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 - 지성사로 보는 민주주의 혐오의 역사 by 김민철
이 책은 민주주의가 오늘날처럼 당연한 정치 체제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오랫동안 공포와 경멸의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현재 민주주의는 보편적 정당성을 획득한 정치 원리로 여겨지지만,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치사상가들은 민주정을 위험한 체제로 보았다.
먼저 저자는 민주주의를 논하기 위해 '국민'과 '인민'을 구분한다. 국민(nation)은 국가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며, 인민(people)은 국가 형성 이전에도 존재하는 정치 공동체를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북한과 중국의 영향으로 '인민'이라는 단어가 다소 이념적인 뉘앙스를 갖게 되었지만, 정치학적·역사적 맥락에서는 민주주의의 주체를 설명할 때 국민보다 인민이 더 적절한 표현일 수 있다. 따라서 책에서도 인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저자는 또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민주주의'라는 표현보다 '민주정'이 고대적 의미에 더 가깝다고 설명한다. 민주정은 단순히 국가의 주인이 인민이라는 원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실제 통치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정부 형태를 의미한다.
고전적인 정치 체제 분류에 따르면 정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 군주정: 한 사람이 통치
- 귀족정: 소수가 통치
- 민주정: 다수가 통치
이 기준에서 보면 오늘날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대부분의 공직을 선거가 아니라 추첨으로 선출했다. 장군직과 일부 재정 관련 직위를 제외하면 관직은 추첨으로 정해졌고, 최고 행정관인 아르콘 역시 추첨으로 선발되었다. 임기는 보통 1년이었으며 동일 직책의 반복 수행도 제한되었다. 이는 정치가 특정 엘리트의 전문 영역이 아니라 시민 전체가 번갈아 수행해야 하는 공적 의무라는 인식에 기반한 것이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선거가 민주적이고 추첨이 비민주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아테네인들은 오히려 선거가 능력 있는 소수를 선별하는 귀족정적 제도라고 생각했다.
플라톤은 민주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민주정이 지나친 자유를 허용하여 방종으로 흐르고, 결국 대중 선동가가 등장해 참주정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철학적 지혜를 갖춘 철인이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민주정에 비판적이었다. 다만 플라톤처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으며, 다수의 지배가 공동선이 아닌 사적 이익 추구로 변질될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는 법에 의한 통치와 혼합정체를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했다.
로마는 군주정·귀족정·민주정 요소가 결합된 혼합정체로 이해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고전적 공화주의는 모든 시민이 직접 통치에 참여하는 체제라기보다, 덕성과 능력을 갖춘 시민들이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따라서 공화주의는 민주정보다 오히려 귀족정적 요소를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다. 근대 정치사상은 자연법 사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홉스가 말하는 자연법은 인간 이성이 발견한 보편적 규칙이다. 인간은 자기 보존을 추구해야 하며, 자신의 생명을 파괴하거나 생존 수단을 박탈하는 행위는 자연법에 위배된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가 곧바로 민주주의를 정당화한 것은 아니었다. 흥미롭게도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루소조차 대규모 국가에서 민주정이 실현되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는 『사회계약론』에서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작은 도시국가가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즉 루소는 인민주권을 강하게 주장했지만, 현대적 의미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사상가는 아니었다.
오늘날 계몽주의는 민주주의의 우군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몽테스키외는 권력분립을 주장했지만 민주정을 이상적인 체제로 보지 않았고, 볼테르 역시 인민의 정치 참여보다 계몽된 군주에 의한 개혁을 기대했다. 그는 교육받지 못한 대중의 정치적 판단을 신뢰하지 않았다. 즉 계몽주의자들 역시 민주정 자체에는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특히 콩도르세는 고대 아테네식 직접 민주정보다 대표자를 선출하는 대의제를 민주주의의 새로운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민주정은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직접 법을 만드는 체제가 아니라, 선출된 대표들이 의회에서 시민 전체의 의사를 표현하는 체제였다. 이 과정에서 민주정과 공화정이 결합한 현대적 대의민주주의의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프랑스는 혁명, 나폴레옹 제국, 왕정복고를 거치며 여러 정치 체제를 경험했고,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의 형태가 정착되었다.
저자는 민주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민주정은 보통 사람의 목소리가 통치를 좌우하는 정부 형태이다."
결국 이 책의 핵심은 민주주의가 단순히 선거나 의회라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누가 통치하느냐의 문제이며, 평범한 사람들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민주주의가 인류가 오랫동안 꿈꿔 온 이상이라는 통념을 뒤집는 데 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몽테스키외, 볼테르, 심지어 루소에 이르기까지 서양 정치사상의 거장들 상당수가 민주정을 불신했으며, 현대 민주주의는 바로 그러한 민주정 혐오의 전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의미있는 책 읽으셨네요.
두꺼웠을텐데요.
의외로 이 책은 짧았습니다. 이 책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보다는 훨씬 읽을만한 책이었습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계도 있다고 하겠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민주주의는 인민이 중심이 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면, 그 이후 영미적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씨앗이 다른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네. 사실 본문에서는 길어질까 봐 자세히 쓰지 않았지만, 책에서도 영국식·미국식 민주주의와 프랑스 혁명 계열의 민주주의가 서로 다른 계보를 가진다는 점을 간단히 언급합니다.
다만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역사가 단순히 한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영국과 미국의 경우에는 재산권 보호, 법치주의, 의회주의, 권력 제한 같은 자유주의적·공화주의적 전통이 강했고, 프랑스 혁명은 인민주권과 정치적 평등을 더 강하게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영미식 민주주의를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프랑스 혁명 전통을 '민주적 공화주의' 또는 '급진 민주주의'의 계보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말씀하신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표현도 이런 맥락에서 등장하는 것이고요.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체제는 사실 이 두 전통이 어느 정도 결합된 형태라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선거, 의회, 법치주의, 권리 보장 같은 영미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주권이 국민(혹은 인민)에게 있다는 프랑스 혁명적 원리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나의 명확한 정치 체제로 이해하는 것과 달리, 과거 유럽에서는 민주주의가 반드시 특정한 제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사회세력과 정치적 요구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그 의미 역시 계속 변화해 왔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민주주의가 하나의 단일한 사상이 아니라 자유주의, 공화주의, 인민주권론 등이 오랫동안 충돌하고 타협하면서 형성된 결과물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세한 설명 가능합니다. 저도 최근 미국을 위시한 서구의 민주주의가 보이고 있는 문제점의 근원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라 관심이 있었는데 책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저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