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 11. 그냥 가던 길 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수인의 눈에 한 노인이 들어왔다. 노인은 건너편 도로 끝에서 자전거를 타고 느릿느릿 수인 쪽으로 다가왔다. 꿈틀거리는 시커먼 구름 덩어리 같은 것들이 노인을 에워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세히 보니 시커먼 구름은 수십 마리의 비둘기 떼였다.
노인은 자전거에서 내려 공원 보행로로 들어가는 좁은 길 문턱에 멈춰 섰다. 늘어진 점퍼 주머니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길바닥에 과자 부스러기를 뿌렸다. 비둘기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뒤이어 횡단보도를 건넌 수인은 흙먼지와 비둘기들을 피해 최대한 눈을 가늘게 뜨며 그 길을 지나갔다. 비둘기 공포증이 있는지 길을 지나던 한 여성이 소스라치며 찻길로 피했다. 수인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비둘기>를 떠올렸다. 쥐스킨트 역시 비둘기 공포증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묘사가 탁월했었다.
노인은 자전거를 끌고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벤치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맨몸운동을 시작했다. 운동하는 노인의 시선 앞에 현수막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비둘기 먹이 주기 금지. 비둘기 먹이 주기 행위로 이웃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비둘기가 스스로 먹이를 찾아 생태계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OO구청 OO행정과> “
하루 루틴이 비슷한지, 그날 이후 수인은 그 노인을 일주일에 두세 번꼴로 마주쳤다.
어느 날, 수인이 그 좁은 길을 지나는 순간 노인이 바로 앞에서 먹이를 뿌렸다. 수인의 눈에 비둘기들이 일으킨 흙먼지 알갱이가 파고들어 왔다. 수인은 걸음을 멈추고 노인에게 말했다.
“저, 선생님. 사람이 다니는 좁은 길 위에 먹이를 뿌리면 불편하니 바로 옆 풀밭 안쪽에 뿌리면 어떨까요.”
수인의 말투와 표정은 평소대로 무감했다. 짜증이 섞이진 않았으나 상냥하지도 않았다. 노인은 얼굴을 찌푸리고 손사래 치며 대답했다. “그냥 가던 길 가~”
수인은 예의 그 무심한 표정으로 노인을 5초 정도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니, ‘구경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5초는 꽤 긴 시간이다. 노인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수인은 예전에 이런 표정을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고 할 말을 하긴 했지만, 뭔가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입가의 씰룩임.
5초 뒤, 수인은 아무런 전조 없이 몸을 움직여 무감하게 노인을 스쳐 지나갔다. 노인은 순간 몸을 움찔하며 뒷걸음쳤다. 어차피 수인은 처음부터 노인을 설득할 마음 따위는 없었다. 그저 자신이 ‘불편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뒤로도 노인은 여전히 그 길바닥에 먹이를 뿌렸고, 비둘기 먹이 금지 현수막 앞에서 운동을 했으며,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했다. 노인을 보지 못한 날에도 그 길 위에 흩어져 있는 과자 부스러기 흔적을 보며 노인이 지나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도 수인은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걷는다. 그러다 문득 그 노인을 본 지 꽤 오래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한 달? 아니면 석 달? 노인이 다녀간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예전과 달리 그 많던 비둘기들도 줄어들었다. 수인은 언제부턴가 그 길 위에 노란색 플라스틱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동안 표지판에 쓰인 문구를 읽지는 않았다. 수인은 잠시 멈춰 서서 그 노인이 과자 부스러기를 뿌리던 길 위에 세워져 있는 표지판을 읽는다.
“이곳에 음식물 쓰레기를 투기하면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OO구청 OO행정과> “
노인의 흔적이 사라지고 나서 이 표지판이 생겼을까. 이 표지판이 생기고 나서 노인의 ‘음식물 투기’가 사라진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