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이야기 21.

in #krsuccess22 days ago (edited)

길을 걷고 있었다. 이 길은 자전거와 킥보드가 다닐 수 없는 보행로다. 거의 매일 걷는 길이다. 갑자기 비둘기 대여섯 마리가 길 가운데로 날아 들어왔다. 저 앞에서 걸어오던 20대 정도의 여성이 비둘기들을 보고 흠칫 놀라면서 멈춰 섰다. 그녀는 우물쭈물 잠시 서 있다가 방향을 휙 틀어 옆길로 돌아간다. 비둘기 공포증인 것 같다.

의외로 비둘기를 싫어하는, 아니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비둘기>에 이 ‘공포증’이 꽤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쥐스킨트도 비둘기 공포증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묘사가 섬세하고 사실적이다.

10여 미터 정도 걸어가자 ‘비둘기 노인’이 벤치를 잡고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노인은 언제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나타난다. 그가 이 길에 나타나면 비둘기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 그를 따라온다. 그가 매일 비둘기들에게 듬뿍 먹이를 주기 때문이다.

그가 운동하고 있는 벤치 바로 뒤에는 구청에서 붙인 ‘비둘기 먹이 주기 금지’라고 쓰인 현수막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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