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6(목)후조,선비족,그리고 고구려

후조를 건국했던 석륵은 333년에 죽고 뒤를 이어 석호가 권력을 잡는다.
선비족 모용씨는 고구려와 계속 싸웠는데 342년에는 고구려를 대대적으로 침공해서
수도였던 '환도성'이 함락된다.
물론, 환도성의 함락원인은 작전의 실패였다.
모용씨가 두갈래 길로 침입을 했는데
북도에 15000명
남도로는 모용황이 정예병 4만을 거느리고 침입한다.
그런데, 고구려가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
북쪽에 정예병 5만을 보내고,
남쪽길은 소수의 병력으로 고국원왕이 직접 출정한것이다.

기록에는 북쪽길은 평탄하고, 남쪽길은 협곡이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하지만 결과는 고구려의 패배였다.
환도성이 함락되고,
삼국사의 기록에는 고국원왕의 아버지인 미천왕의 무덤을 파헤쳐서
시신을 가져가고, 모친과 부인, 그리고 백성 5만을 끌고가면서
환도성을 파괴했다는 것이다.

김부식의 기록에 대해 신채호선생은 일찌감치 의문을 제기했다.
<조선상고사>에 따르면, 김부식의 삼국사를 인용해서
동천왕때 위나라 무구검이 침입해서 환도성이 파괴되고
247년에는 평양성으로 천도를 했다.
미천왕은 331년에 죽었고
고국원왕이 342년에 환도성을 보수해서 천도를 했다.

단재가 보기에,
모용황은 고구려가 환도성으로 천도하는것을 보고
자신들을 공격할의도가 있는것으로 보고 선수를 친것이다.
그 결과 작전실패(?)까지 겹치면서 환도성이 함락되기는 했지만
미천왕은 평양성에서 죽었고, 그 근처에 능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따라서, 환도성에서 미천왕의 능을 파헤쳐 시신을 가져갔다는 것은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이다.

결론을 말하면 맞는 말이다.
기록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또 이런점도 고려해야 한다.
모용씨가 환도를 공격할때 북도로 갔던 15,000 군대가 몰살했다는 점이다.
환도성이 아무리 크다해도,
북쪽길과 남쪽길이 얼마나 멀겠는가.
북도로 갔던 5만 군대가 적군을 몰살시키고 곧바로 남도로 이동했을 것이고
모용황의 입장에서는 큰 위험에 처할수 있어서
급히 후퇴한 것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한족들은 역사책을 쓰면서,
승리를 과장하고 많은 근거없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당시의 기록은 당나라 이세민이 지시해서 만든 <진서>에 실린 내용인데
이세민이 누구인가.
21세기에도 기록을 조작하는 한족들인데
당시에 어떤 짓을 했을지 분명하다.

그나저나 영상을 만들었는데
하다보니 2시간 짜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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