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책>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이야기
#산하의오책
.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이야기
.
원래 잘하는 게 많지 않은 인간이라 남부러운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운동신경은 나무늘보 수준이고 낙서는 대마왕이었지만 그림실력은 개발괴발을 면치 못하였으며 손재주는 마누라한테 천하제일 똥손이라고 욕먹는 처지에다가 춤의 세계로 가자면 고장난 로보트 수준이니 아니 그렇겠는가.
.
신이 문득 내 앞에 나타나시어 딱 재주 하나를 내리겠다고 하신다면 무엇을 고를 것인가. 물론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림 그리기 능력을 달라고 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이야기> 총 4권 같은 만화책을 삽시간에 읽어내린 지금 같은 때라면 말이다. 나도 그림 재주만 있다면 만화를 그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
어려서 내게 세상을 알게 해 준 매체 중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는 이원복 선생이 그린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이었다. 나는 그 책에서 마약 밀수가 무엇인가를 알았고, 동경 긴쟈를 알았고, 히틀러의 콧수염을 처음 보았고, 2차대전을 접했으며, 유럽인들이 저마다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라는 걸 이해했고, 심지어 "좀 다른 종류의 이탈리아 공산당" 즉 유로꼼까지 배웠다. 심지어 초등학교 1~2학년 때였다.
.
이처럼 전혀 생경한 주제를 접할 때 만화는 큰 힘이 된다. 아이들에게 독서의 힘을 길러 주기 위해 학습만화를 절대 보여 주지 않는다는 부모를 만났을 때 아 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뒤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유다. "저 양반 어려서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도 안봤구만"
.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이야기> 1-4권도 그런 종류와 위상의 책이라 할 만하다. 동남아 한 번쯤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이지만 정작 그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를 가이드의 설명 이상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런 분들은 짧은 여행 좋았던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지르는' 게 좋으실 것 같다.
.
베트남 다낭에 다녀온 사람들은 왜 그곳이 그리 휴양지로 각광받았는지를 새삼 깨우칠 것이고, 하롱베이의 절경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세계 최강을 이미 13세기에 물리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돌아볼 수 있고, 인도네시아의 발리를 다녀온 분들은 네덜란드의 침공에 맞서 발리의 귀족들이 벌였던 '발리에서 생긴 일'을 돌아볼 수 있다. 지금은 호치민이 된 사이공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앙코르와트의 나라의 캄보디아의 우리나라 닮은 역사는 또 어떤지...... 영화 <왕과 나>의 율 브리너를 흉내내어 이렇게 외치게 되는 것이다. "Et cetera Et cetera Et cetera.
.
'없으면서 있는 척' '별 거 없으면서 잘난 척'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데 익숙한 대한민국 사람들이라지만 사실상 가장 문제는 아는 척조차 하지 못하면서 알려고도 하지 않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아는 척하려면 노력이라도 하는데 '몰라도 되는 것'이 정당화되면 알려고 하는 노력조차 사라지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나라들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니 '아는척'이나 할 수 있을까.
.
'몰라도 된다'고 생각하기에는 그 땅은 너무 넓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살며, 동북아시아의 대륙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우리 역사와는 상대가 안되는 '글로벌' 히스토리가 넘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처절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느낄 수 있다.
.
아는 만큼 보이는 건 우리 문화유산 뿐만이 아니다. 이제 코로나 풀리고 동남아 여행길 열리면 모르긴 해도 수십만의 한국인들이 무더기로 동남아로 흘러들어갈 텐데 가족여행이든 골프여행이든 이 책 한 번 읽고 가시면 대단한 '인텔리'인 '척', '동남아 박사'인 '척'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그거 과시하시라는 말이 아니다. 아는 척이라도 하려면 발바닥이라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을 알 수 있다. 그 첫걸음이 아쉽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

태국여행을 참 좋아하는데, 꼭 읽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