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

in #krsuccess2 days ago (edited)

수인은 사십 대 중반이 훌쩍 넘은 어느 날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길을 걸을 때 마주 오는 사람을 피하는 건 언제나 자신이었다. 그저 찌질한 피해의식인 걸까, 아니면 이 망상이 사실일까. 수인은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예전에도 우측에 붙어 걸었지만, 수인은 그날부터 도로교통법 제8조 4항을 더욱 철저히 준수하며 우측통행을 고집했다. 언제나 자신의 왼편에 상대가 지나갈 충분한 공간을 남겨두었다. 하지만 이후 십 년의 기록은 수인의 망상이 사실임을 증명했다. 수인은 59명의 인간과 부딪쳤고, 83명과 어깨를 스쳤으며, 충돌을 피하기 위해 132번이나 걸음을 멈추거나 속도를 줄여야 했다.

피해의식이 아니었다. 수많은 인간들이 길 위에서 앞에 걸어오는 수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밀고 들어왔다. 더 기이한 것은, 직각으로 교차하며 지나칠 때조차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부딪칠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무리하게 수인의 앞을 가로질러 가려 한다는 점이었다. 뒤에서 추월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유 있게 수인의 뒤편으로 돌아가면 될 것을, 굳이 아슬아슬하게 앞을 스치듯 가로질러 갔다. 그건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앞길을 막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무의식적인 결기로 무장한 행위처럼 보였다.

심지어 길 오른편에 바짝 붙어 가만히 서 있을 때도 인간들은 수인을 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길가에 비쭉 튀어나온 전봇대를 치고 지나가지는 않았다. 전봇대는 비키지 않아도 그 존재를 존중받았다. 수인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이 전봇대보다 못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대체 전봇대가 나보다 나은 점이 뭐지? 수인은 쉰다섯 살 생일날, 전봇대가 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