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전쟁 by 매튜 스탠리 》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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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914년 유럽은 이미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군악대가 울리고, 대학 강의실에서는 애국심이 과학보다 우선되기 시작했다. 독일은 자신들의 과학이 세계 최고라고 믿었다. 영국은 뉴턴의 나라라는 자부심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한 독일 물리학자는 우주의 구조를 다시 쓰고 있었고, 한 영국 천문학자는 적국의 논문을 몰래 읽고 있었다.

1. 어린 아인슈타인 — “혼자 생각하는 아이”

1884년, 뮌헨 아인슈타인은 처음부터 “천재”라기보다, 세상과 약간 어긋난 아이처럼 보인다. 엄격한 독일식 교육을 싫어했고, 권위적인 교사를 견디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상할 정도로 “왜?”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나침반 바늘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보며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감각을 처음 느꼈다. 학교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세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2. 에딩턴 — “신앙과 평화를 믿은 사람”

1890년대 영국 에딩턴은 아인슈타인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인물이다. 조용하고, 정돈되어 있고, 수학적 질서를 사랑했다. 그는 퀘이커(Quaker) 신앙 아래 성장했고 폭력과 전쟁을 죄악처럼 여겼다. 아인슈타인이 “직관의 혁명가”였다면, 에딩턴은 “질서를 사랑한 해석자”에 가까웠다. 흥미로운 건, 훗날 상대성이론을 세상에 증명한 사람이 정작 독일인이 아니라 영국의 평화주의자였다는 점이다.

3. 스위스로 떠난 아인슈타인

독일의 군국주의 분위기는 젊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숨 막히게 만들었다. 행진과 복종, 애국심을 강요하는 독일식 교육은 그와 잘 맞지 않았다. 그는 결국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스위스로 떠난다. 취리히 공대(당시에는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어도 입학시험을 통해 들어갈 수 있었다)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중에는 훗날 그의 아내가 되는 밀레바 마리치도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물리학을 토론했고, 시간과 공간, 세계의 구조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이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아인슈타인의 몰두하는 성격, 점점 멀어지는 관계 속에서 둘의 사이는 결국 파국으로 향한다. 졸업 후 현실은 더욱 냉혹했다. 아인슈타인은 대학 자리를 얻지 못했고, 교수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결국 친구였던 마르셀 그로스만의 아버지 도움으로 스위스 특허청에 취직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실패한 청년의 삶처럼 보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세상과 조금 떨어져 있던 그 시간 속에서 그는 오히려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타인의 발명품 도면을 검토하던 청년은 퇴근 후 머릿속에서 빛을 따라 달리고, 움직이는 시계를 상상하고,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인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그 고독한 사유 속에서, 훗날 세상의 세계관 자체를 뒤흔들 상대성이론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한다.

특히 스위스 특허청에서 보낸 시간은 단순한 “무명 시절”이 아니었다. 그는 이 시기에 광전효과에 관한 논문을 통해 양자역학의 기초를 놓았고, 브라운 운동 연구를 통해 원자의 실재성을 뒷받침했으며, 마침내 특수상대성이론 논문까지 완성하게 된다. 1905년, 훗날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라고 불리는 그 해에 그는 거의 혼자 힘으로 현대 물리학의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 처음에는 학계도 그를 낯선 특허청 직원 정도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논문은 점점 유럽 물리학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특히 막스 플랑크는 누구보다 먼저 그의 재능을 알아본 인물이었다. 플랑크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읽고 토론하며 학계에 소개했고, 이는 아인슈타인이 학문 세계로 다시 들어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결국 그는 스위스에서 교수직을 얻게 되고, 이후 플랑크와 독일 학계의 권유로 다시 독일로 건너간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때 군국주의를 피해 독일을 떠났던 청년은 이제 유럽 과학계가 가장 주목하는 물리학자가 되어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4. 전쟁 전야 — 유럽은 미쳐가고 있었다

1910년대 유럽은 이미 화약 냄새로 가득했다. 독일은 폭발적인 산업 성장과 군사력으로 영국을 위협했고, 영국은 그런 독일을 점점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긴장은 점차 학문과 대학으로까지 번져갔다. 과학자들조차 민족주의에 휩쓸렸다. “독일 과학” “영국 과학” “프랑스 과학” 원래는 진리를 추구해야 할 학문이, 점점 국가의 자존심과 전쟁의 도구가 되어갔다.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 중 하나는, 당시 수많은 과학자들이 전쟁을 공개적으로 찬양했다는 점이다. 특히 독일에서는 많은 지식인들이 황제와 국가를 위해 전쟁을 지지했다. 그들은 독일 문화와 과학이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고 믿었고, 전쟁조차 문명의 승리처럼 받아들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프리츠 하버였다. 하버는 공기 중 질소로 비료를 만드는 데 성공하며 인류를 기아에서 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독가스를 이용한 화학무기를 개발하며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에게 과학은 순수한 진리 탐구이면서도, 동시에 조국을 위한 무기이기도 했다. “평시에는 과학자는 세계에 속하지만, 전시에는 조국에 속한다.” 그 시대의 분위기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많은 젊은 과학자와 수학자들이 애국심에 이끌려 전쟁터로 향했고, 실제로 참호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세계 최고의 지성들이 서로의 논문 대신 서로를 겨누는 시대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오히려 전쟁과 민족주의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는 독일 내부에서도 점점 고립되어 갔다. 슬프게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방정식의 중요한 해를 처음으로 찾아낸 카를 슈바르츠실트 역시 전쟁 속에 있었다. 그는 조용한 연구실이 아니라 포탄이 떨어지는 전선의 참호 속에서 계산을 이어갔다. 그리고 결국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정확한 해, 오늘날 “슈바르츠실트 해”라고 불리는 결과를 발견해낸다. 훗날 블랙홀 연구의 출발점이 되는 바로 그 해였다. 하지만 그는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전쟁 중 걸린 병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생각해보면 너무 아이러니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우주의 방정식 중 하나가, 인간이 서로를 죽이던 참호 속에서 완성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이 대목에서 책은 단순한 과학사가 아니라, “인간은 위대한 지성을 가지고도 왜 집단적 광기에 휩쓸리는가”라는 질문처럼 읽히기 시작한다.

5. 1914년 — 세계대전

전쟁이 시작되자 유럽은 순식간에 단절된다. 편지는 끊기고, 학술 교류는 멈췄다. 독일의 논문은 영국에서 읽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기에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해간다. 전쟁 속에서 그는 점점 고립되었다. 결혼도 무너지고, 건강도 악화되고, 독일 사회 역시 광기에 가까운 애국주의로 치닫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우주의 방정식을 붙들고 있었다. 마치 인간 세계의 광기와는 다른 차원의 질서를 찾으려는 사람처럼.

6. 영국의 에딩턴 — 적국의 논문을 읽다

에딩턴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모두가 독일을 증오할 때, 그는 독일 물리학자의 논문을 읽고 있었다. 그는 상대성이론을 이해한 거의 유일한 영국인이었다.
그리고 직감했다. “이건 단순한 물리학이 아니다.” 뉴턴 이후 세계관 자체를 바꾸는 이론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끔찍했다. 영국 사회는 독일 과학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에딩턴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 과학은 국경보다 위에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7. 개기일식 — 우주가 답을 말하던 순간

1919년. 아서 에딩턴은 개기일식을 관측하기 위해 원정을 떠난다. 날씨가 흐리면 실패. 측정이 조금만 흔들려도 실패. 하지만 그는 간다. 어쩌면 이 실험은 단순한 과학 실험이 아니라, 전쟁 이후에도 인간의 이성과 진실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에딩턴과 영국 관측팀은 아프리카 프린시페 섬과 브라질 소브라우 두 지역으로 나뉘어 일식을 관측한다. 목표는 단 하나였다. 태양 근처를 지나는 별빛이 정말 휘어지는가. 만약 그렇다면, 뉴턴의 우주가 아니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우주가 옳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과가 나온다.

빛은 실제로 휘어졌다.

뉴턴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이 옳았다. 그 순간 세계는 충격에 빠진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서로를 죽이던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독일의 과학자가 영국 천문학자에 의해 증명된 것이다.

며칠 뒤 신문들은 거의 흥분 상태로 이 소식을 보도한다.
특히 영국 《타임스》의 유명한 헤드라인은 마치 새로운 시대의 선언처럼 보인다.

“과학의 혁명 — 우주의 새로운 이론” “뉴턴의 개념이 무너지다”

그리고 미국 《뉴욕 타임스》는 더욱 극적으로 쓴다.

“하늘의 모든 빛이 비뚤어졌다(All Lights Askew in the Heavens)”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상대성이론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가 직감했다. “세상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아인슈타인은 단순한 물리학자가 아니라, 20세기를 상징하는 천재의 얼굴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위대한 역사적 장면의 중심에 있던 두 사람은 사실 서로 오랫동안 직접 만나본 적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은 전쟁 속 독일에서 고립된 채 방정식을 쓰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영국에서 적국 과학자의 진실을 증명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1919년의 개기일식은, 어쩌면 상대성이론의 승리 이전에 “과학은 국경을 넘어설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었는지도 모른다.

8. 전쟁 이후 — 인간은 무엇을 남겼는가

책을 읽고 가장 오래 남는 감정은 단순히 “상대성이론이 얼마나 대단한 이론인가”가 아니다. 오히려 전쟁과 증오 속에서도, 끝까지 진실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서 에딩턴은 적국 독일의 과학자를 이해하려 했다. 당시 영국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것은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라 거의 신념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반대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역시 독일 내부의 광적인 민족주의 속에서도 끝까지 인간성과 평화를 이야기했다. 그는 국가보다 인간을, 승리보다 진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려 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서로를 이해했던 두 사람이 정작 실험이 끝날 때까지 직접 만나본 적은 없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은 전쟁 속 베를린에서 고립된 채 방정식을 쓰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영국에서 그 방정식이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실은 국경보다 크다는 것.
어쩌면 『아인슈타인의 전쟁』은 상대성이론의 승리를 다룬 책이 아니라, 증오와 광기의 시대 속에서도 인간이 서로를 이해할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책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남는 것은 복잡한 수식이 아니라, 전쟁 한가운데에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았던 인간 이성에 대한 묘한 경외감이다.

마무리 감상

이 책은 단순한 과학사가 아니다. 오히려 한 시대의 인간들이 어떻게 광기 속에서도 끝까지 이성을 붙들려 했는가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우리는 흔히 상대성이론이 살아남은 이유를 “결국 맞는 이론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진실은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는 전쟁 중에도 적국의 논문을 읽었고, 누군가는 조국과 애국심보다 진실을 선택했으며, 누군가는 포탄이 떨어지는 참호 속에서도 계산을 멈추지 않았다. 아서 에딩턴은 적국 독일의 과학자를 이해하려 했고, 카를 슈바르츠실트은 전쟁터에서 우주의 방정식을 풀었으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민족주의와 증오 속에서도 인간과 평화를 이야기하려 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전쟁』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정말로 아인슈타인은 전쟁 속에서 자신의 이론을 지켜낸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책이 지금까지도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상대성이론의 수식 때문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선택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쟁과 증오가 인간을 갈라놓던 시대에도,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국경보다 진실이 더 크다고 믿고 있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머릿속에 남는 것은 복잡한 물리학 공식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질문이다. “지금 우리의 시대에도, 우리는 진실을 위해 어디까지 용기를 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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