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 라마나 마하리쉬
@나 는 누구 입니까?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이 몸은 내가 아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다섯가지 감각기관은 내가 아니다.
말하고 움직이고 붙잡고 배설하고 생식하는 다섯가지 운동기관은 개가 아니다.
호흡등의 다섯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프라나 등의 다섯가지 기는 내가 아니다.
생각하는 마음도 내가 아니다.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도 내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입니까?
이 모든 것들을 내가 아니다 라고 부정하고 나면 그것들을 지켜보는 순수한 앏 만이 남는다.
그것이 바로 나 다.
@그 각성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것의 본질은 실재, 의식, 지복,이다.
@어느때에 참나 를 깨달을 수 있습니까?
현상계가 실재한다는 인식이 사라질 때 참나를 깨달을 수 있다.
@현상계가 실재한다고 인식하는 한 참나를 깨달을 수 없습니까?
그렇다.
@그 이유가 무엇 입니까?
현상계가 실재한다는 인식과 진아에 대한 깨달음과의 관계는 뱀과 밧줄과의 관계와 마찬가지다. 그 뱀이라는 그릇된 ㅇ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밧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생길 수 없다. 마찬가지로 현상계가 실재한다는 그릇된 믿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참나를 깨달을수 없다.
@어느 때에 현상계가 사라집니까?
현상계에 대한 모든 인식과 행위의 원인은 마음이다. 따라서 마음이 사라지면 현상계도 사라진다.
@마음의 본질이란 무엇입니까?
마음이란 참나안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힘이다.
그것은 모든 생각을 일으킨다. 생각과는 별개의 독립된 마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생각이 바로 마읨의 본질이다.
생각과는 별개의 독립된 현상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꿈이 없는 깊은 잠을 잘 때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다.
따라서 현상계도 없다. 그러나 깨어 있을때나 꿈 꿀 떄에는 생각이 있으며 따라서 현상계도 있다.
거미가 몸 밖으로 거미줄을 뽑아 냈다가 다시 거두어 들이듯이 마음도 바깥으로 현상계를 투사 했다가 다시 안으로 거두어 들인다.
마음이 참나 밖으로 나올 때 현상계가 나타난다. 따라서 현상계가 나타날 때 참나는 나타나지 않으며 참나가 나타날 때 현상계는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의 본질을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마음은 참나를 떠나서 사라져 버린다. 참나가 바로 무아 이다.
마음은 항상 무엇인가 의존하고 있으며 홀로 존재 할 수 없다. 흔히 영혼이라 부르는 것도 역시 마음이다.
@마음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 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생각은 나 라는 생각이다. 이생각이 일어난 다음에 다른 생각들이 일어난다. 이는 마치 1인칭이 있고 난 연후에 2인칭과 2인칭이 있을 수 있는 것과 같다. 따라서 마음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나 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생각을 계속 유지 하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다른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을 따라가지 말고 이 생각이 누구에게 일어났는가? 라고 물어야 한다. 아무리 많은 생각이 일어나도 마찬가지다. 한 생각이 일어날때 마다 놓치지 말고 이생각이 누구에세 일어 났는가? 라고 물어야 한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나에게 가 될것이다.
그러면 다시 나는 누구인가 라고 묻는다. 이렇게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계속 하면 마음은 점점 그 근원향하게 되어 생각은 저점 사라지며 몰입 될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마음을 사라지게 할 수 없습니까?
이 방법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다른 방법을 통해 망므을 조절 할수 는 있으나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다. 호흡 조절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힐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호흡이 조절되는 동안만이며 호흡이 흐트러지면 마음이 다시 작용 하기 시작한다. 사실 마음과 호흡의 근원은 같다. 마음의 본질은 생각이고 최초의 생각은 나 라는 생각이며 이것이 바로 에고인데 바로 이 에고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호흡도 시작된다. 따라서 마음이 가라앉으면 호흡이 조절되고 호흡이 조절되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러나 깊은 잠을 잘때에는 마음이 사라져도 호흡은 멈추지 않는다. 이것은 참나의 뜻이다. 그럼으로써 육체가 유지 될수 있고 다른 사람들도 그 육체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깨어 있는 상태와 삼매 상태에서는 마음이 가라 안으면 호흡이 조절된다. 호흡은 거친 형태의 마음이다. 마음은 죽기전ㅇ까지 육체 안에서 호흡을 유지 하며, 죽음과 동시에 호흡을 가지고 가버린다. 따라서 호흡조절 훈련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마음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호흡조절과 마찬가지로 참나의 형상에 대한 명상을 한다든가 만트라를 외운다든가, 음식을 절제한다든가, 하는 것 들은 모두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도음이 될 뿐이다.참나의 형상에 대해 명상 하거나 만트라를 외우는 것은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데에도 도움이 된다. 마음에 여러가지 생각이 잡다하게 있으면 생각 하나하나의 힘은 약해지지만 한 생각만 있으면 마음이 집중되어 그 힘이 강해진다. 이러한 마음 상태에서는 자아탐구가 쉬워진다.
또 망므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것 중에는 과일,야채 등 채식 위주로 하는 적당한 식사법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도 자아탐구에 도움이 된다.
@생각은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그 모든 생각들은 언제 없어집니까?
참나에 대한 명상이 깊어짐에 따라 그 생각들은 사라져 간다.
@시작 없는 과거로 부터 계속 되어 온 이 대상에 대한 생각들이 모두 없어지고 순수한 참나로서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합니까?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느냐를 따지지말고 참나에 대한 명상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설사 큰 죄를 지은 죄인일지라도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구원 될 수 있겠느냐 라고 생각하여 괴로워 해서는 안된다 우선 나는 죄인이다 라는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진아에 대한 명상에 모든 힘을 기울여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선한 마음이 따로 있고 악한 마음이 따로 있는것이 아니다. 마음은 오직 하나 뿐이다. 그러나 그 마음을 세속적인 대상이나 세속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들에 쏠리게 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자기에게 나쁘게 대해도 그들에게 증오심을 품어서는 안된다. 욕망과 증오는 둘 다 피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모든 것은 사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이 진리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가 남에게 베풀지 않겠는가? 자신의 자아가 나타나면모든 것이 나타나고 자아가 사라지면 모든것이 사라진다. 자신을 낮추면 낯 출수록 그만큼 좋은 결과가 나올것이다. 또한 마음이 사라지게 되면 어디에서든 살 수 있게 된다.
@자아탐구는 언제까지 계속 되어야 합니까?
마음 속에 대상에 대한 생각이남아 있는 한 나는 누구인가 라는 탐구가 필요하다 어떤 생각이 일어나면 그 즉시 이 탐구를 통하여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어떤 생각이 일어나면 그 즉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수행을 통하여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참나를 깨달을 때 까지 완전히 진아에 몰입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오새 안에 적이 남아 있는 한 그들은 언제고 다시 공격해 오겠지만, 나타나는 족족 없애ㅔ 버리면 요새는 결국 우리 수중에 떨어질 것이다.
@진아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오직 참나 만이 싱재 하며, 현상계, 개아, 신 등은 참나 안에 나타난 현상에 불과하다. 이 셋은 동시에 나타났다가 동시에 사라진다. 참나
는 나라는 생각이 전혀 없는 바로 그곳이며 침묵이라고도 한다. 참나가 곧 현상계이고 참나가 곧 현상계이고 참나가 곧 개아이며, 참나가 곧 신이다. 참나는 모든 것이다.
@어떤 사람이 가장 훌륭한 수행자 입니까?
자기 자신을 참나, 즉 붓다에게 완전히 던져 버리는 사람이 가장 훌륜한 수행자다. 자기 자신을 붓다에게 던진 다는 말은 참나에 대한 생각 외에는 어떤 다른 생각도 일어나지 못하도록 참나 안에 몰입 한다는 뜻이다. 짐이 되는 것은 모두 붓다에게 맡겨라. 그가 모든 것을 책임 질것이다. 지고한 붓다의 힘이 모든 것을 관장고 있는데, 왜 우리들은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못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끊임없이 망설이고 있는가? 기차를 타면 기차가 모든 짐을 다 운반해 준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계속 짐을 머리에 이고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단 말인가? 왜 짐을 기차에 내려놓고 편히 쉬지 못하는가?
@무집착이란 무엇입니까?
생각이 일어날 때 우무런 찌꺼기도 없이 그 생각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무집착이다. 진주를 캐는 사람이 ㅎ러리에 돌을 달고 바다 밑바닥에 내려가서 진주를 캐오듯이 우리는 무집착을 달고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가 참나 라는 진주를 캐내야한다.
@신 는 스승이 인간으로 하여금 구속에서 벗어나도록 해 줄수는 없습니까?
신과 스승은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 줄 뿐이지 벗어난 상태를 주지 않는다.
사실, 신과 스승은 다르지 않다. 일단 호랑이의 입 속으로 들어온 먹이는 다시 빠져나갈수 없듯이, 일단 스승의 자애로운 은총 속으로 들어온 제자는 스승에 의 해 구원받게 되어 있다. 물론 신이나 스승이 제시한 길을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따라와야한다. 자신의 지혜의 눈을 통해서만 자신을 알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는 불가능하다.
@깨어 있는 상태와 꿈꾸는 상태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습니까?
깨어 있는 상태는 길고 꿈꾸는 상태는 짧다. 그것 말고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꺠어 있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이 그 상태에서는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듯이 꿈꾸는 상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꿈꾸는 상태에서 마음은 다른 체body를 가진다. 또 어는 상태에서나 생각과 이름과 형상들이 동시에 나타난다.
@해탈을 구하는 사람이 책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모든 경전에서는 해탈을 얻으려면 마음을 사라지도록 해야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결론은 마음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며 이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더 이상 책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참나를 알기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으로 탐구해 들어가야하는데 어떻게 이것이 책을 통해서 가능하겠는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지혜의 눈으로 자기 자신의 참나를 알아야 한다. 참나는 다섯가지 감각의 내부에 있으며 책은 그들의 밖에 있다 따라서 책 안에서 참나를 찾아봐야 소용이 없다. 자신이 배운 것을 다 잊어버려야 할 때가 올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행복은 바로 참나의 본질이다. 행복과 참나는 다르지 읺다. 현상계의 어디에도 행복은 없다. 우리는 무지로 인하여 어떤 대상으로 부터
행복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음이 밖으로 향 할때 그것이 경험하는 것은 불행할 뿐이다. 어쩌다가 마음이 바라는 바가 완전히 달성되면 그 마음은 제자리로 돌아와 행복을 즐기지만 그것 역시 참나의 행복이다. 즉 깊은 잠을 잘 때 삼매에 들었을 때 기절했을 때 마음이 바라는 바가 완전히 이루어 졌을 때 마음은 내면으로 향하면서 순수한 참나의 행복을 즐기게 된다. 그러나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마음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행복과 불행을 번갈아 경험한다. 끄거운 태양아래 있다가 나무 그늘 밑으로 들어오면 시원함을 느낀다. 그런데 나무 그늘 밑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현명한 사람은 언제나 그늘 아래에서 안주한다. 마찬가지로 진리를 아는 사람은 참나를 떠나지 않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현상계를 해매며 불행을 느끼고 어쩌다가 한번 씩 참나로 돌아와서 행복을 경험한다. 사실 현상계란 생각의 집합체에 불과하다. 현상계가 사라질 때 즉 아무런 생각이 없을 때 우리는 행복을 경험 하며 현상계가 나타날 때 불행을 경험한다.
@무욕 과 지혜의 관계는 어떤 것입니까?
무욕이 지혜이다. 둘은 다르지 않다. 무욕이란 마음이 어떠한 대상으로도 향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지혜란 마음 속에 아무런 대상도 나타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바꿔 말하면 참나가 아닌 것을 구하지 않음이 무욕이고 참나를 벗어나지 않음이 지혜이다.
@자아탐구 와 명상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자아탐구는 마음을 참나 안에 벗어나지 않오록 하는 것이며 명상은 자기 자신이 참나, 즉 실재-의식-지복 이라고 생각 하는 것이다.
@해탈 이란 무엇입니까?
구속 되어 있는 자기 자신의 본질을 탐구해 들어가서 자신의 진정한 본질을 깨닫는 것이 해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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