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3권(26)
제4항 안동 부근 전투
7월 29일의 정황(부도 제16 참조)
단양 죽령을 침공하고 남하한 적 제8사단 주력은 예천 방면으로 향하고 적 제7사단은 풍기, 영주를 계속 침공 제8사단 일부 병력과 더불어 안동을 향하여 남하하였다. 한편 내성에 침입한 적 제5사단의 일부 병력은 일월산, 영양을 경유, 진보, 청송 부근까지 침투하여 온 적의 유격대 및 제12사단과 합세하여 안동을 포위할 태세를 취하였다.
아 제8사단은 영주에서 적과 교전하면서 축차로 병력을 철수, 7월 28일에는 사단사령부를 옹천에 설치하고 제21연대(제25연대 2개 대대 배속)를 349고지~오동을 연하는 선에 제16연대를 397고지~428고지를 연하는 내성강 남방 능선 일대에, 제10연대를 428고지~548고지를 연하는 선에 각각 배치시키고 7월 29일 03:00에 내원한 수도사단 제1연대를 조운산 일대에 배치하여 영주 방면에서 옹천으로 남침하는 적에 대비하게 하였다.
한편 적의 제7사단 주력은 영주~안동 간의 도로를 따라 금광리 남방에서 내성강을 도하하여 아 제16연대의 정면으로부터 공격을 가하고 적 제7사단의 1개 연대는 원천동 방면으로부터 아 방어선 우측의 제21연대에 적 제8사단의 일부 병력은 화방으로부터 아 방어선 서측의 제10연대에 삼방면으로 각각 대공세를 취하여 피아간에 격전이 전개되었으나 아군의 방어선은 적의 강습에 붕괴되고 20:00에 아군은 사단사령부를 신기로 이동하는 동시에 예하 병력을 철수시켜 제16연대는 293고지~내가메를 연하는 선에, 제21연대는 319고지~덕거리를 연하는 선에. 제10연대는 199고지~389고지를 연하는 선에 각각 배치하여 안동 점령을 기도하는 적 제7사단 및 제12사단에 대비하게 하고 수도사단 제1연대는 안동 경유, 포현 서방 226고지~265고지를 연하는 선에 배치하여 예천 방면으로부터 안동에 대하여 측면 공격을 기도하는 적 제8사단에 대비하였다.
7월 30일의 정황(부도 제16 참조)
옹천을 점령한 적 제7사단 및 제8사단의 일부 병력은 옹천에서 합류하여 계속 남하하여 적 제7사단의 주력으로서 아 방어선의 정면인 제21연대에 공격을 가하여 중앙 돌파를 기도하는 한편 1개 연대로써 제10연대를 공격하여 제10연대와 제1연대의 방어 간격을 뚫고 안동 서측으로부터 위협을 가하였고 예안 방면으로부터 우회 남하한 적 제12사단의 1개 연대도 안동 동측에 압력을 가함으로써 중앙 및 좌우 삼면에서 안동을 포위하려는 기세가 농후하였다.
이와 같이 적의 공격이 계속 되었을때도 불구하고 아군은 작일의 배치선에서 진지를 고수하고 적의 공격을 극력 저지하고 있었으나 이로 인한 막대한 손해와 계속되는 전황의 불리로 10:00에는 사단사령부를 신기로부터 안동 북방 3㎞ 지점인 211고지로 이동하고 12:00에 각 연대는 전선을 정리하여 병력을 철수, 안동 북방 제2방어선에 배치하였다. 즉 제16연대는 335고지~262고지 북방 능선을 연하는 선 일대에, 제21연대는 262고지~오산동~맥현(麥峴)을 연하는 선에, 제10연대는 맥현~115고지~양제곡을 연하는 선에 각각 배치하였으며, 제1연대는 작일의 배치선에서 적의 남침에 대비하여 진지를 강화하였다.
한편 수도사단은 제8사단의 지원 및 후비로서 예천에 제18연대를 잔류시킨 채 안동으로 사단사령부를 이동하였고 제17연대는 육본 작명에 의거 작일 낙동강 서부 권빈리(權彬里)로 이동하였다.
7월 31일의 정황(부도 제16 참조)
적 제7사단 주력이 전차를 선두로 아 제21연대 정면에 공격을 가하자 완강히 저항하던 아군은 옥달봉까지 후퇴하였을 때 국련공군의 지원 폭격으로 적이 일대 혼란을 야기함에 이륵 되자 호기를 포착한 아군은 반격을 개시하여 오산동 북방 2㎞ 지점까지 재진출, 원진지를 확보하였다. 한편 제16연대 동측에 적 1개 연대가 출현하였으므로 이와 교전하여 진지를 고수하고 적의 우회를 저지하였으며, 제10연대는 전차 4대의 지원을 받은 적 소수병력의 공격을 격퇴시키고 진지를 확보하였다. 그리고 수도사단은 안동 북방 2㎞ 지점인 253고지~254고지~노하동을 연하는 선에 배치하여 아 제8사단을 엄호하는 한편 야간에 이르러서는 소규모의 수색전이 전개되었을 뿐이고 대체로 소강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