求道의 길 Part1 : 내안의 부처를 찾아서.. No.19

in #kr-newbielast year

도서명: 허공의 몸을 찾아서 "불교방송 교리강좌 강의(안)"

저 자: 석지명

P.468 훈습(대승기신론)

꽃밭에 가면 꽃향기가 몸에 배고,
생선가게에 가면 비린내가 몸에 밴다.

우리가 진여 眞如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져서
윤희의 세계로 타락하거나
윤회의 세계로부터 진여의 세계로 올라가는 데는
훈습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업이라는 것은 습관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습관적인 행동은
내면이나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다.

또 수행은 나쁜 방향의 습관적인 행동의 반복인 만큼
자신의 내면이나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을 것은 뻔하다.

업이나 수행이 모두 내적이거나 외적인 훈습의 결과이다.

윤회의 세계에서 열반의 세계로 돌아가려면

맨 먼저 진여의 마음, 깨끗한 마음이
무명의 마음을 훈습해야 한다.

여래법신은
부처님의 세 가지 몸인
법신 보신 화신 중에서 법신을 말한다.

법신은 우주진리 그 자체이고
보신은 중생의 몸으로 수행을 해서 얻은 부처님의 몸이다.
그리고 화신은 법신으로부터 중생의 세계로 내려온 부처님이다.

P.483 변하지 않는 성품(능엄경)

난다고 하는 것은 한 조각의 구름이 모이는 것이요.

죽는다고 하는 것은 한 조각의 구름이 흩어지는 것이다.

뜬구름 자체에는 실다움이 없으니
생사의 오고감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물건이 항상 스스로 드러나 있으니
그것은 생사를 뛰어넘는 것이다.

P.524 화엄경 ‘도의 근원으로서의 믿음’

믿음은 불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입니다.

모든 선한 법을 더욱 자라게 하며
일체의 의혹을 없애고
최상의 깨달음을 열어 보입니다.

P.539 마음과 부처와 중생(화엄경)

마음은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와 같아서
갖가지 오온 五蘊을 그려낸다.

그래서 마음은
이 세상에 있는 것 무엇이든지 다 그려낸다.

마음과 같이 부처님도 또한 그러하며
부처님과 같이 중생도 또한 그러하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은 똑같아서 차별이 없다.

모든 것은 다
마음을 따라서 변하는 것을
모든 부처님네는 다 잘 아신다.

만일 누가 이렇게 알면
그 사람은 바로 참 부처를 볼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부처가 될 가능성도 있고
중생이 될 가능성도 있는
중립의 상태에 있는데

마음을 깨치면 부처이고
깨치지 못하면 중생이라는 것이다.

마음을 깨쳤느냐 못 깨쳤느냐에 따라서
이름이 달라질 뿐이기 때문에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같다는 해석이다.

우리의 마음은
세상의 모든 것을 지어내고 있고
그 마음이 바로 비로자나부처님이라는 것이다.

마음이 있는 곳에 비로자나부처님이 있고
비로자나부처님이 있는 곳에
모든 세계가 있다.

그래서 화엄경은
마음과 비로자나부처님과
중생의 세계가 다 똑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공기와 물은 이 세상에 꽉 차있다.
부처님의 지혜도
우리 마음에 꽉 차 있다.
우리 마음의 움직임은
바로 비로자나부처님의 움직임이다.

부처님의 작동을 새롭게 만들려고 할 필요가 없다.
이 업의 바다가 바로
부처님 또는 우리 마음의 지혜요, 작품이라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화엄경의 삼매 三昧는 번뇌의 바다,
업의 바다를 있는 그대로 응시하는 것이다.

번뇌의 꽃다발, 번뇌의 바다, 업의 바다가
그대로 비로자나부처님의 몸이 된다.

진실과 거짓, 선과 악, 미와 추가
있는 그대로 부처님의 몸이 될 때
세상에 있는 어느 한 가지라도
부처님의 몸 아닌 것이 없다.

번뇌와 업을 포함해서
세상에 있는 사사물물이
다 부처님의 몸이라면
그것들은 다 우리의 스승이다.

하물며 사람이나 신만을 특별히 집어서
선재동자의 스승이라고 해서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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