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세이] 자수보의 창의성과 조각보의 창의성

in #kr6 years ago (edited)

자수보와 조각보.jpg

사건


   꽤 오래 전 외국인 친구들과의 모임 자리에서였다. 특별한 인연으로 뭉쳐진 각별한 자리는 아니었고, 단순히 어학 목적상 모이게 된 설거운 만남이었다. 이런 모임은 으레 형식적인 대화가 오가고 서로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기 마련인데, 마침 그때의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대학을 기웃거리려던 참이라, 자연스럽게 내 진로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로 떠올랐다.

“법학과를 나온 네가 왜 다시 공대를 들어가려는 거야?”

   당시로서는 비단 이 친구들 뿐 아니라 어딜 가든 자주 듣는 질문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결정이 그렇듯, 회사를 그만두는 데에도 여러 이유가 있었고, 공대를 선택한 이유도 여러가지 있었다. 나는 잠시 무슨 이유를 댈까 머리를 굴리다, 자리의 성격상 대외적으로 그럴듯한 답변을 하기로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창의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고, 내 자신도 언제나 창의적인 문제 해결을 추구하고 있어. 적성을 고려했을 때 공학이 잘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

   적성을 찾아간다는 데 뭐라고 토를 다랴. 틀에 박힌 말이면서도 호기로운 대답이었다. 그런데 그 때 한 친구가 이의를 제기했다.

“공학은 창의적인 일이 아니야. 그냥 이미 주어진 방식들로 문제를 해결할 뿐이지. 창의적이라는 것은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드는 예술가들에게 어울리는 말이야.”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지점에서 날아든 딴죽이었다. 순간 나의 두뇌가 휘청였다. 영어 ‘creative’라는 단어와 우리말 ‘창의적’이라는 단어 사이에 의미의 차이가 있던가. 재빠르게 콜린스 영영사전을 검색해 보았다.

  1. A creative person has the ability to invent and develop original ideas, especially in the arts.
  2. Creative activities involve the inventing and making of new kinds of things.
  3. If you use something in a creative way, you use it in a new way that produces interesting and unusual results.

   내가 영어가 부족한 탓인지 creative는 내가 생각하는 ‘창의적’과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대체 왜 공학은 창의적이지 않은가? 창의적 공학 설계(creative engineering design)라는 수업도 있지 않나. 나는 이에 대하여 그녀와 몇 마디 더 나누었으나, 뜬금없는 어휘 논쟁은 우리 대화의 핵심이 아니었으므로 어느새 어물쩍 화제가 넘어갔다. 주한 미군이라던 스무살 미국 청년의 이야기라든지, 초보 영어 강사의 한국 적응기 등 어쩌구 저쩌구.

   다양한 주제의 한담이 이어졌지만, 여태 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은 대화는 그녀의 ‘창의성’ 발언이었다.

사고


   한국어와 영어에서 오는 차이가 아니라면, 대관절 그녀는 왜 공학을 창의적인 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혹시 그녀가 공학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를 테면, 수리공이나 정비공과 같이 기존의 제품을 손보는 기술자들에 국한해 공학을 이해하고 있다든지, 모던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처럼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조립을 담당한 노동자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든지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무지 탓으로 돌리기엔 어딘가 탐탁지 않았다. 이에 대해 그녀와 몇 마디 더 나눈 대화에서 그녀는 분명 공학에 수학적 원리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러한 원리를 풀어나가는 것 또한 전혀 창의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더욱이 그녀는 공학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학업에 관련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언어에서 오는 차이도 아니고, 직업에 대한 오해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생각해 볼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사전적 의미와는 상관없이, 그녀가 단어 creative에 부여한 의미와 내가 creative에 부여한 의미가 달랐던 것이다. 합리적인 추론이다.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끼리도 말다툼의 근원에는 항상 용어 정의의 불일치 문제가 끼어있지 않던가. 그러면 그녀가 생각하는 창의성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말을 돌이켜 보건대, 공학을 “이미 주어진 방식들로 문제를 해결할 뿐”이라며 창의적인 일에서 제외시켰던 데에서 그녀가 가진 창의성의 정의를 짐작해 볼 수 있을 듯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그녀가 배제한 창의성에 정확히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내가 떠올린 문제의 해결 방식은 언제나 이미 다른 영역에서 적용되고 있던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봐도 내 경우는 조금 심했다. 그녀가 창의적인 작업으로 꼽았던 그림만 보더라도 그러했다. 나는 하얀 도화지 위에는 아무것도 그려내지 못한다. 단순히 그림 실력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심상 자체가 없다. 어린 시절 미술 시간만 되면 나는 얼어붙어 있었다. 그렇다고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한 때는 단지 그림 실력이 없어 그런가 싶어, 잘 그린 그림 위에 미농지를 대고 수십 장을 따라 그려도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은 하얀 도화지 앞에서 헛수고와 같았다. 결국 중학생 이후로는 미술 자체에 공을 들이기보다, 미술 부장이 되어 육체 노동으로써 성적을 받아내고자 했다.

   다행히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나는 그녀가 창의성에서 배제시킨 그 능력, ‘이미 주어진 방식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나름 괜찮았다. 서로 달라 보이는 사건에서 유사성을 찾고 해결 방식을 유추하거나, 기존의 사물들을 조합하는 일은 곧잘 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릴 적엔 어디 발명반에 추천되어 방과후 수업을 들으러 가기도 했고, 종종 관련된 대회에 대표로 내보내지기도 했다(아이러니한 것은 그 중 하나가 ‘창의력 경진 대회’였다). 실은 지금도 연상, 유추, 조합은 내 창작활동의 가장 큰 기반인데, 내가 처음으로 스팀잇에 쓴 과학 에세이는 양자역학, 경제학, 그리고 진화론이었고, 최근의 연재인 사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도 한 수학 문제에서 출발해 지동설과 상대론적 전자기학을 연결짓는 글이었다. 특히 잡지식이라는 코너는 대놓고 이 같은 능력을 활용하려고 고안한 코너였는데, 음식에서 영화로 그리고 영화에서 만화로, 글은 상관없어 보이는 소재들을 한 글로 엮어냈다. 2편을 쓰며 다음 편도 바로 구상해 두었지만, 현재로서는 백지에 활자를 적어 넣는 능력이 부족해 3개월째 보류 상태인 코너이기도 하다.

   이쯤하니 그녀가 말하던 ‘창의성’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녀가 생각했던 창의성이란 티 없는 하얀 천에 자수를 놓아 완성하는 자수보였고, 내가 생각했던 창의성이란 따로 존재하는 조각들을 모아 아름답게 배치하는 조각보였던 것이다. 누군가는 일러스트레이터나 포토샵으로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내지만, 나는 똥손이 그림을 그리는 법에서처럼 파워포인트로 아이콘들을 주섬주섬 모아 그림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꽤나 직접적인 비유이다.

   그런데 나나 그녀의 정의와는 별개로, 정말로 창의성은 자수보의 창의성과 조각보의 창의성으로 구분될 수 있는걸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다른 사람들도 결국은 어디선가 보았던 것들 잘 조합하고 있음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는 내 손의 한계로 인해 심상이 제약받고 있음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내가 단순히 출력장치가 없는 컴퓨터인지, 혹은 GPU까지 없는 저사양 컴퓨터인지는 다른 컴퓨터와 비교를 해보아야 알 수 있을 텐데, 타인의 뇌를 들여다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답답하고 얄궂다.


   대문 이미지로 사용된 자수보와 조각보는 19세기 조선의 것입니다. 내용과 별개로 둘 다 참 예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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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는 모방에서부터 시작되죠!!!
저도 조각보 스타일이라.. ㅎㅎㅎ 여기저기서 훔쳐서 내걸로!!

잘 훔치면 라이언 킹 같은 명작이 될 수도 있죠!ㅎㅎㅎㅎ

창의적이라는 건 여러가지 의미로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저도 저의 창의성에 대해 고만해보게 됩니다.
조각보 예쁘네요. :)

감사합니다. 조각보는 또 조각보의 매력이 있죠!^^

나는 자수보와 조각보 사이에 있는듯ㅋ 자수보로 그림을 그리면 항상 비슷한 패턴만 그려서 조각보같이 이것저것 참고해서 적당히 따라그려야 다른 스타일이 나오더라구요.
그리고 창의성이라는건 사실 조각보에 더욱 가깝다고 생각하네영ㅋ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다 있고 우리는 그저 모방하고 재해석하고 섞고 그뿐입니다. 마치 요리전에 식재료들 준비하는 그런 기분이죠. 요리가 맛있으면 성공아닌가요. 마이크로소프트풍 그림도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죵

스윗한 댓글이네영ㅎㅎ 찡여사님은 보면 확실히 나보다 큰 자유로움이 느껴져요. 자수보적인 느낌 그러한 필링.

창의성이 어떤의미였건간에 사람마다 발달정도가 다른거겠죠. 뇌를 훈련시키면 되긴할텐데 시간이 문제죠. 요즈음 세상은 경쟁우위를 위한 효율성에 강조를 두다보니 적성을 잘 찾은 사람이 우위에 있는거겠죠.

개인적인 생각인데 공학은 응용에 가까운거 같습니다. 그러나 그속에서도 창의적/창발적 응용이 가능하지요. 잠과깸 왕자님처럼말입니다.

저는 수학풀이마저 창의성이 요구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러자면 왜 예술가적 기질과 수학은 거리가 먼지, 좀 이상해지더고요. 창의성이란 말이 그저 개별적인 능력들 사이에서 추상화된 결과로, 실재하는 개념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어디선가 본거 같은데 위대한 예술가는 위대한 수학자라고 하였던거 같아요. 사실 음계가 수로 표시할수 있잖아요. 그리고 동양의 율려는 수학이에요. 수리철학이지요. 그리고 이게 삶과 절대로 떼어놓을수 없는 거지요. 그래서 공자님이 예악을 아주 중시하셨죠.

개인적으로 창의성이란게 다른게 아니라 영감spirituality라고 생각됩니다. 추상화된 정신 세계를 실재하는 개념으로 현실화시킬수 있는 사람이 창의성을 발현시키는 거겠죠. 음악가뿐만 아니라 발명가도 그런 류의 사람이구요. 공학자는 응용application에 전문성이 발휘된것 같구요. 이것도 일종의 창의성이겠지요. 그리고 marketing하는 사람들은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주는 시장 시스템 엔지니어겠지요. 모두 창의성에서 벗어날수 없겠지요.

저는 그녀의 창의성 기준에 반대합니다. ㅋㅋㅋㅋ

기획자를 예를 들어보면 ... 기획자는 이쪽 저쪽 요쪽에 있는 일들을 얇게 전문가랑 말통할 정도만 알고 그 이쪽 저쪽 요쪽을 잘 버무려서 무언가를 만들어 냅니다. 그 한사람이 없다면 만들어 질 수 없는 것이겠지요. 수학도 여러 법칙들이 있어서 숫자를 공식에 넣으면 답이 툭 나오겠지만 그 법칙들을 잘 이용해서 새로운 것들을 또 만들어 낼 수 있으니 얼마나 창의적이란 말입니까. ㅋㅋㅋㅋㅋㅋ

그냥 그녀의 무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시는게 나을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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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녀의 제한적인 정의에 반대하지만, 사람마다 자신이 설정한 기준이 꽤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란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과정 또한 그렇고요ㅎㅎ

사람마다 자신이 설정한 기준이 꽤 다르다는 점

이런 걸 흥미로워 하는 사람이 없는게 슬픈 현실인거죠... 대부분 자기 기준.만. 맞다고 생각하니까요. ㅋㅋ

저도 조각보 같은 사람이어서인지 자수보 같은 사람들이 부러워요! 공학은 둘째치고, 음악을 연주해도 정석대로 치는 클래식이 변칙적인 재즈에 비해 훨씬 편해서요.

정말 자수보 같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살고있을까요. 저는 음악도 미술도 영 손방이라 부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