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콘서트 6월 랑데북 후기

in Korea • 한국 • KR • KO3 years ago (edited)


랑데북


우리의 여름, 하얀 낮과 까만 밤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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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4달 전, MC 이동진님을 제외하고 출연자도 주제도 모르는 체 예약했던 북콘서트 랑데북, 요새 한창 바쁘고 피곤해서 취소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수수료도 아깝고 릴레이 북토크에 도움이 될까 싶어 가기로 결정!

운 좋게도 출연진은 이은결 마술사님과 요새 가장 핫한 SF 소설가 김초엽 님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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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부터 사람이 가득했다. 공연장에 들어선 순간, 무대를 보고 으음, 이게 자본의 맛인가 싶었다. 연극 세트장처럼 네온이 너무너무 예쁘다. 또 옆 자리 거리두기용으로 설치해둔 가짜 관객 판넬도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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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분이 주제에 맞는 영화 혹은 문학을 1편씩 추천하고, 그에 대한 소감이나 인상 깊은 점에 대해서 대담하는 형식이었다. 6월의 주제는 '경계'였고 이동진 평론가는 영화 '경계선', 이은결 마술사는 영화 '모노노케 히메', 김초엽 소설가는 SFt소설 '킨'을 추천했다.

모노노케 히메는 너무 어릴 적 봐서 꼭 다시 봐야지 싶었고 나머지 두 작품도 꼭 언젠가 봐야지 결심했다.



이동진 평론가님은 언어의 연금술사처럼 언변에 막힘이 없으셔서 AI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아재 개그는 여전하셔서 끊임없이 농담을 던지시는 덕택에 분위기가 부들부들해졌다. 이런 무대에서 MC를 보려면 막힘없이 수월한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 걸까 혼자 감탄하면서 보았다.

의외로 정말 좋았던 건 생각지도 못했던 이은결님의 마술쇼를 세 개나 감상할 수 있단 점이었다! 과거 이은결 님은 모든 걸 화려하고 완벽하게 준비해서 단순히 보여주는 형태로 오락적 의미에 치중했다면 요새는 메시지와 이미지 위주로 관객에게 마술을 전달한다고 했다. 그래서 트릭이 밝혀져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마술은 뉘앙스의 영역이다.

그의 말처럼 신기함도 신기함이지만 음악과 퍼포먼스 그리고 메시지로 그의 마술이 강렬한 여운으로 내내 여름밤을 함께 했다. 마술이 이렇게 즐겁고 멋진 예술이구나 처음 경험했다. 또 자신의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이 있다면 자신의 마술 공연을 직접 관객이 되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자신의 글의 독자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얼마 전 떠올린 내 생각과 너무 비슷한 마음이라 흠칫 놀랐다. 처음 읽는 글의 느낌이 너무 궁금했는데 오감을 자극하는 자신의 공연을 생생히 경험할 수 없는 건 더욱 아쉬운 일이다.

그 유명한 김초엽 작가님 소설을 아직도 읽지 않은 자, 작가님은 차분하고 지적인데 소탈한 묘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여름을 가장 좋아하고, 낮에 놀고 밤에 일하기 때문에 밤이 싫다고 했다. 또 어디서 영감을 얻냐는 질문에 생활 속, 주변 인물 등 어디서도 얻고 어디서도 얻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또 주변 인물을 차용할 때, 어떤 순간과 한 특징을 차용하지 절대 통째로 그 인물을 빌려오지 않는다고 했다. 워낙 장르가 SF이기도 해서 이제까지 주변인이 왜 내 얘기를 썼냐고 화를 내는 경우는 없었다고. 프로 소설가라면 응당 그런 거구나 싶었다.

콘서트는 전체적으로 즐겁고 유쾌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한 번 더 가고 싶진 않다. 가볍게 접근하기엔 좋은 공연이지만, 세 가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 2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당연히 그만큼 깊은 이야기가 오고 가기에는 제한적이었고, 심층 질문이나 토론도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특히 마지막 영화 '경계선'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를 듣지 못해서 아쉬웠다. 주제를 하나만 정해서 심층적으로 길게 이야기한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내가 기획하는 북토크는 조금 더 관객과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이야기하는 형태가 될 것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참고를 할 수는 없겠지만, 관객으로서 어떤 모습의 북토크를 원하는 지 점검하는 시간이 되어 나름 뿌듯했던 시간, 기분 전환은 확실히 되었고, 코로나 이후로 이렇게 관객 반응 좋은 공연장은 처음이라 덩달아 신이 났다. 역시 공연을 만드는 건 8할이 관객이다.


2021년 6월 19일 by 고물, 공연은 17일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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