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병의 이야기(52)
<대통령 각하 압록강수 잡사 보십시요(18)>
그날의 춘천전투의 결과부터 말하자면(후일에 때늦어서) 세계전투사를 바꾼 6.25 춘천전투라 이름하여 알리기 시작하였다. 춘천시에 쳐들어온 인민군의 제2사단은 견갑이병이라 정예화한 병기를 갖춘 강한부대로서 김일성이가 격찬한 부대라 한다. 부대명도 능력평가도 모두 후일에 알았으며 아직 생포한 적병 1명도 없고 아군 보병도 없기 때문에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그 인민군의 2사단의 병력을 나 혼자 포병 관측장교의 의무로써 춘천시의 명산 봉의산 301고지가 육감으로 최적소라 보았고 경각을 다투는데 달리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올라가자 OP(관측소)로 정하였다. 올라가 보니 시야가 헌하며 전망이 "삼팔선" 부근 춘천호로 가는데까지 잘 보였다. 나는 관측사격 준비를 시작하였다. 어느 누가 301고지로 올라가라, 사격하라는 지시할 사람도 없다. 오롯이 관측장교의 나는 귀소본능이었다. 적의 1개 사단 규모 병력 50% 정도의 숫자의 병력을 4~5시간 만에 박살했다. 즉, 섬멸 포살 하였다. 전과보고 하니깐 믿지 않는다. "포대장 이만호 대위님"의 전화로 "한 2개 대대 병력쯤 되겠지"... 아닙니다. 숫 천명입니다. 탄피를 보고 말씀하세요. 하고 통화를 한적이 있다. 이 춘천 벌판 전투에서는 아군은 단일병의 피해도 없었다. 그것은 전선에는 아군은 단 일병도 없었기 때문이다.
민간측에도 단 한건의 물물 피해도 없었다. 그것은 민간 안에 적병이 있을 것 같아서 쏘지 않았다. 한편 적 2사단은 춘천시가 공동인줄로 알고 즉, 춘천시가 조기에 피난 철수 한줄로 여기고 동시에 춘천시 앞과 적의 진격하려는 사이는 넓고 넓은 푸른 허허벌판은 한삽만 파도 물이 고인다. 천연 늪지대로 동내 명칭도 무슨무슨 높이라 부르는 곳이 여러군데다 여의도 2~3배 될까 누구나 그렇게 보거나 단정한다. 지금은 소양호수 일대다.
인민군은 처음엔 병력 3~400정도 진격하다가 평야다하고 속전속결로 공격하는 절호의 찬스로 보고 부대 상호간 경쟁을 붙였는지? 구역을 나누였는지? 병력을 일시에 횡대열로 투입 파도처럼 마구 밀려오는 적의 공격은 넓은 푸른벌판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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