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35)
제3항 장진호 지구 철수작전
단기 4283년 10월 31일 흥남에 상륙 이래 울창한 삼림과 암석지대로 형성되고 있는 장진호 지구에 진출한 미 제10군단과 당시 군단장이던 알몬드 소장은 그동안 군단 지휘소를 함흥에 설치하고 있으면서 장진호 지구에서 패퇴 도주하는 적을 포착 또는 격멸하는 일조의 소탕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동시에 미 제10군단은 동북 국경으로 진출하는 아 제1군단의 작전을 엄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돌연 11월 4일 이 지구에 투입 반격하는 중공군 제3야전군의 주력부대인 6개 사단 이상 병력의 포위공격은 미 제10군단과 아 제1군단에 대하여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이들 중공군은 장진호 저수지를 중심으로 공세를 전개하여 오는 동시에 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피아간에는 일대 격전이 전개되었다.
이에 앞서 미 제10군단 예하의 제1해병사단은 신동리에 1개 대대, 고토리에 1개 대대, 장진호 저수지에 1개 대대를 각각 배치하고 사단으로 연결하는 보급로를 방어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동안에 다른 2개 대대는 유담리의 전방 진지로부터 적의 부단한 중압을 받으면서 11마일 남방 하갈우리의 사단 사령부 부근으로 철수하였다.
일방 장진호 저수지의 동단에서 작전하고 있던 미 제10군단 소속 미 제7사단의 2개 대대로 구성된 기동부대도 숫적으로 압도적인 중공군의 공격을 받아 재빨리 저수지를 건너 철수에 성공하는 동시에 즉시 하갈우리에 있는 제1해병사단과 합류하였다. 이처럼 미 제10군단은 12월 4일 장진호 저수지 일대의 적진으로부터 부대를 철수시켜 하갈우리에서 합류시키는데 성공한 미 제1해병사단과 미 제7사단은 거듭 적과의 지연전을 전개하면서 일단 적의 압력을 피하고자 고토리 선까지 병력을 철수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미 제1해병사단과 미 제7사단이 이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탈출 작전을 감행하고 있는 동안 급거 동 지구의 미 제10군단을 구원하기 위하여 새로 미 제3사단이 북산 내도하였으니 미 제3사단은 예하의 병력을 가지고 특공 기동부대를 편성하여 수동리 선까지 북상 진격하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거기에서 고전 중이던 미 제1해병사단의 1개 대대를 적의 포위공격으로부터 구출하는데 성공하였고, 이 구조된 부대들은 다시 부대를 정비한 후 이로부터 고토리에 이르는 도로를 확보하는 임무에 임하였다. 그리고 10월 9일에는 또다시 이들 부대들은 전선을 연결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와 같이 질서 있는 작전으로 말미암아 미 제10군단은 점차 그 주력을 산맥으로부터 해안선 상의 평지로 전출하게 하여 12월 11일에 이르러서는 미 제10군단 주력이 함흥평야에 집결을 완료하였다. 이 전투에 있어서 미 제10군단은 중공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얼음 덮인 도로를 따라서 60마일인 혈로를 뚫고 행군을 거듭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전에 있어서 특히 장진호 지구 작전이 중공군의 전진을 완전히 저지하지는 못하였으나 국군과 미군이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 이면에는 경험 많은 용사들을 상실하였다는 것이며, 또한 이 지구를 중심으로 전개된 지상 전투에 호응한 대대적이고 효과적인 공중지원과 해상으로부터 공격하는 해상공격의 공이 크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