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3 러시아, 이란, 조선의 전 전선에 걸친 지정학적 대반격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후 국제정치질서가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같으면 50년이나 100년이 걸려야 가능했던 변화들이 최근 2-3년 사이에 일어나고 있다. 현재에 사는 우리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이토록 빠른 것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사건들에 함몰되지 않고 조금 거리를 두고 위에서 바라본다는 자세를 지니면 어느정도 시대적 변화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법이다.
현상을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면 전체상을 파악하기 어렵고, 대부분 이데올로기적 함정에 빠지기 쉽다. 내가 쓰는 글을 어떤 사람들은 보수적이고 이야기하고 어떤 사람들은 좌파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필자는 그런 이념적 방향에 구애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전통적인 개념에 따르면 나는 중도우파적 관점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이념이란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이미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역사적 유산으로 바뀔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한다. 시대적 변화는 새로운 퍼스펙티브를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정학적 대반격이란 러시아를 중심으로 전세계적인 규모에서 미국의 지배체제에 도전하는 움직임들이 본격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말이다. 현재 일어나는 변화는 미국과 서방에 대한 나머지 세계의 도전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세계의 상당수 국가들이 현재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거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서방에 대한 도전의 최선봉에 서고 있는 국가가 러시아이며, 이란과 조선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고 하겠다. 중국은 미국과 서방의 세계관에 대한 도전을 하기 보다는 미국과 서방이 구축한 세계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가 최근 들어 그런 노선을 바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중국이 미국과의 경제적 영역에서 경쟁을 하고 있다면, 러시아는 국제정치적 거의 모든 영역에서 미국과 서방의 지배체제에 대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하겠다.
최근들어 러시아, 이란, 조선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러시아는 1991년 소련해체이후 상실했던 중앙아시아와 까프까즈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거의 다 회복했다. 그동안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까프까즈 국가들은 러시아를 벗어난 국가발전을 시도했으나 결국은 내륙국가의 한계로 인해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가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얼마전 조지아 총선은 러시아가 그동안 상실했던 과거 소련의 공화국에 대한 영향력을 다시금 재확립했다는 증거가 아닌가 한다.
러시아는 동구권에 대한 영향력의 일부도 다시 장악하고 있다. 특히 헝가리와 발칸지역의 슬라브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상당부분 회복했다. 그동안 미국과 서방에 밀리기만 하던 수세적 태도에서 벗어나 공세적인 상황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 같다.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공세적인 태도를 취하고 헝가리와 발칸지역 국가들이 친러적 태도를 취하는 것사이에는 일정정도 선택적 친화력이 존재한다고 하겠다. 전황은 외교도 지배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평가한 것은 전쟁의 결과가 우크라이나 땅을 벗어나 거의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전황이 더욱 빨리 전개되어 러시아의 승리가 확정적이 될수록 지정학적 변화의 폭과 깊이는 더 크고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 전황은 이전과 매우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러시아는 여전히 우크라이나군의 인명살상에 주안을 두고 있지만 소부대단위의 활발한 전술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측방이 노출되기 때문에 참호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소부대 단위의 종심깊은 전투행동이 자주 관찰되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군의 전선에서 소부대간 간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 군의 병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러시아군의 소부대 행동이 활발해지면서 전선은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이런 전선의 확대는 가뜩이나 부족한 우크라이나군의 행동범위를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철수할 때는 빨리 철수해서 전선을 재조종하여 전투정면을 줄여야 하는데 우크라이나군은 그럴 능력이 없는 것 같다. 연대 및 사단단위 이상의 제대 지휘관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융통성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우크라이나군은 전선부대의 철수와 재배치와 같은 결정을 현지 지휘관이 아니라 젤렌스키가 결정하고 승인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러시아군의 진격속도는 시간이 가면갈수록 점점 더 빨라질 것이다. 이에 비례해서 국제정치적 변화의 속도도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지정학적 대반격은 우크라이나 전세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지구의 정반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두가지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란의 서아시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와 조선의 한반도에서 미국에 대한 도전이다.
이란은 이번에 서아시아지역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마음을 먹을 것 같다. 이란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이를 공식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현상은 미국의 서아시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 상실로 귀결된다. 현재 서아시아지역의 분쟁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이란과 미국의 충돌이자 경쟁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이란은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을 받겠지만, 러시아와 중국은 이란에 대한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이란은 독립적이고 독자적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과 이란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은 그 성격과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반격에 대한 재반격을 선언했다. 미국은 사태를 가급적 무마하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이란이 미국 대선이전에 다시 이스라엘을 공격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은,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전략적 우위를 장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지금 현재 진행되는 양상을 보면 앞으로 이란은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에 대한 지상군 공격을 실시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조선의 현재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현재 언론과 전문가들은 조선군의 러시아 파병에 주목하고 있지만 현재 관측되고 있는 조선과 러시아의 움직임을 단순하게 조선군대의 쿠르스크 지역 파병으로 보기에는 심상치 않은 측면이 많다.
조선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러시아 파병보다 오히려 더 한반도에 뭔가 큰일을 일으킬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조선은 현재 윤석열 정권이 지속적으로 자신들을 물고 늘어지는 상황을 차단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2024년 1월 1일 남북관계를 민족문제가 아닌 국가관계로 규정한 것은 북한이 남한에 대해 도발을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적대적 두국가 관계라는 것은 현실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남한도 북한과 적대적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입장인 것이다.
조선이 적대적 두국가관계를 선언한 것은 그동안의 대남전략을 완전하게 수정하여 새로운 국가발전전략을 수립했다는 것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조선은 이제 한국에 얽매이지 않고 러시아와 중국을 중심으로 구축되는 유라시아 체제를 통해 경제적 활로를 찾는다는 것이다. 조선은 한국에 의존하지 않고 현재의 국제정세를 이용하여 독자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이 자신들의 국가발전 전략을 추진함에 있어서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윤석열 정권과 미국의 도전이다. 조선은 핵과 미사일을 보유하면 한국과 미국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여전히 윤석열 정권과 미국의 군사적 위협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최근 윤석열 정권이 평양에 무인기를 보낸 것은 조선으로 하려금 뭔가 결정적인 행동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조선이 군사대비태세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은 전방포병부대의 전투대비태세를 강화하는 한편, 전략핵무기의 대비태세도 강화했다. 미국 대선을 바로 앞두고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ICBM을 시험발사했다.
조선이 이런 시기에 최선희와 고위장성들을 러시아로 보내는 것은 무슨 이유때문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런 문제는 가능한 상황을 추정하는 수밖에 없다.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경우를 상정해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상황(조선의 방책)은 한국에게 강력한 군사적 타격을 가하고 미국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ICBM으로 협박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러시아 극동해군이 동해와 대한해협까지 진출하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최선희가 모스크바로 날아가기 전에 블라디보스톡에 머물렀다는 것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조선이 한반도에서 강력한 군사적 타격을 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과의 관계를 완전하게 떨어뜨리고자 하는 시도를 하는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미국 대선이후에도 윤석열 정권이 계속 조선과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하면 조선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방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은 한국과의 군사적 충돌을 화력교환으로 한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로 휴전선 일대의 주요 도로를 모두 폐쇄하고 지뢰를 매설한 것이다. 이런 조치는 만일 조선이 한국에 대한 화력 도발을 시작하면 그 정도는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정도의 수준을 한참 초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엔에서 조선 외교부 대표가 말했다는 내용이 마음에 걸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상투적 위협의 범위를 훨씬 넘어선 적대세력들의 무모한 군사적 대결소동과 날로 위험하게 진화되고 있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군사적 위혐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현재와 미래의 그 어떤 위협과 도전에도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이 지향하는 곳은 바로 한반도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그냥 지나갈 내용이 아니다.
종합해 보면 러시아, 이란, 조선은 미국 주도의 질서에 모두 힘을 합쳐 대반격으로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런 상황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 한국이 지금 대비해야 하는 것은 조선인민군 특수부대의 러시아 파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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