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협상론 "서문"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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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저작을 다시 써 더 명저로 평가 받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클라우제비츠가 일생의 저작 <전쟁론>을 말년에 다시 고쳤다던가, 또는 하녀가 실수로 폐지로 오인해 불쏘시개로 써 버리는 바람에 온전히 다시 써야 했던 토머스 칼라일의 <프랑스 혁명사>라던가 등등.

그런데 이러한 작품들은 여하간 모든 콘텐츠가 일단 완성이 된 상태에서, 다시 내용을 썼기에, “다시 썼다.”라는 표현이 성립하는 것이고, 나는 종전의 <협상론> 자체를 채 절반도 완성하지 못하였다. 물론 전술한 대가들만큼, 저작이나 경륜으로 어떤 것을 내세울 수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다시 쓰는 협상론”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그간 일련의 과증을 겪으며 당초 적어놓은 목차와 결론이 달라졌고, 그 일련의 가정을 “인생을 다시 썼다.”라는 거창한 표현으로 한 번 뇌까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신의 인생은 그 사이 뭐가 특별해지셨길래 인생을 다시 썼다는 표현까지 쓰시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딱히 논리적으로 답할 말이 없다. 득도라도 하셨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실은 자신의 욕망을 최적의 지점에서 실현하는 것이 그 본질인 협상론이야 말로 깨닫지 못한 자(인간이 정말 초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은 배제하고)의 구질구질한 테크닉에 불과할 텐데 내가 깨달았을 리가.

그렇다고 거창한 경험을 해온 것도 아니다. 많은 협상론 서적들은 서문에, 자신들이 해낸 굵직한 협상 건을 자랑하곤 한다만 나는 없다. 전 직장에서는 사람들과 인간관계는 상당히 좋지 않았으며, 반 강제로 개업한 변호사 사무실은 처음 예상과 다른 업무 폭주로 인해 제법 잘 굴러가는 듯싶었으나, 좀 편하게 살고 싶어 수임료 단가를 높게 부르기 시작하자 어김없이 클라이언트들이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구워삶은 데도 실패해 아직 미혼. 즉 나는 일상의 사소한 협상 하나 제대로 성사시키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서른에 깨달음을 얻으셔 성인이 된 예수님도 아닌, 대단한 협상 경력도 없는 삼십대 초반의 남성의, 그것도 “다시”까지 쓰셨다는 협상론을 읽게 해야 한다면 응당 독자들에게 이에 대한 어떤 동기의 부여가 제시되어야 할 텐데 보다시피 아무 것도 없다.

그 사이 책은 많이 읽었다. 그런데 실전 경험 없이 책만 읽어봤자, 어린 시절 병법 신동으로 불리어 지휘관이 되었으나 <장평대전>에서 패전해 모국을 멸망시킨 조괄이나, 기산에서 제갈량의 북벌을 말아먹은 마속 정도(물론 이들 같은 기회라도 잡을 수 있는지 그 질문 역시 논외로 한다) 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나이가 먹어도 안 되는 놈은 안 되는 건 마찬가지.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평생 수도원에서 갇혀 산 늙은 수도사가 주인공에게 우주를 지탱하는 힘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을 아직도 기억한다. 육십 년 인생을 신과 우주를 연구하는 데에 썼지만, 그냥 형이상학적인 개똥철학에 불과했고, 주인공은 억지로 그 견해가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붓다의 말씀을 통해 깨닫는 것이 아니라, 그 경전을 일평생 외우며 “깨달음”을 학습하는 이들을 무수히 보아왔다. 법륜 스님이 연애에 있어 그 누구보다 적합한 조언을 해주는 것을 보면, 역시 인생은 유전자의 절대적 지배를 받는다고 단언할 수밖에 없고, 내가 경험 없이도 선험적으로 무언가를 말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볼 객관적인 증거는 지금까지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선험적이 될 수 없다면 경험이라도 충분해야 할 텐데 전술했다시피 별 거 없다. 물론 나는, 외부로 드러낼 만한 것들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은 한다. 친구가 말했듯, 나는 욕망의 덩어리였으니까.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욕망에 솔직했다. 로스쿨에서 꾸역꾸역 법서를 읽던 시절, 나는 공부 같은 건 하지 않아도 예쁜 여자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귀여운 얼굴의 헬스 트레이너가 부럽다고 인정했고 사실 정말 부러웠다(전통적으로 사람들이 선망하던 직업을 이십대에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은 당시에는 별 관심사가 아니었다). 늘 형이하학적이었고, 남의 어떤 가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머리나 가슴 또는 허리 아래가 요구하는 게 뭔지 늘 스스로에게 솔직했고, 통상 그렇듯 나 역시도 쉽게 손에 들어오지 않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더 시선을 주었기에 그만큼 깨질 일이 많았다. 화들짝 놀라 정신 승리를 시전하며 자신이 가진 것 테두리 내에서 살기에는 호기심이 컸으니까. 그래서 굴욕적인 순간들도 많았다만 그래도 이십대 후반 잠깐 동안은, “저는 제가 꿈꾸던 것은 전부 현실로 만들어보았습니다.”라는 말을 해볼 수 있었다.

아마 거기서 고통 없이 죽었다면 어떤 완결성을 가진 그럴듯한 스토리로 인생이 끝났을 텐데. 본인이 올라간 게 동네 뒷산이라도 여하간 그 과정에서 에베레스트 등반만큼의 보람을 느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런데 좀 더 나이가 들자, 내가 올라가며 기지개를 폈던 그 산이 퍽이나 야트막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이 길었다만 여하간 이 글의 주제에 맞게 논지를 이어가면, 나는 많이 부딪혀보았을지는 모르나 범용적으로 여러 사람에게 어필할 만한 협상론을 쓰기에는 경험이 너무 적다.

그래도 한 번 써보자. 일단 이 글은 내게 필요하니까. 누군가 내 글에는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없어서 좋다고 말한 바가 있는데, 그런 욕망이 없을 리는 없다만 여하간 지금껏 써온 많은 것들의 주된 동기가 본인의 정리벽과 필요에 의한 것이었음은 사실이고, 지금 이 글을 쓰는 행위는 내게 절박하게 필요하다. 선험적인 지식도, 경험도 부족한 지금의 모든 이 시간들이, 얼핏 불패의 명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젊은 날 혹독하게 여진족에게 패한 이순신 장군의 상처처럼 어쩌면 미래에 뭔가를 만들어 줄지도 모르겠지. 칸트는 고향 밖을 나간 적이 없다만 우주를 논했고 메르카토르는 한 번도 배를 탄 적이 없지만 세계 지도를 만들었으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어쩌면 그 결과물은 꼭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한다. 원래 목차가 그 책의 절반인데, 다음 장에 설명할 목차의 이유 정도는 한 번 읽어봐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먼저 이 협상론을 쓰는 데에 있어 도움을 준 동서고금의 수많은 서적과 그 저자들에게 감사한다. 지난 1년 간 허브 코헨의 <협상의 법칙>. 마크 고울스톤의 <토킹 투 크레이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손무의 <손자병법>, 보 구엔 지압의 <삼불전략>, 이종오의 <후흑학>,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도널드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등을 읽었으며, 오윤희의 <정반합>과 류재언 변호사의 <협상의 바이블> 정도를 마저 읽어볼 생각이다. 딱히 책을 많이 읽었다고 과시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종전과 견해를 달리하여 도널드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과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물론 해당 저서들에도 좋은 문구가 많은 것과 별도로, 종합적으로는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내 협상론의 적용 대상은 “서로 간 이익”이 있고, “합리적”인 사람들로 국한되지 않는다. 얼핏 이 세상은 멀쩡한 것 같지만, 욕망 대 욕망의 충돌이라는 그 협상에서, 상대방이 정상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냥 거래라면 돈을 포기하면 되지만, 이러한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인 상대는 당신의 가족 구성원, 연인, 친구, 당신을 죽자사자 증오하는 악플러나 또는 당신을 광적으로 숭배하는 스토커 등등의 형태로 당신의 삶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거래의 기술>의 경우 일생에서 대부분 “갑”의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 “상호이익”이 있는 관계에서 성과를 거둔 사례가 주로 적혀 있어,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다(트럼프가 “을”이었던 적도 많지만, 대부분의 경우 금전 이외의 관계가 엮여 있지 않았고, 상대방은 지적으로 우수하고 합리적이었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와 <인간관계론>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온갖 폭력과 기만도 불사하고, 정직함과 인간적 예의를 이용하려 드는 이 사바세계 인간들의 욕망을 너무 순진하게 평가한 것 같다. 기독교와 근대 철학을 베이스로 한 서구문화권 책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후흑을 불사하는 개인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동아시아 사회보다, 신뢰와 정직이라는 프로토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표면적으로라도 기독교와 민주주의적 가치를 기치로 세운 서구 사회가 사회 전반의 힘으로서는 훨씬 강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으로 협상론을 익히는 데에는 그렇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서구에서 현대에 기술된, 협상의 전반적인 부분을 두루 다룬 책으로 높게 평가하는 것은 허브 코헨의 <협상의 법칙>이다. 아마 이 사람은 서구 문화권이 아니었다면 조금 더 적나라하게 책을 기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 어두운 내용을 적지 않고 가벼운 위트를 넣은 것은 그러한 책이 더 대중적으로 잘 팔릴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신중하게 읽으면 이 사람이 쓰고자 하는 진짜 이야기가 뭔지 파악할 수 있다. 즉 협상의 개략적인 뼈대를 책으로 습득하는 데에는 이 사람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그 외에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높게 평가한다. 사실 손무의 <손자병법>에도 중요한 내용은 다 들어가 있지만, 분량이 분량인지라 개별적인 테크닉으로서 배울 것은 <전쟁론>에 보다 많다. 이 책을 상징하는 유명한 말과 같이, 전쟁은 결국 협상의 연장이다. 그리고 그 전쟁은 꼭 “물리적”인 전쟁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상대방(개인 또는 집단)이 정신 나간 짓에 목숨을 걸고 하필이면 그것이 당신의 이익과 깊이 결부되어 있을 때, 그 이유를 파악해야 하나 통상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은 덕에 의한 교화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마크 고울스톤의 <토킹 투 크레이지>와 함께 <전쟁론> 일독을 권한다. 로버트 A. 하인리히가 말한 바, “인간이 가진 멍청함의 힘을 결코 무시하지 마라.”라는 격언을 상기해볼 것. 다만 이 전쟁은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깔아뭉개는 레버리지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랬다면 <거래의 기술>을 높게 평가했겠지. 물론 개별 사례에 따라서는 확실한 레버리지의 사용이 요구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내 협상론은 통상 물리적으로 상대방을 죽이거나 그 집단을 절멸시킬 수 있는 “진짜 전쟁”을 다루는 것이 아니기에, 상대방의 자존심이나 감정과 같은 복잡한 부분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하겠다.

그 이외에 <후흑학>과 <군주론>은 사실상 동일한 주제를 역사적 사례를 통하여 다루고 있는 바, 자신의 경험과 위에 언급한 책들을 읽은 뒤의 문제풀이집이나 사례집 정도로 생각하고 읽으면 될 듯싶다.

늘 내게 가르침을 주시는 시경님께 감사드린다.

지식의 깊이를 더해주신 스티미언 멀린님과 제이미님께도 감사드린다.

또한 전혀 교류한 바는 없으나 국내 유튜버 중 최고라고 평가하며 양질의 컨텐츠를 제공해주신 청화수님께도 감사드린다 .

만나고 헤어졌던 오대양 칠대주의 수많은 여자들에게도 역시 감사한다. 당신들과 지지고 볶느라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고 프랑스어와 스페인어와 아랍어 그리고 쇼나어로 간단한 인사와 애정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별로 숨길 것도 없이 이 문장은 과시하려고 썼다).

지금도 수임료 10%를 깎기 위해 인간적인 도리를 운운하며 나를 파렴치범으로 만드는 수많은 고객들에게 감사드린다. 뒤에서 내 욕을 열심히 하고 다녔던 전 직장 동료들 역시도 마찬가지다. 당신들이 없다면 나는 10년 뒤에도 백면서생이겠지. 이 역시도 숨길 것도 없이, 비꼬기 위해 썼다.

그 외에 지금까지 내게 상처를 주어 어떻게든 변화의 동기를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다. 누군가는 “합리적”이고 “급한” 내가 협상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떤 점에서는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떤 특정한 믿음 체계를 가진 사람이 아니기에, 서로 간에 이익이 되는 지점을 빨리 찾는 편이고 그래서 오히려 양보도 잘 하는 편이다. 하지만 좀 먼 시각으로 보면, 사실 내가 가장 뒤틀려 있고, 그 행위의 진짜 동기도 본인 이외에는 잘 모른다.

나는 무언가를 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여기는 전제가 있다. 그것이 당시 상처가 되었는지 여부다. 우람한 사자가 조그만 개가 짖는다고 거기에 상처를 받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 스탠딩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여자 관객들의 외모 비하도 많이 하곤 했는데, 주로 그 비하의 대상은 누가 봐도 예쁜 미인들이었다. 예쁜 여자한테 못 생겼다고 하면 문제가 안 되지만 그 반대는 큰 일이 나니까. 어머니는 일찍부터 나를, 예민하고 소심한 듯 싶지만 지독하게 무심한 데가 있다고 평가했다. 나이가 들수록 무심한 영역이 넓어진다. 또한 당초 남자답지 않은 성격으로 인해 일찍부터 맨박스를 동경하게 되었고, 기독교 신앙을 버린 이후 별다른 믿음 체계가 없었던 터라 그것이 곧 나의 이념이 되었다. 연기도 평생하면 인격이 된다고, 어느 시점부터 나를 남자답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제법 생기게 되었다. 100%까지는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상처 받은 것은 어떤 식으로든 넘기지 않는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상처를 주고받는다는 것 자체도, 각 사람 간의 욕망이 충돌한 결과다. 소위 자존심이나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또는 감정적으로 상대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 등이 서로를 때린다. 또한 때로는 금전이 그 어떤 감정보다도 서로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강렬한 충돌이 될 수도 있다. 유명한 진화론자의 격언처럼, 번식을 위해서는 살아 있는 생물을 숙주로 몸 안에 들어가야 하고, 마침내 그 새끼들이 그 생물의 몸을 사방에서 찢고 나오는 식의 잔혹사가 여기저기 흔한 이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욕망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 거절된 소원이나 짓밟힌 자존심은 마음의 상처를 만들고 이내 수의처럼 달라붙어 사람을 괴롭게 한다. 당연히 나는 신이 아니기에 모든 것을 이룰 수 없고, 또한 이 협상론을 저술하고자 하는 것도, 그래도 아름답지 않은 세상 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기 위해서다. 나는 내가 이기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조화를 이루어내지 못 하고 부딪히며 긁혀온 그 모든 시간들을 떠올린다.

독일의 작가 하인리히 하이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사람은 응당 자신의 적들을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다만 그들을 모두 목 매단 뒤일 때 한해서 말이다.”

근데 어차피 상처를 받았다고 사람을 다 죽이고 다닐 수도 없는 거잖아. 그렇다고 그냥 넘길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뭐라도 남기는 거지. 위트 있게 써보고자 노력할 이 협상론의 실제 집필 동기는 아마도 실패한 기억들이 주는 고통일 것이다. “인생을 다시 썼다.”는 것은 표면적인 의기양양함과 달리 그 사이 또 충분히 상처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비록 그것이 동기였다고 할지라도, 내가 쓸 것들이 그 이상의 가치는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굳이 말하자면 백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사람은 변하는가, 보다 더 정신적으로 강건해질 수 있는가, 그 근원적인 질문은 뒤로 하고 말이다. 그래도 컴퓨터 게임이나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래서 당신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이 말은 비꼬기 위해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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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출발은 자기 정리인 게 좋은 거 같아요.

그게 아무래도 제일 좋지 않나 싶습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그들을 모두 목 매단 뒤일 때 한해서

용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하이네가

다시 봐도 명언입니다 ㅋㅋㅋㅋ
잘 지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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