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허

in #krsuccess5 days ago (edited)

집 밖으로 나갔다. 영하 3도까지 ‘오른’ 길거리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인간은, 아니 나는 어쩜 이렇게 간사한지. 하지만 이런 적응력이야말로 인간의 ‘강인한’ 면모 중 하나라고들 한다.

얼마 전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었다. 3년 동안 아우슈비츠에 갇혔던 정신의학자의 실제 경험을 다룬 기록이다. 그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노동 가능한 도구’로 선별되어 가스실행을 면했고, 끝내 살아남았다. 그의 부모와 형제, 아내는 모두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우리는 우리 몸이 자신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장 기관이 자체의 단백질을 소화시켰고, 몸에서 근육이 사라졌다.”

그는 영하 15도의 추위 속에서 가스실로 끌려간 수감자의 낡은 옷을 입은 채 얼어붙은 땅을 팠다. 묽은 수프와 빵 한 조각으로 연명하고, 밤새 피를 빨아대는 이와 벼룩을 견디며 3년을 버텼다.

그는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인간이라는 종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범죄를 묵묵히 기록했다. 그의 기록은 타인의 고통을 안전한 곳에서 거리를 두고 지켜보며 값싼 위안을 얻는 ‘빈곤 포르노’ 같은 것이 아니다.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주어진 상황’이 아무리 끔찍하더라도 ‘의미를 찾는 인간의 의지’를 지닌 인간의 존엄은 훼손될 수 없다. 그의 기록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겸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