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나에게 생일 선물을 주었다.

in Korea • 한국 • KR • KO10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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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 일요일이면 생일을 맞는다. 얼마 전에 이별을 했고, 엄마와도 냉전이기에 내 생일에 크게 관심 없는 친구들 뿐이다. 그래서 내가 나에게 선물을 하기로 결심했다.

화훼농장을 돕기 위한 장미꽃을 팔길래 한번 사볼까 하다가 '에이 무슨 꽃이야. 내가. 그거 뭐 쓰레기 될 게 뻔한데.'라며 잊어버렸다가 날 위한 생일 선물로 생각해 냈다. 꽃을 주문하고 꽃병도 미리 준비해 놓고 장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생일 이틀 전인 오늘 화려한 장미 20송이가 도착했다. 장미가 이렇게 이쁠 일이었나...

남자친구에게 받은 장미꽃 선물을 받았을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 눈에 한송이 한송이 담아도 이쁘고, 마음에 활력이 돋는데 이게 날 위한 선물이라는 게 조금 믿기지 않는다. 살아있는 생물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우리 집에 새 식구가 온 것 같다. 촉촉한 물을 머금은 꽃잎과 향긋한 냄새가 방 안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 마치 친구가 생긴 느낌이다. 꽃을 꺼내 잎을 정리해 주고, 배송되느라 힘들었던 꽃송이는 아직 봉오리를 피지 않고 수줍은 듯이 숨어있다.

침대 맡에 꽃다발을 두었다. 방은 작은 원룸인지라 눈을 돌리면 언제든지 보인다. 볼 때마다 '아, 참 이쁘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장미는 계속해서 바라보고 싶은 얼굴을 가졌다.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평소에 선물 좀 해볼껄.'

하고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 나는 엉엉 울어버렸다. 내가 나에게 선물을 한 적이 별로 없었다는 걸 깨닫고 너무 미안했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돈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기분 좋게 해 줄 무엇이든지 한 번 해줘 볼걸... 그리고 내 내면의 다른 자아는 고마움과 슬픔을 느꼈다. 이렇게 이쁜 선물을 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이제야 선물을 받아본다는 슬픔.

어릴 때부터 나는 갖고 싶은 건 참아야 했고, 선물을 받아본 적도 별로 없다. 엄마 혼자 가정을 먹여 살리는 데에는 나같은 아이는 필요한 걸 갖고 싶어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조차도 물건을 구매할 때 날 위한 게 아닌 돈을 위한 선택을 했다. 맛이 없더라도 더 싼 걸 선택했고, 디자인보다는 싼 옷을 선택했다. 모두 돈을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다. 이제까지 힘들고 험한 날을 어떻게든 버티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준 나야. 정말 고맙다. 앞으로 1년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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