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콩과의 전쟁

in #kr-diary7 months ago

 옆 건물 울타리를 타고 마구 자라난 돌콩이 결국에는 더 높은 내 화단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내가 조금 소홀한 시기, 장마철에 자리잡기 시작한 게 분명한 돌콩 군단은 경계를 형성하고 있는 사철, 장미를 마구 휘감았다. 질식시킬 기세로 밑동부터 가지 끝까지 칭칭 휘감고, 더 감을 게 없으면 자기들끼리 휘감으며 나선형의 탑을 만들었다. 나는 수시로 덩굴을 잡아 뜯으며 확산을 막는 것 말고는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잠깐 저지 당한 덩굴은 다시 외부에서 스멀스멀 다시 기어왔다.
 경계에서 거리가 먼 절반은 무사하고, 나머지 절반은 난장판이 되었다. 사철을 고사시키고도 계속해서 뻗어난 후 결국 자멸해버린 덩굴은 징그러웠고, 장미가 덩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부러지고도 자신을 휘감은 덩굴 때문에 쓰러지지도 못하고 공중에 떠있는 모습은 공포스러웠다. 덩굴에는 무용지물이던 가시는 나를 책망하듯 죽어서도 날카로움을 잃지 않고 나를 찔러댔다.

 여름 내내 다투었으니 꽤 길었다. 싸움이 길어지며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었지만, 결국은 돌콩의 기세가 잦아들었다. 그러니 가려져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감아볼 테면 감아보라는듯 평소보다 배는 두꺼운 줄기를 뻗어낸 장미, 칭칭 감겨 질식한 가지를 버리고 밑동에서 새 가지를 뻗어내는 사철.
 게으른 사람의 정원은 이번에도 견뎌낸 모양이다.

Coin Marketplace

STEEM 0.29
TRX 0.12
JST 0.032
BTC 57824.15
ETH 2965.89
USDT 1.00
SBD 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