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일기] "저 해고됐어요. 마약때문에. 실업급여좀." 이말을 어떻게 꺼내나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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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10일 마약일기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고용노동센터에 가야 하는데 못가겠다. 가야 하는데, 가고 싶지가 않다. 하루라도 빨리 가서 신청해야 하는데, 생활비가 떨어져가는데, 발이 안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슴이 주저앉는 이유는 무엇인가. 집밖을 나가기가 싫다.

현실을 마주하는게 겁나는 것일까. 고용노동센터에 가서 마약 때문에 해고됐다는 얘기를 차마 부끄러워서 어떻게 꺼내야 하나. 또 그렇게 부끄러운 고백을 듣고도 실업급여 지급을 거절당하면 어쩌나. 본인 과실로 해고된 거라 실업급여 지급이 거부된다고 전화상담원은 말했었다. 마약으로 인한 해고도 본인 과실로 해석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좌절할 상황을 마주하러 스스로 걸어가는게 너무나 두렵다. 안대를 낀 눈에 두려움이 가득하다. 좀더 걸어가면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다. 뒤에서는 걸음을 떼라고 야단이지만, 그러다간 죽을 지도 모르는데 발을 어떻게 떼나. 안그래도 하루 하루 겨우 버티며 살고 있는 목숨. 조금이라도 더 주저하다가 죽으면 안될까.

하지만 통장에 남은 돈은 점점 떨어져 갈 것이다.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리려면 이렇게 자포자기 하고 있으면 안된다. 한달에 꼭 백만원씩 넣어드리고 싶다. 지난 10년을 그렇게 해드렸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하고 싶다. 연로하신 부모님 봉양은 내 의무이자 기쁨인데. 평생을 가난하셨는데 노년의 삶마저 가난하면 그건 내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다.

부모님께서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고통없이 죽는 법을 자꾸 찾아보게 된다. 그러다 부모님이 머릿속에 떠올라 그 생각을 오래하지 않게 된다. 내일이라도 용기를 내어서 꼭 고용노동센터를 가보자.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글 / 허재현 기자의 마약일기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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