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와 히토시의 책들을 읽고 - 일본인 철학자들의 대중철학서, 철학을 삶에 적용하는 방법

in #kr-book26 days ago

최근 대중철학서를 꽤 많이 읽고 있다. 그중에서도 유독 일본인 철학자들이 쓴 책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일본이 비교적 일찍 서양 철학을 받아들였다는 점도 있겠지만, 어려운 학문이나 사상을 일반 독자들이 읽기 쉽게 풀어내는 문화가 잘 발달해 있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원서를 그대로 읽기보다는 일본어로 번역하거나 일본인의 관점에서 다시 풀어낸 책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중철학서의 종류도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최근 재미있게 읽고 있는 저자들로는 오가와 히토시, 하타케야마 소, 기시미 이치로 등이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오가와 히토시의 『탁월한 생각은 철학에서 시작된다』와, 이 책의 일종의 연습문제집이라고 할 수 있는 『당연한 것들을 의심하는 100가지 철학』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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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오가와 히토시의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내가 상당히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AI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AI를 자신의 업무를 보조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AI가 대부분의 실무를 수행하고 인간은 오히려 AI를 관리하거나 보조하는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인간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나는 그 답 중 하나가 철학에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객관적인 자료를 충분히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사고하면 비교적 올바른 답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시대라면 이런 사고방식은 매우 강력하다.

하지만 앞으로의 시대는 조금 다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아무리 논리적인 사고를 잘한다고 해도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지부터 결정해야 한다.

AI는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점점 더 뛰어나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능력만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일 것이다.

여기에서 철학의 역할이 생긴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철학을 '개념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기존에 존재하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개념과 관점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철학이라는 것이다.

오가와 히토시 역시 철학적 사고를 통해 인간은 AI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죽음을 의식한다. 이러한 인간만의 경험과 실존적 문제에서 출발하는 사고는 단순한 논리적 추론과는 다른 차원의 사고가 될 수 있다.

결국 철학은 단순히 철학자들의 이론을 공부하는 학문이 아니라, 상식을 의심하고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사고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궁극적인 목적은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다.

철학은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는 연습이다

『탁월한 생각은 철학에서 시작된다』와 『당연한 것들을 의심하는 100가지 철학』이 재미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들은 수많은 철학자의 사상과 이론을 길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하나의 철학적 사고방식이나 방법론을 짧게 소개하고, 그것을 일상생활에 적용해볼 수 있는 질문이나 연습문제를 던져준다.

각각의 내용이 길어야 몇 페이지 정도이고, 이어지는 연습문제도 비교적 간단하다. 그래서 오히려 좋다. 하루에 몇 페이지씩 읽고, 출퇴근길이나 산책을 하면서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식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을 '공부'하기보다는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하게 만들어주는 책에 가깝다.

예를 들어 칸트의 인식론을 생각해보자. 칸트의 철학에서는 우리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 구조를 통해 세계를 경험한다는 관점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물 그 자체를 완벽하게 알 수 없으며,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에는 인간의 인식 방식이 개입되어 있다.

책에서는 이러한 철학적 관점을 단순히 설명하는 데서 끝내지 않는다. 만약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지금 인식하고 있는 사물은 어떻게 달라질까? 글자를 손으로 쓰던 시대에서 타이핑하는 시대로, 그리고 앞으로는 눈이나 생각만으로 글을 입력할 수 있는 시대로 변화한다면 우리의 인식과 생활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처럼 감각과 인식의 변화를 직접 상상하게 한다. 철학 이론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철학자가 던졌던 질문을 자신의 삶에 가져오는 것이다.

익숙한 것을 해체해보기

또 하나 흥미로운 예가 데리다의 탈구축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물이나 개념, 사회의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하나씩 해체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이를 역사에 적용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 서술 역시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건에서 항상 주연으로 등장했던 인물과 조연으로 등장했던 인물의 위치를 뒤바꿔보는 것이다. 만약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주변부에 있던 사람의 관점에서 같은 사건을 다시 서술한다면 어떨까?
같은 사건이라도 전혀 다른 의미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런 연습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수많은 선택과 관습의 결과일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을 한 번 해체해보는 것만으로도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다른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철학을 지식이 아니라 도구로

오가와 히토시는 이 외에도 『똑똑한 나를 만드는 철학 사용법』, 『바닥난 뇌력을 끌어올리는 생각의 기술』, 『일 잘하는 사람은 철학적으로 생각한다』, 『철학으로 시작하는 여유로운 아침』 등 철학적 사고를 일상과 업무에 적용하는 책들을 많이 썼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상당히 실용적인 철학을 지향한다. 물론 이런 책들이 철학을 학문적으로 깊게 공부하기 위한 책은 아니다. 철학사나 개별 철학자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당연히 원전이나 철학사 개론서가 더 적합할 것이다.

하지만 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이런 방식이 더 좋은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철학자의 이름과 이론을 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철학자가 세상을 바라보았던 방식으로 한 번 직접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철학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것

개인적으로는 『탁월한 생각은 철학에서 시작된다』와 『당연한 것들을 의심하는 100가지 철학』을 함께 읽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한 권은 철학적 사고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다른 한 권은 그것을 직접 연습할 수 있게 해준다.
무엇보다 부담 없이 조금씩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하루에 한두 가지 주제를 읽고 잠시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가 평소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던 것들을 한 번 의심해보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기존의 개념을 뒤집어보고, 전혀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보는 것. 어쩌면 이것이 철학을 공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AI가 점점 더 많은 지식과 논리적 사고를 대신해주는 시대가 될수록,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존재하는 답을 빠르게 찾는 능력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을 질문할 것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탁월한 생각은 철학에서 시작된다』와 『당연한 것들을 의심하는 100가지 철학』은 철학에 대해 깊이 공부하기 위한 책이라기보다,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만들어주는 책이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고, 책에서 던지는 질문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본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달라진 시선이 조금 더 창의적이고, 조금 더 긍정적인 삶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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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
연구와 업무와 잡다한 일처리 중에 이런 책을 읽을 시간을 내시네요.
beo님은 너무나 진지하심. ㅋㅎㅎ

생각보다 읽을 만한 책이에요! 한번에 다 볼 필요 없고 조금씩 봐도 좋을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