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 귀여운 할머니의 꼬꼬레인.
강원도.
내가 태어난곳이라 그런지 이곳 마을 어르신들 하나같이 느므느므 좋다.
텃세도, 편견도 없다.
그저 인사 잘하면 인사해줘서 고마워하며 활짝 웃어주시며 건강하라고 덕담 건네주시는 분들.
배추며 호박이며 오이며 텃밭에서 넉넉하게 따면 비닐봉다리에 담아 건네 주시는 분들.
난 사람이 좋아서 강원도에서 계속 살고 싶다.
이곳에 와서 70세 80세 되신 어르신들을 나는 무심코 할머니라고 불렀다.
그분들은 나보고 새댁이라고 부르신다.
그런데 도시에서 귀촌하신 할머니 한분이 어느날 나에게 말씀하셨다.
"새댁. 내가 말이야! 60먹었을 적에 시장에서 농산물 파는 한 구십은 되어 보이는 호호 할머니한테 할머니 그거 얼마예요? 했다가 아주 혼났잖아."
"어떻게 혼나셨어요?"
"이러더라. 아! 댁은 몇살 먹었는데 나보고 할머니라는 거요?
그리고는 쌩하니 돌아앉더라."
"어? 그럼 뭐라고 해야 해요?"
나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아주머니라고 해야해! 할머니라고 하면 싫어해! 내가 육십일 때 그런 일이 있었다니까?"
하시고는 운동기구가 있는 곳을 향해 쌩~하니 걸어가셨다.
아! 이말은 나보고 자기한테 할머니라고 부르지 말고 아주머니라고 부르라는 말씀이시다. 나도 나이가 있으니까 자기한테 손녀 뻘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 할머니라는 호칭이 싫으신거다.
그런데 나는 그분들이 나이가 많다는 뜻으로 할머니라고 부르는게 아니다. 어르신으로서 존경의 표현으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지만 그분들이 그렇게 싫으시다면 ...그런데 아주머니라고 부르는건 싫다. 아주머니, 아기주머니라는 뜻이라고 어린 시절 학교 선생님이 그러셔서 나는 그후 아주머니란 말을 가급적 쓰지 않았다. 여성을 어머니를 아기주머니라고 부르다니 그와같은 모욕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호칭, 그냥 어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래서 동네 모든 할머니 아주머니 모두 그냥 어머니라고 부른다. 할머니라고 부를때 보다 훨씬 더 잘 웃으신다.
그런데 나한테 자기 60세때 이야기를 해준 이 할머니 디게 귀여운 할머니다.
이 할머니는 류마티즘을 앓고 계신다. 간도 안좋아서 30프로 미만만 기능한다고 하신다. 그래서 나도 아프니까 나를 만나면 동지가 있다고 무지 좋아하신다.
작년 봄에는 포트에 씨앗을 넣고 발아하여 모종을 만들었다. 토종을 키울거라고 전해 가을에 열심히 토종 종자를 많이 모아 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에 가면 잘 키운 모종들을 다양하게 살수 있지만 나도 토종 종자를 조금씩 지켜가는 귀농인으로 커 보려고 했다.
이 할머니 지나가시면서 궁금해서 다가오신다. 이 할머니 오시면 난 이 동네 누가 땅을 얼마에 팔았고 누가 이사를 갔고 하는 소식을 알게 된다. 할머니 가실 때쯤 나는 묻는다. 이거 하수오 한번 키워 보실래요? 토종 봉숭아 해바라기 울타리콩 있으세요? 할머니는 마다않고 욕심껏 모종을 챙기신다.
"아, 우리도 포 뜨려고 했는데 이번엔 못떴어. 새댁은 두 식구지? 이거 두 세개만 줘. 한번 키워보게"
아 그런데 포를 뜬다니...뭔 포를 뜬다는 거지?
가만히 문맥을 살펴 보니 할머니는 모종을 키우는 포트를 포~ 뜬다고 하신다.
봄 날 산책을 하다가 여울길에서 마주쳤다. 겨우내내 만나지 못해서 우리는 반가워서 한참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그런데 침을 튀기는 할아버지에 비해 머리룰 푹숙이고 얌전히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할머니.
오! 이상해. 평소에는 할머니가 말씀이 더 많으셨는데...
가만히 보니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을 하셨다. 머리 예쁘다고 칭찬을 한마디 원하시는 것이었다. 분위기상. 그런데 나는 약간 화가 났다. 전에 간이 안좋으시다며 파마를 하셔서 염색 파마약 그런거 독해서 간에 안좋으니까 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렸는데 이번에는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하고 오신거다.
나는 독하게 마음먹고 끝까지 머리예쁘다는 말씀을 해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후 마당에서 다시 운동하러 가시는 할머니를 만났다. 후드티를 벗더니 빡빡 밀은 머리를 보여 주셨다.
하하하~ 잘 하셨어요. 아주 시원하고 더 예쁘세요. 했다. 할머니가 활짝 웃으신다. 그리고는 내가 입고 있는 원피스를 만져보고 당겨보고 하신다.
"이쁘네. 이거 좋네."
난 여름내내 거의 같은 원피스 하나만 입는다. 귀찮아서, 시골이고, 편한게 제일이니까...그런데 벌써 이 원피스 이쁘다고 쓰다듬어보고 만져 보는게 몇 번 째다. 특히 내가 머리를 감고 머리를 길게 내려뜨리고 나갈때는 이 원피스가 유독 이뻐 보이나 보다.
머리 염색사건부터 생각해 보니 할머니 마음속에 소녀가 있으신 거다. 말씀으로는 "나는 얼마 못살거야!" 하시면서도 , 아직도 어려보이고 싶고, 예뻐보이고 싶고, 젊은 사람 원피스가 부럽기도 하신거다.
할머니랑 같이 운동기구가 있는 곳 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오는데 언덕위의 밭에서 포크레인이 땅을 고르고 있다.
할머니 갈라신 길로 들어서며 말씀 하신다.
"나, 저 꼬꼬래인 있는데 가보려고, 뭐하는지 물어보고 올께. 꼬꼬래인으로 뭔 땅을 저렇게 파고 있는 거야."
이번 봄에는 가뭄이 길어서 싹이 잘 나온 감자도 많이 타죽고 , 특히 비닐 멀칭을 하지 않은 내 고구마는 싹이 거의 전멸했다. 내 고구마밭 앞에서 딱 서더니 나보고 이러셨다.
"고구마 다 어디갔어? "
" 에효, 다 죽고 싹이 못 살았네요 가뭄이 길어서, 이번 겨울에는 고구마 못 먹겠어요."
"우리거 잘 되면 조금 줄께!" 이러신다.
일부러 다 타죽은 고구마 순을 보시면서 고구마 다 어디갔냐고 하셔놓고는 자기네거 잘 되면 좀 나눠주시겠다고 하신다.
아, 난 이 할머니 정말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 할머니가 마을에서 나랑 가장 친한 할머니다.
(jjangjjangman 태그 사용시 댓글을 남깁니다.)
호출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50분짜리 '전원일기' 한편 잘 봤습니다.
아. 전원일기였네요 고맙습니다.
할머니란 말에 삐쳐서 돌아앉는 80대
노랑머리 이쁘단 말을 기다리시는 할머니
ㅎㅎㅎㅎ 다들 귀여우세요
무조건 그냥 '언니'라 하세요 ^^
아, 언니라고 할 생각을 못했네요. 그랬으면 아주 이쁨 받았을 텐데 말이예요. 이제 언니로 호칭고쳐야 겠어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ㅋㅋㅋ
ㅎㅎ 꼬꼬래인
할머니들 너무 인자하시고 귀여우시네요.
할머니 늙어도 여자로 인정받고 싶은가 봅니다.
그러게요. 저도 ...이번에 알았습니다. ㅋㅋ
ㅎㅎㅎ 오랜만에 와봅니다
할머님 상상이 가요. 어떤 분이실지
나이만 먹는거고 정신은 항상 20대 30대인거죠.
울 엄마 80이 다되어 가도 고향땅 밟기 전에 화장으로 단장하고 차문을 여십니다 .그런가 봅니다 .
내 안에도 20대가 살어서 미니를 즐겨입습니다 ㅋㅋ
근데 저 사진 작가님 직접? 사진의 장소 가보고 싶네요.
할머니라고 하지마시고 아주머니라고 쓰시면 그분이 아주 좋아할 듯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글만봐도 너무 귀여우세요. 나이가 들면 다시 아이가 된다고 하잖아요. 모습은 달라도 말투, 표정, 행동은 아이를 닮게 되는가봐요
귀여운 할머니세요~~
나이를 먹어도 예쁜 것 좋아하는 여자는 여자~!!
저도 그럴 것 같거든요~
얼마 남지 않았지만..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도 어촌 마을에 사는데, 집에만 갇혀 있는 생활이라 삶의 이야기가 별로 없네요. 동네 마실이라도 나가서 이야기 거리라도 만들어 봐야 겠습니다. ^^
아 어촌에 사시네요 . 참 세상이 신비해요 이렇게 어촌과 산촌에 사는 사람이 만나지도 않고 실시간 이야기를 나눌수 있다니요 어린시절에는 꿈도 못 꾸었는데요 ㅋㅋ
정많은 할머니 시네요.
그리고, 아주머니 어원은 그게 아니라 다른말이 변천을 거쳐서 된걸로 알고 있습니다. 일부 아저씨 아주머니를 저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정도라고.
그냥 편하게 할머님 불러드려도 될듯 하네요 ^^
전원일기 다음편 기다리겠습니다~
예, 아주머니 어원이 그게 아닐텐데 짓굳은 선생님이 그렇게 해석 해놔서 그게 머리에 박혀 버렸습니다. 전원일기 다음에는 동네 고양이편입니다. 고양이 이야기 좋아하시려나요?
고양이는 안좋아하는데 이야기는 좋아해요~^^
네. 그럼 고양이 이야기 잼나게 한번 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