. 그리고 미 제17연대 제3대대는 와용리(DS4816) 부근 일대 진지를 확보하고 영월에 있는 아 제3연대와 접촉을 유지 중이며 미 제7사단의 주력은 제천, 단양 중간 입석(DS4904)~승춘(DS5403) 간의 차단 진지에서 아 제23연대와 수색 접촉을 유지하면서 북진 중이었다.
1월 26일 영월 북방에서 집결하던 적 제2군단의 패잔병은 아군의 공격으로 또다시 평창을 지향하고 퇴각함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서 아군은 육본 작전 지시 제38호에 의거 퇴각 중인 적을 포착 섬멸하기 위하여 계속적인 추격을 감행하였다. 이와 반대로 영월을 중심으로 아 제3군단과 미 제10군단의 제한점 서방 2㎞ 간의 공간 진지는 미 제7사단의 획기적인 공세로 인하여 완전히 연결이 유지되었으며, 아군 후방 일곡, 오양리에 준동 중인 적 제9사단의 패잔병도 미 제31연대와 아 제23연대의 협공에 의하여 완전 소탕되었으므로 후방 교란의 위협도 제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