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니체의 단편 수필, 이보세요? 저는 그저 ‘신성용’입니다.

in #kr7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니체입니다.
오늘은 제가 쓴 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발로 쓴 수필이지만, 감안하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은 허구가 아닌 사실이고, 인터뷰를 통해 자료조사 했습니다.
그리고 성용이라는 이름은 가명입니다.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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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나날들

‘아, 이래서 자살을 하는구나. 이제 그만하자…’

어느 평범한 오후, 담배연기 자욱한 PC방에서 생각했다. 나를 고립시키고 세상과 나를 왕따시키는 상황들에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 불투명한 미래와 어디를 가든 따라붙는 탈북자라는 꼬리표. 좋은 날보다 괴로운 날들이 더 많아서 억울했다.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두만강을 건넜고 인간답게 살고 싶어 대한민국까지 목숨을 걸고 왔다. 모든 것이 풍요롭고 자유로웠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그래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사회를 어느 정도 경험하고 보니 내가 너무 선명하게 보였다. 스스로가 비참했다. 남한 친구들은 모두 잘나 보였고 나만 뒤쳐지는 느낌이었다. 나 또한, 나름대로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던 중이었지만 탈북과정에 있어 중국에 있었던 4년이란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어느 순간 동기들의 학업 속도를 따라가는 것조차 벅찼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상실감은 탈북자라는 꼬리표였다. 어디를 가든 따라 붙는 그 수식어. ‘탈북자 신성용’ 나는 그냥 김필주가 아니었다. 사투리가 세건 성격이 못났건 자존감이 낮건, 그냥 신성용여야 하는데 나는 항상 탈북자 ‘신성용’라는 게 못내 상처였다. 그건 물에 뜬 기름 같은 존재랄까…

그래서 PC방으로 도망쳤다. 6개월 동안 PC 구석에 처박혀 담배만 피우며 이렇게 살아 무엇하랴, 공부는 해서 무엇하랴 하며 방황을 시작했다. 그것도 지칠 때즈음 죽어버릴까 했는데 어쩐지 좀 억울했다. 행복했던 날보다 괴로웠던 날들이 더 많았던 지난 25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북한에서 17년 중국에서 4년 한국에서 4년 좋았던 기억은 오로지 처음으로 인천공항에 발을 디뎠던 그 날과 대한민국 신분증을 받았던 날, 그리고 대학교 학생증을 받던 날 뿐이었다. 25년 중 행복했던 날이 3일이 전부라는 게 억울했다.

그런데 막상 죽으려고 결심을 하니 어머니가 마음에 걸렸다. 어머니는 중국에서 4번이나 북송되고도 살아 돌아오셨는데 고작 이런 게 힘들어서 죽으려고 하는 못난 아들의 모습을 보여드리기 너무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야 생각해보건데, 나를 고립시키고 나를 왕따로 만든 것은 바로 나 자신이였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탈북자 신성용’"여야만 하고 탈북자 신성용이여서 가능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더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삶의 시작, 연극인 신성용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던 중에 남북동행 대표님을 만나게 되었고 대표님으로부터 함께 프로그램을 하나 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성용아 우리 단체에서 연극을 해보려고 하는데 탈북 출신 연극배우가 없다. 네가 한 번 해볼래?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살고 싶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제의가 나의 인생을 바꿔놓을지는 꿈에도 몰랐다.

어느 날 대표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용아 우리 단체에서 연극을 해보려고 하는데 탈북 출신 연극배우가 없다. 네가 한 번 해볼래?”

지금이야 대표님께 미안한 말이지만, 속으로는 콧방귀를 꼈다.
‘무슨 NGO 단체에서 연극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처음에는 연극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단지, 죽을 것 같으니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활동이 연극이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하지만 연극 활동에 참여하면서 내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맡은 역할을 통해서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북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남한사회에 북한이라는 곳은 어떤 곳이며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인권탄압의 수위는 어느 정도인지를 연극 작품을 통해 자세히 알려내고 싶어졌다.

그렇게 시작한 첫 작품 ‘정명’의 내용은 목숨 걸고 남한 땅에 왔지만 남한사회에서 바라보는 탈북자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 때문에 탈북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내면의 갈등을 담은 내용이다.

본 작품 속 탈북자들은 몸과 마음에 난 상처와 분노를 남한사회가 아닌 북한체제로 돌리고 테러단을 꾸려 중국에서 김정일과 그를 추종하는 썩어빠진 세력에 혁명으로 대항한다. 물론 가상의 현실이었지만 당시에 나의 역할은 테러단 행동대장으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었고 주인공과 자주 이념 갈등을 겪기도 한다. 작품의 결말은 비극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했다.

내용 속 탈북자들의 탈북과정과 작품 속 대사 내용은 대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이질감이 느껴진 것은 아니지만, 내용이 무거워서 차기작은 가볍게 하자고 했다.

그리하여 두 번째 작품은 ‘이중사연’이라는 제목으로 한 탈북자가 한국에서 10년여간 대리운전 기사를 하며 만나는 다양한 인연들과 그 속에서 겪는 희노애락을 그렸다. 하지만 그것도 무거웠다.

세 번째 작품이였던 ‘오작교’의 경우 남남북녀 러브 스토리로 탈북여성과 남한남성이 소개팅을 하는 자리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소재로 잡았다. 최대한 북한 문제를 가볍고 현실적으로 다루었는데 반응이 좋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네 번째 작품은 이중사연을 각색해서 대리기사가 아닌 택시기사로 바꿔서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꿈을 희망적으로 전하고자 했다.

마지막 작품이었던 쉿, 비밀이야!는 탈북출신 주인공이 남한 사회에 적응을 잘해서 사업가로서 성공하는 꿈과 희망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연극이 끝난 후 한 관객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작품 속 내용이 사실입니까? 정말 그런지 몰랐습니다. 이번 연극을 보고 탈북자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앞으로는 북한인권에 관심을 기울이겠습니다.”

나에게 이 말은 최고의 찬사였다.

이같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탈북자들이 본의 아니게 이런 편견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과, 태어난 곳은 다를지 몰라도 ‘우리는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였다.

북한에서의 꽃제비 시절부터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탈북을 했던 과정, 내가 탈북자로써 느꼈던 감정이나 비애 그리고 한국 정착과정에서 좌절했던 모든 어려움들을 연극으로 대중에게 감정을 전달 할 수 있는 점에서 연극은 현재도 진행 중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연극은 신이 나에게 내민 손이라고 생각한다. 풍랑 속에 헤매다가 연극을 만났고 진로가 생겼다. 연극으로 인해 자신감이 생겨남과 더불어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연극은 나에게로 하여금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다.’

오해와 편견 그리고 작은 공감

개인적으로 일명 ‘탈북자 딱지’의 직접적인 경험은 없었다. 받은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무심한 성격상 잘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고 그보다 먼저 오갈 데 없는 나를 받아준 대한민국 정부에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가 탈북자에 대해 변절자라고 지칭을 하던 탈북자들은 단합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던 그런 편견? 그래,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적어도 북한 같은 지옥은 아니니까’

13살 때 6개월 간 꽃제비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실제로 나와 함께 거리를 떠돌며 먹을 것을 구걸 했던 아이가 바로 옆에서 굶어죽기도 했고, 제대로 못 먹고 볼일을 본 나의 대변은 토끼 똥처럼 바람만 불어도 풀풀 날리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잘못을 했는지는 몰라도 마을 주민이 처참하게 공개처형을 당하는 장면도 두 눈으로 보았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장마당에 가서 무엇이든 빌어먹겠다고 준비하는 중이였다. 꽃제비 집결소에서 같이 나가기로 했던 한 여자아이는 며칠째 사람 몸에 액체가 나올 수 있는 눈, 코, 입, 귀, 항문 등 온구멍이 파리에 에워싸여 누워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빠 나 배고프긴 한데 오늘은 도저히 힘이 없어서 못가겠어, 먼저 다녀와”
나는 무심히 말했다.

“그래 좀 쉬어 다녀올게”
허기진 배를 채우고 돌아와 자려고 하는데 다른 꽃제비가 말했다.

“너 그거 들었어? 그 아무개 죽었다더라”

‘나는 그 날 사람보다는 파리가 먼저 사람이 언제 죽을지 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적어도 한국은 민주주의의 국가로서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나라가 아니던가?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도 쉽지 않은 북한에서는 종교의 자유 억압, 공포정치의 산물 공개처형,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는 군부세력, 아동·여성의 학대, 정치범 수용소에서의 차마 말 못할 인권의 탄압을 피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산을 헤메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 공안에 잡힐까봐 부들부들 떨고 있다.

아니면 제 3국에서 언제쯤이면 한국행 비행기를 타나 노심초사 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이 공간, 한국을 오기 위해 누군가는 목숨을 건 탈북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힘겹게 남한에 온 탈북자들은 또 다른 벽에 부딪친다.’

그것은 바로 남한주민들이 바라보는 탈북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 관한 이야기다.
한 번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의 평범한 어떤 공무원들이 술자리를 갖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북한 여성과 결혼을 했는데, 술이 달아오르자 한 동료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야 너는 핸드폰 꺼라. 네 마누라 탈북자잖아. 도청 당하는 거 아니냐?.”

또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어떤 아이가 그림을 잘 그려서 학교에서 상을 탔는데 담임교사가 학급에서 칭찬을 한다고 한 소리가…

“여러분, 모두 박수 쳐 주세요. 북한에서 온 것 치고는 잘 그렸죠?”

단지, 웃기기 위해 말을 한 것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탈북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인식 또한 개선이 필요한 부분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차별이라는 말은 “너 탈북자지? 북한에 있을 때 왜 핵을 발사했니?” 라고 직접적으로 말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내가 직접들은 사례와 같이 탈북자를 바라보는 편견 또한 ‘간접적 차별’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나는 남한에 와서 정착하는 동안 한국 사회에 대해 탈북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크게 2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

첫째는 남한 사람들은 탈북자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을 알았고, 어디서 얻어들은 소리를 내뱉으며 본의 아니게 우리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둘째는 탈북한 사람들이 차별을 한다고 불평불만만 했지, 그 차별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풀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쌍방 모두 잘못이 있다는 것을 깨 닫았고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인권과 관련한 활동 시작했다.
그러면 이를 통합적으로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았을 때 답은 정말 간단했다.

‘있는 그대로 보자’

똑같은 사람이고 동일한 인격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저런 사람이 다 있는 것이다. 이에 다양성을 존중하고 함경도에서 ‘신성용’ 경상도에서 온 ‘OOO’ 이렇게 봐준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저 사람은 착하구나, 아니구나. 그거 하나면 되는데 자꾸 앞에 ‘북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모두들 쉬우면서도 어려운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부분은 내가 처음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해 정착생활을 시작 할 때보다 많은 국민들이 탈북자 문제 및 북한 문제에 대해 공론화 하는 등 점차 많은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들은 본질적인 서로의 모습을 이해하고 나아가 ‘통일’이라는 큰 목표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탈북자의 프리미엄(?), 부정을 긍정으로

다소 황당한 이야기지만, 탈북자여야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탈북자 출신이어야지 남한 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내가 가지고 있는 타이틀인 탈북출신의 최초의 연극인, 탈북출신의 인권운동가 그리고 자살의 늪에서 헤어 나온 경험을 바탕으로 되고자 하는 청소년 상담사를 의미한다.
어쩌면 탈북한 사람으로서 남한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한다는 비판도 있겠지만, 나는 이것을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 주제에 대해 연극을 한다고 가정할 때 남한 출신 연기자로만 구성된다면 작품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자랐던 사람과 세세한 면에서 차이 날 수 밖에 없다. 가득이나 외부에서 북한을 보이는 것은 사회주의 체제이며 폐쇄적이지만 내부에서 들여다보면 시장화화 되고 있는데 그 속에서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는 겪어본 사람만 안다는 것이다.

탈북출신의 인권운동가 역시 마찬가지 실제 북한인권활동가는 탈북자 출신이 유독 많다. 역시, 자신이 두 눈으로본 경험을 빗대 북한의 인권 탄압에 대한 실상을 생생히 증언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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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태그 캡처.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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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데 5분은 걸리실텐데요.....헤헤...
맞팔 갑니다!!^^

출력물 아니면 그냥 주루루룩 읽기가 습관이 되어서요... ㅠㅠ

그럼요 ㅎㅎㅎ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 더 읽어주시와요!!^^

인터뷰를 통해 조사한 내용을 쓰셔서 그런지 서술이 생생하고 흡인력이 있네요^^ 탈북자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어요.

수필집 형태로 책을 냈는데요
판매용은 아니라서..
제 처녀작입니다..ㅎㅎ

혹시, 처녀작이라는 말도 쓰면 안되는 말인가요?

수필집도 내시고~ 대단하시네요. 처음 내신 책이니 처녀작이라고 해도 무방하지요^^

잘읽고 갑니다
화이팅~~!

감사합니다^^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짱짱맨님 ㅎㅎ

니체님 혹시 Asian boss 라는 유튜버 아시나요? 탈북자 분들 취재한 동영상이 있는데 생각나네요.

헉ㅋㅋㅋ
유트버는 처음봤는데요
제가 인터뷰 진행한 분도 나오네요^^
주변에 탈북민이 많아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