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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2020

2026년의 첫 소설이다. 특이하게 제목 끝에 쉼표(,)가 붙어 있다. ‘시선’으로부터 시작된 가족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은 섬세한 장치다. 첫 페이지에는 삼대에 걸친 가계도가 나온다. 등장인물이 많아 집중이 필요해 보였다. 『백년의 고독』을 읽을 때처럼 가계도를 따로 출력할까 고민했지만, 한국 이름은 외우기 쉬우니 일단 시작해 보기로 했다. 물론 중간중간 가계도가 그려진 페이지를 들춰야 했다.

소설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박완서의 21세기 버전 같다고나 할까. 전체적으로 재치 있고 발랄한 분위기지만, 그 안에 담긴 주제와 소재는 묵직했다. 민간인 학살, 여성이 겪는 차별과 폭력, 인종차별, 생태 비판 등이 곳곳에 깔려 있었다. 이런 무거운 주제를 경쾌한 묘사로 풀어낸 덕분에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를 이런 방식으로도 쓸 수 있구나 싶어 감탄했다.

특히 남성은 경험하기 힘든, 아니 사실상 경험할 수 없는 ‘화수’의 에피소드에 더 쉽게 몰입했던 것 같다. 머리를 허리까지 기르고 다녔던 시절의 짧은 경험이 떠올랐다. 길거리에서 여성으로 오인당하며 겪었던 여러 유형의 폭력을 통해, 여성과 남성이 겉보기엔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부나마 체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