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27 이란전쟁 58일차, 이란전쟁을 평가하는 관점에 대해, 권위주의 체제는 타도해야 하는가?
서양사 공부를 했다. 그러면서 역사의 필연적 발전과정이 정치적 자유를 기반으로 한 자유주의라는 생각을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 들였다. 한국은 정부수립이후 아마도 나와 같이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최근 들어 그런 관념들이 일종의 세뇌와 비슷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인간이라는 종의 본질상 모든 조직은 권위주의적 체제가 불가피한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무리를 이루는 모든 동물은 권위주의적 조직의 양상을 보인다. 인간이 특별하다고 하지만 원래 동물이라는 점에서 동물적 행태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이 짐승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것은 자기애의 반영일 뿐이라고 하겠다. 인간은 짐승의 포식자의 지위에 있을 뿐이 아닌가?
현재의 정치제도와 체제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동안 수십년동안 민주주의의 우월성이란 착각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깨우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양적 해석의 매몰에서 벗어나 보니 우리가 말하고 있는 민주주의란 자코뱅 민주주의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고, 결국 인민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에 더 가깝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자유민주주의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란 용어의 합성인데 이것을 원래 상호 모순적인 개념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인 것이다. 정치철학을 하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근원을 따져가면 필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대척점에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원래 정치제도와 사상은 현실의 산물이다. 자유주의는 영국에서 발전했고 부르주아지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현실적 모색이었다. 민주주의란 프랑스 혁명에서 상퀼로트를 대표로 하는 무산자의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현실적 모색이었다. 그러고 보면 영국에서 투표권의 차등부여와 1인1표의 보통선거권은 근본적으로 다른 현실에서 출발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선거를 한다고 해서 민주주의는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간파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역사적 현실이라는 관점에서 출발부터 따져 보자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서로 화해하기 어려운 계급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란 자유주의를 민주주의라는 허위의식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사실상 인간의 정치제도가 모두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소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대중에게 부여되는 정치적 자유는 오로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실질적 지배자인 부르주아지의 경제적 이익을 훼손하지 않는 한계내에서만 허용된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늘날 사실상 양분되다시피한 세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세계를 전체주의와 민주주의로 구분했다. 전체주의라는 용어가 등장한 배경은 나찌독일과 소련을 같이 묶어내기 위해서 였다. 전체주의라는 용어는 매우 가증스런 의도를 지니고 있다. 전승국이자 전시가장 강력한 동맹국이었던 소련에 대한 이념적 봉쇄를 위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파시즘과 사회주의는 전체주의라는 용어로 하나로 묶을 수 없는 정반대의 정치적 현상이라는 것도, 소위 학자들은 깡그리 무시했다.
이후에는 권위주의체제라는 용어로 오늘날의 중국과 러시아, 조선과 이란을 규정하고 있다. 미국과 서구가 권위주의 체제라고 규정하는 것은, 상대를 악마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의 반영이다. 그런 점에서 전체주의와 권위주의라는 용어는 동일한 정치적 맥락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화 과정에서 민주주의라는 열병을 앓았다. 그 결과 정치적 자유는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 댓가로 우리는 무엇을 상실했는가? 소위 군사정권시대에 두텁게 형성되었던 중산층의 붕괴라는 댓가를 지불했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화의 댓가로 대중들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민주화의 댓가로 한줌 민주화세력의 정치적 입신을 위해 중산층의 상실이란 댓가를 치른 것 아닌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양극화란 숙명이다. 자본주의체에서 중산층이 형성되는 것은 매우 협소한 조건에서나 가능하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필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적 군사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파악하기 바란다. 필자는 우리가 겪은 역사를 비판적으로 회고하고자 할 뿐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인간의 정치제도는 본질적으로 권위적일수밖에 없다. 미국과 서구도 본질적으로 권위주의체제에 불과하다. 오늘날 트럼프의 미국을 누가 비권위주의 체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이 보이는 행태는 역사상 그 어떤 국가보다 더 권위주의적인 체제를 지니고 있다. 의회와 법원이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형식에 불과하다. 내용적으로 보면, 현재의 미국은 그 어떤 국가보다 권위주의적인 양상을 지니고 있다. 원래 자본주의 국가체제는 그 속성상 권위주의적인 경향을 지닐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체제는 자유주의적이지만 민주주의적이 않다. 자유주의도 권위주의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고, 민주주의도 권위주의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권위주의적 존재이다.
아마도 전세계에서 가장 정치적 자유를 많이 향유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한국이란 사회의 특수성, 그리고 민주화 성취과정의 결과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자유의 확대와 경제적 성취에서의 소외는 항상 같이 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간파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서구가 마치 역사적 진보의 선상에 서 있는 것처럼 우리가 착각한 것은 결국 그들의 정치공작에 속은 결과라고 하겠다. 서구의 학문적 성취라는 것이 결국은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필자가 이런 개념적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현재의 지정학적 대격변 이후 우리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위해서는 기존의 것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과 재검토가 필요하다.
게다가 이란전쟁의 와중에 이란을 권위주의 체제이기 때문에 타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지적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이란이 권위주의 국가라면, 사우디를 위시한 걸프군주국가들은 이란보다 덜 권위주의적인가? 이스라엘은 권위주의체제가 아닌가? 조선을 권위주의 체제라고 비난하는 것도 결국은 그런 주장을 하는 자들에게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