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간

in #krsuccess2 months ago

은행에 갔다. 오프라인 은행에 언제 갔었지. 거의 2년 가까이 된 것 같다. 거의 20년 동안 다녔던 곳. 그리고 마지막으로 갔던 은행이 분명 여기가 맞는데 문을 밀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낯설다. 인테리어가 싹 바뀌었고 앉는 방향도 달라졌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도 은행 업무를 보러 은행에 방문한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다. 오전 10시.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대부분 노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노인들도) 휴대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앉아 있다. 번호표를 뽑고 사람이 없는 맨 구석 자리에 앉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2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들어왔다. 튀지 않고 평범한데도 뭔가 자유로운 느낌을 주는 옷차림이라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 그 여성은 번호표를 뽑고 창구 바로 앞자리에 앉은 다음 가방에서 종이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종이책.이다. 내 은행 업무를 마치고 나오면서 슬쩍 책 표지를 봤다. 소설이었다.

몇 년 전에. 코로나로 모두 마스크를 쓰던 그때. 버스에서 한 젊은 남자가 종이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책 제목이 ‘주식으로 돈 왕창 버는 방법’ 같은 거였다. 종이책으로 소설이나 시를 읽는 사람을 공공장소에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 서구권 젊은 세대들에게 종이책 읽는 문화가 퍼지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이곳도 그 ‘유행’이 들어온 걸까. 아니면 그냥 어쩌다 우연히 보게 된 것일지도. 어쨌든 종이책을 읽는 모습은 오프라인 은행에 가는 것보다도 낯설고, 신기해 보이기까지 한다. 문득, 8~90년대에 죽간을 펼쳐 읽는 사람을 봤다면 지금 느낀 생경함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ic159sz.jpg

Coin Marketplace

STEEM 0.29
TRX 0.12
JST 0.032
BTC 63316.73
ETH 3077.03
USDT 1.00
SBD 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