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토크쇼 J 출연 후기

in #kr4 years ago

KBS 저널리즘 토크쇼 J에 전직 정치부 기자로 출연했습니다. 지금 하는 일은 정책연구인데, 여전히 전직 기자로 저널리즘을 얘기하는 자리에 종종 나가곤 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미디어오늘에 지난 1년간 '미디어'와 '저널리즘'에 대한 칼럼을 연재했기 때문에 얻는 기회인 것 같습니다.

사실 2주에 한번씩 쓰는 칼럼 연재가 쉽지 않습니다. 연재 6개월이 넘어가면서 점점 쓸 밑천이 떨어지고 있다고 느꼈고, 또 저널리즘 비평이 현재의 본업도 아니니 그만 쓰잔 생각도 종종 했습니다. 무엇보다 본업과 육아만도 벅차, 숙성되지 못한 고민과 깔끔하지 못한 문장들에 스스로 불만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거의 1년을 끌어온 이유가 무엇이었을까를 혼자 생각해봤는데요. 아마 이 도저한 '언론혐오' 시대에 선의와 열의를 가진 기자들의 뜻이 꺾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정치를 파워게임으로 소비하는 저널리즘과 이미지 정치가 서로 상승작용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한 작은 시도들이 여전히 필요하단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목소리가 별 영향력이 없어도, 작은 목소리라도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그런 마음의 발로였습니다.

그렇게 꾸역꾸역 칼럼을 써왔고, 또 방송에서 그동안 생각해왔던 것들을 말할 기회가 주어졌는데요. 당일치기 일정으로 제주에서 서울로 녹화를 하고 와선, 그나마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방을 보고 꽤 실망했습니다. 제가 한 발언들이 상당히 편집됐기 때문이죠. 물론 제 발언이 비중 있게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만, 프로그램에서 당초 정해진 결론(정치기사는 무비판적 받아쓰기이고, 정치의 극화(dramatize)를 조장한다)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들이라 편집됐다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습니다. 저는 저널리즘토크쇼 J가 가진 문제의식에 상당 부분 공감하지만, 다른 목소리도 듣고, 더 적확한 비판을 해야한다는 입장입니다. 인상비평은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혐오를 유발할 뿐이죠.

그렇지만 고맙게도 저널리즘토크쇼J는 유튜브에 '거의 무편집본'을 공개하더군요. 그 영상을 보니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했단 생각이 들고요. 또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줘 감사한 마음입니다. 인기 프로그램이다보니, 이 무편집본의 조회수도 상당하더군요.

그래서 본방에선 편집됐지만, 무편집본에서 볼 수 있는 제 발언들을 몇 가지 정리해봤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이 방송에서 왜 나를 섭외했을까. 저는 정치부 기자 1년 밖에 안 했거든요. 나에게 정치권의 취재관행에 대해 들을 말이 있을까. 그런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정치저널리즘에 대한 반성, 또 새로운 정치 저널리즘을 구현하려는 발버둥으로 책을 한권 썼거든요. 그 핵심이 무엇이냐면. 정치보도가 굉장히 대결구도로 몰아간다고 하셨는데, 어찌보면 대결구도를 다루는 것은 당연해요. 정치는 갈등을 드러내고, 굉장히 많은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곳이에요. 그래서 그러면 무슨 갈등을 다룰 것이냐가 핵심인데, 언론이 주목하는건 누가 힘이 센가, 누가 권력을 잡는가. 이거에 굉장히 집중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 언론은 정치에서 '인물' '갈등' '판세'를 주로 다뤄요. 하지만 진짜 갈등을 다루려면 우리 사회의 많은 이해관계들이 어떻게 형성돼 있고, 그걸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 그 갈등을 다뤄야 해요. 그런데 정치에서 그걸 안 다루고 있는건 아니거든요. 법안소위나 상임위에서 정말 많이 다루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그 방향으로 새로운 정치저널리즘을 구현해 보고자 쓴 책이 하나 있었고요. 전직 대통령의 공약을 분석한 책이었고, 그런데 그 책의 판매고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정치 저널리즘을 구현해보려는 저의 아젠다도 덜 알려진 측면이 있습니다."

"조금 전에 이야기가 나온 받아쓰기에 대해 조금 더 말씀을 드리면요. 사실 그냥 받아쓰기라고 볼 수는 없어요. 아까 받아쓰기가 일종의 트레이닝이라고도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그걸 트레이닝이라고 생각하는 기자나 데스크는 아무도 없어요. 불가피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그 불가피성도 정당과 언론인들이 잘 대안을 만들면 없앨 수 있다고도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중요한게. 정치인의 말은 정치행위에요. 그게 정책이 될 수 있고 예산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것은 사실이고요. 언론이 거기서 해야할 역할은 무슨 말을 선택할 것인가에요. 그리고 두 번째는 하지 않은 말이 있다면 어떤 말을 하게 할 것인가죠. 이 두 가지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무슨 말을 선택할 것인가는 게이트키핑이고, 무슨 말을 하게 할 것인가는 질문으로 하는 것이죠. 질문을 잘 던지려면 평소에 무엇에 관심을 가졌고, 어떤 분석을 할 것인가가 중요한데. 그게 어려워요. 출입처랑도 관련이 있는데, 기존의 출입처들이 정당으로 나뉘어 있잖아요. 그 정당으로 나뉘어 있는 상태에선 매일매일 최고위원과 (당 혹은 원내)대표가 발언하는 사안들이 바뀌거든요. 내가 관심 갖는 주제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질문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기자들이 정당 출입처를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임위를 나눠서 출입처를 삼고, 관심을 가지고 취재를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그게 한국 언론에서 굉장히 약하죠."

"제 목소리가 기성 언론에 반영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약한 목소리라도 꼭 제안하고 싶은게 하나 있는데 오랜만에 어제자 조간 신문들을 봤어요. 아주 재밌는 현상을 발견했는데 거의 예외 없이 실린 두 가지 기사가 있더라고요.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을 희화화한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자유한국당이 사용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께서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는 야당이다라고 말씀하신 기사였어요. 사실 두 내용은 따옴표 저널리즘이나, 받아쓰기라고 평가할 필요도 없이 특별히 검증 이런 게 필요한 사안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 두 사안들이 과연 그리 중요한가. 모두가 받아적고, 모두가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을 쓸만큼. 그런 기사가 50개 100개 이상 나오는데. 그런 똑같은 기사라도 기자의 입장에서 쓰려면 한두시간 정도는 집중해서 써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노동을 왜 해야 하는가란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이런 제안을 하고 싶은 게. 언론들이 역할 구분을 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역할들이 많은데. 역할 구분을 해서 누구는 이런 정책을 다루고, 누구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하고, 또 누구는 그런 기사를 최소한으로 다루고. 이렇게 역할구분을 했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차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기계적 균형의 내면화,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로 마크맨 했던 정치인이 홍준표. 센 발언을 하시는 분. 심지어 친박 의원들에게 이런 표현도 하잖아요. '바퀴벌레' 이런 발언이 나오면 친박 의원에게 가서 '바퀴벌레라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이런 질문은 안 했는데 이런 질문을 해야 하는 언론인이 있다고 생각하면 자괴감이 들어요. 이런 질문을 하려고 기자했나 이런 생각이 드는데. 다시 사안을 바꿔보면 기계적 중립성이 언제 필요하냐. 예를 들면 이런 거에요. 산업재해로 돌아가시는 분들 많잖아요. 그런 경우에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정책을 만든다. 거기에 대해 여당 의원이 굉장히 전향적인 법안과 정책을 내놓고 주장을 했으면. 이럴 땐 야당 의원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죠. 이런 기계적 중립성이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기계적 중립성 그 말 자체로 나쁜 게 아니라, 꼭 필요한 사안에 있어서의 중립성이 중요한 것이지, 중립이 필요하지도 않은 사안을 가지고 여기도 물어보고 저기도 물어보고 이런거 자체가 답답하다는 거에요."

"이 문제(충성을 보상체계로 쓰는 위계적 언론 문화)는 사실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죠. 검찰개혁 나오는 중요한 맥락도 마찬가지에요. 기존 검찰이 왜 망가졌어요? 권력에 충성하는 검사들이 이상한 사건 가지고 기소하고, 무리한 수사를 하고, 결국 기소한 사건들 판판이 무죄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승진하고. 이런 충성심을 보상의 메커니즘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검찰이 망가진 거잖아요. 이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검찰과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거는 문화를 바꿔야 하는 문제고요. 이 문화를 바꿔야 하는 문제는 계속 떠들어야 해요. 이거 창피한 문화다라고. 이 문제는 제도 하나 가지고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또 당초 시나리오에서 저에게 첫 출연 소감을 묻는 질문이 있어 준비했던 발언이 있었는데요. 녹화가 길어져 그 질문을 못 받고 끝났습니다. 그래서 준비했던 그 발언도 이 공간에 남깁니다.

"저널리즘 토크쇼 j에 하고픈 말이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 사회에 정치혐오가 줬던 해악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언론혐오도 결코 우리 사회에 득이 되지 않습니다. 언론이 성찰하고 바뀔 수 있도록, 따끔하고 적확한 비판을 해주시되, 자칫 그 비판이 언론혐오로 향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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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보는프로인데 저번주에나온분이 스팀에 계시다니 ^ 저리톡에서 또 뵈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방송 출현을 하셨었군요.
그래도 본인이 나온 방송인데 별점을 너무 짜게 주셨어요.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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