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의 무서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라는 표현이 있다. 목적이 선하다면 그 과정에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용인될 수 있다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이 말은 종종 군주론과, 그 저자인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사상과 연결되어 언급된다. 비록 그가 이 문장을 그대로 남긴 것은 아니지만, 결과를 위해 수단을 선택하는 정치의 냉혹함을 설명하는 상징적 문구가 되었다.
오늘은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선고가 있던 날이었다. 한동안 개인적인 일로 바빴고, 오늘 역시 밤늦게까지 회의와 디스커션이 이어져 판결이 나온 사실조차 뒤늦게 알았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포털 뉴스를 통해 결과를 접했고, 보고서를 정리하며 유튜브 등을 통해 여러 해설을 들었다.
사실 나는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군이 국회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인명 피해는 없겠지만 윤석열이 탄핵을 당하고 내란죄로 감방에 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군이 국회의원을 납치하거나 총을 쏘지 않았다고 해도(군인이 수십만명이 아니고, 그들이 실탄을 챙기지 않았고, 벙커를 만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군이 국회 안으로 진입했다는 사실을 단순히 “사상자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의 의도가 없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 행위 자체가 이미 강압적 성격을 지니며, 위헌적 권력 행사로 평가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번 재판부의 판단 역시 그러한 맥락 위에 놓여 있다고 본다.
일부 보수 유투버들은 민주당과 국회가 행정부를 마비시키는 국헌문란적 행위를 했기에, 윤석열이 ‘계몽’의 차원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설령 일정한 문제의식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헌정 질서 위에 군을 동원하는 방식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목적이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헌법적 절차를 넘어서는 수단은 민주주의 안에서 용인될 수 없다.
더 나아가 정말로 ‘계몽’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계몽’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그 목적이 선하다는 전제가 담겨 있다. 문제는 그 선함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느냐이다. 민주주의에서 그 판단의 기준은 개인의 확신이 아니라 헌법과 제도, 그리고 절차다. 계몽을 명분으로 군을 동원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계몽이 아니라 권력의 행사다. 그리고 권력은 명분이 아니라 절차를 통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
윤석열은 부정선거를 알리기 위해, 계몽을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부정선거가 음모론인지 아닌지는 이 논점에서 본질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설령 그가 그것을 진심으로 믿었다 하더라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 권력의 행사는 개인적 확신이 아니라 제도적 검증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정말로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다면, 국회와 사법 절차, 그리고 공론장의 토론을 통해 의혹을 제도권 안에서 다투는 방식이 우선이었어야 한다. 설령 그의 주장대로 국회와 사법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공론장을 형성하고 국민에게 자신의 문제의식을 설득할 수 있는 통로는 여전히 존재했다.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그 자체로 막강한 발언권과 영향력을 보장한다.
비상계엄은 의혹을 설명하고 토론을 요청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을 통해 상황을 장악하려는 선택에 가깝다. 설득이 아니라 통제의 방식이며, 대화가 아니라 힘의 행사다.
그는 정치적으로 미숙했을 수도 있고, 소통에 서툴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권력자의 미숙함은 면책 사유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만큼 더 절차에 의존했어야 한다. 확신이 강할수록, 그 확신을 검증받는 과정 역시 더 엄격해야 한다.
나는 윤석열도, 이재명도 선호하지 않는다. 법적 책임은 행위를 한 자에게 귀속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번 사건의 법적 책임은 분명 윤석열에게 있다. 그러나 그 사태를 낳은 정치적 환경과 대치 구조까지 한 사람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이다. 당시 제1야당 대표였던 이재명 역시 그 긴장과 충돌의 한 축이었으며, 정치적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렵다. 민주당 또한 이번 사태의 전개 과정에 대해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은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의 대립, 타협이 사라진 정치 문화, 지지층 결집을 위한 강경한 언어가 누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박수는 혼자 칠 수 없다. 이는 특정 인물의 일탈을 넘어 우리 정치 전반의 책임과 성찰을 요구하는 사건이다.
이번 선고는 단지 한 사건의 종결이 아니다. 판결문에 담긴 논리는 향후 유사한 권력 행위에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기준이 될 것이다. 그 기준은 이재명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문제는 그 적용의 과정에서 정치적 보복과 방어의 논리가 충돌하며 사회적 갈등이 더욱 격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또 한 번 혼란의 문턱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딱딱한 글을 적어본다. 11시 쯤 책상에 앉았는데 다 쓰고 나니 12시 30분이 넘었다. 개운한 기분보다 씁쓸한 기운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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