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리지 않은 예감
틀리지 않은 예감
모든 일에는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
(미라 커센바움)
잠이 오질 않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오늘밤 잠자기는 어려울 듯하여 이미 마음속으로는 포기를 했습니다. 밤샘은 이골이 나서 괜찮습니다. 하루이틀쯤은 버틸수 있지요.
사실 오늘 뜻밖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산다면 길에서 누굴 만나게 된다던가 하는 우연이 제법 있을 법도 하지만 저는 그런 우연 따위는 기대하지 않고 삽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제게도 생겼습니다. 길에서 우연히 부딪힌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한달전 포스팅 "냉정과 열정 사이"를 기억하시는 분 계시나요? 감사의 씨앗을 몇몇 이웃들에게 분양을 해드렸었죠. 아마 하늘님은 또렷이 기억하실겁니다. 저와 같이 헤멨던 터라. (글보기)
오늘 그 포스팅의 주인공 친구를 만났습니다. 운명같이, 아니 무척이나 어색하게 만났습니다. 사실 인터뷰 기사 이후 그 친구와 카톡을 몇번 주고 받았습니다. 제가 쓴 "냉정과 열정 사이" 글도 보내주었고요. 음... 반응은 바빠서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였습니다. 그 뒤로도 몇번 톡을 보내봤지만 바쁘다는 말만 돌려받았습니다. 우리의 인연은 더이상 없겠구나라고 체념에 이를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 늦게 xx공항이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갑자기 출장을 왔다합니다.
"아직 xx에 살고 있니?"
그래서 만났습니다. 무려 십수년만이었습니다. 아~ 정말 떨리는 맘으로 만났습니다. 그 친구도 저도 어색해서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택시안에서 제가 보낸 글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했습니다. 근처 펍에 가서 맥주 한잔을 들이키고 나서야 겨우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널 생각하면 아직도 힘들고 아파. 그때 너 많이 힘들었잖아. 돈이 짓누르던 시절이었어."
"왜~ 난 좋았기만 한걸!"
"뭐가, 뭐가 좋았는데?"
"전부 다!"
아직도 힘들고 아프다는 친구의 말에 울컥할 뻔했습니다. 무엇때문이었을까 도통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철없는 사고뭉치였다는 건 기억하고 있지만 그런 저로 인해 얼마나 친구가 힘들어했는지는 기억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어떤게 좋았는지 말해봐."
"음... 네가 잘해줬잖아."
"잘해줬지. 근데 너 말 참 안들어서 우리 엄청 많이 싸웠잖아."
"......"
"기억 안나? 너 회사에서 성희롱 고발하고 맨날 울고불고."
"그랬지..."
"너 한국 떠나면서 1억 벌면 돌아오겠다고 했잖아. 그리곤 다시 돌아오지 않았어."
"내가 그런 말을 했어?"
친구의 기억속의 저는 제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형편없었습니다. 겉으론 웃으면서 이야기를 들었지만 마음속으론 울고 있었습니다.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습니다. 참 아팠던 시절, 고단했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다라고 기억하는 저와 달리 저로 인해 힘들었던 사건들로 가득한 기억을 갖고 있는 친구에게 미안해졌습니다. 어쩜 그리도 세세하게 기억하는지 가능하다면 그 모든 기억들을 지우개로 박박 지워주고 싶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친구인데 말이죠.
어쩌면 전 이 모든것들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그토록 헤맨 것입니다. 제 발목을 오랫동안 세차게 붙잡고 있던 정체를 그 책을 통해 발견한 것입니다. 극단적 이상주의자인 제가 한껏 미화하고 포장을 마친 것들은 사실과 한뼘이상 동떨어져 있는 것들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오늘 전 그릇된 예상과 덧없는 설렘만을 소비한 채 제가 얼마나 바보같은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보. 바보. 예감은 역시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추억은 오롯이 추억으로만 간직하라고 하나 봅니다. 실체를 확인하는 과정은 괴로운 법이니까요. 저의 아름다운 추억의 페이지들이 뭉텅 잘려나가기 전에 얼른얼른 박제를 서둘러야겠습니다. 혼자서 즐길지언정 두고두고 곱씹어 꺼내보고 얼러볼 '나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말입니다.
친구에 대해서 한가지 덧붙이자면, 여전히 감사하단 말을 자주 사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만나서 반갑고 감사해. 연락줘서 고마워.
다행히 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감사의 열매들은 아직 굳건한가 봅니다. 물론 친구에게 받은 씨앗때문이란건 변함이 없고, 친구 또한 아직도 감사의 씨앗을 품고 사는건 여전했습니다. 얼마나 안도감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부디 이틀간의 여정을 성공적으로 잘 보고 돌아가길 기도해봅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저에게 아직 그럴만한 행운이 남아있다면, 친구의 기억의 파편들을 조각조각 잘라내어 새로이 맞추는 과정을 가져봤음 합니다. 새로 맞추어진 기억에는 조금 더 나아진 인간 제시카가 가장 큰부분을 차지했음하는 바램을 가득 담아봅니다.

뭔가 잔잔한 영화를 본 것 같은 글이에요
추억에 현실감이 덧입혀진게 아쉽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친구분 덕분에
오래 전 추억을 다시 떠올려보고
앳된 시절의 에빵님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으셨을 것도 같고 그렇네요~
앳된 시절의 저는 과히 좋은 사람은 아니었었나봅니다 ㅠㅠ 휴~ 지금의 제 모습을 조금 더 보여주고 싶었지만 너무 시간이 짧아서 ㅠㅠ
그래서 잠이 안오시는 건가요?? 그래도 여기 털어냈으니 이제 잠이 올지도 모릅니다.^_^ㅎㅎ
정말 꼬박 밤 새고 이제는 많이 좋아졌어요. 마음 정리도 되었고요...
괴롭고 힘들더라도 한 번은 친구분과 되집어 본것이
나중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친구분을 만나는 초석이 되지 않을까요?
제가 경험해보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이라
뭐라 말해 드릴수가 없네요
토닥토닥~
또 만나고 싶어도 볼수가 없네요... ㅠㅠ 보고싶어요.
뇌라는 게 이상해서 어렵고 힘든 기억들은 잊게 만들고 떠올리려 해도 잘 안될 때가 많더군요. 나보다 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 보면 거의 틀림 없습니다. 나는 다 잊어 버렸고 아무리 해도 생각나지 않았으니까요.. 힘든 시절이었다는 것을 그 친구분은 아직 기억하고 계시네요..
힘든것이 너무나 힘들었던지 아직 원망하는 듯한 말에 사실 굉장히 의아했러요. 잊을만 하구만 왜 아직 잊지를 않은것인지 잊지를 못한것이지...
아 - 이 글 보고 저도 몇백번 상상해본 장면이 떠올랐어요. 그런데 그 상상은 상상으로만 끝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왜곡된 기억을 굳이 바로잡고 싶지 않네요 ㅠㅠ
뭔가 사연이 있으신가보군요. 어제 급작스런 만남이어서 그렇지 예정되었던 만남이라면 저도 안나갔을수도 있어요...
좋은것만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때론 기억을 안해도 되는것을 기억할때가 있지요. 시원하게 글로 표현 하였으니 편안하게 한잠 푹주무세요.
감사합니다. 망각이라는것이 참 좋을때도 있는데 말입니다.
네, 저는 물론 또렷이 기억합니다. 에빵님의 냉정과 열정사이, 그리고 제게 주신 그 감사의 씨앗. 사실 냉정과 열정사이 그 포스팅과 OST는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거든요. 그래서 더욱 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답니다.
에빵님 글을 읽으니 그냥 이 노래가 듣고 싶어서 지금 듣고 있습니다.
이선희 - 그 중에 그대를 만나
친구에게 물었어요. 가끔 내 생각은 나니? 바빠서 생각이란걸 할틈은 별로 없지만 생각 많이 한대요. 그래서 기억하는것도 많은가봐요. 문득 이런 걸 묻고 싶은걸 참았어요... 혹시 내가 첫사랑이니? ㅋㅋㅋㅋ 안 묻길 잘했죠.
첫사랑이 중요한가요? 끝사랑이 중요하지요. ^^
기억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방향으로 조금씩 왜곡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고요. 기억을 새로 맞추어준다해도 다시 시간이 지나면 변하게 되는게 보통인듯 합니다.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변화가 있을 수 있으니 마음 편히 주무세요 ^^
고맙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르니 이제 좀 진정이 되었어요. 좀 잘해줄걸 후회는 그대로 남지만요...
좋은 쪽으로 퍼즐들을 다시 맞추기 ㅎ
지난 일은 다 고마운 거다 ㅋ
그죠. 지나고 나면 다 고맙게 느껴지는것 같아요...
정말 영화같은 일이 일어났네요. 이번에는 그분이 어떤 씨앗을 심어 놓고 가실지...추억의 조각들이 이쁘게 다시 조립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오이소박이를 담그다가 액젖을 쏟아서 냄새가 장난 아니던 웃프던 시점이었는데 부랴부랴 씻고 달려나갔답니다. 아~ 웃기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