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3)

제2항 중공군 개입 직후의 제반 정세
20만 이상의 대병력으로서 취하여진 한국전에 대한 중공군의 불법 침입은 종전에 가까운 한국의 전국을 돌변하게 하는 동시에 세계를 또다시 경악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이와 같은 공산 블럭의 전쟁 확대에 따르는 심리적 의식은 위기 일발 중에 놓여 있는 세계에 대하여 새로운 세계 전쟁 즉 제3차대전을 유발할 위기가 내재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세계가 새로운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당시 국련에 있어서는 미국을 위시한 자유세계 각국이 취한 태도는 자못 강경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한국 문제를 중심으로 한 국련 각국의 태도와 국련의 제 결의가 어떻게 움직였는가에 대하여 개관할 필요가 있다. 중공군 개입 직후인 단기 4283년 11월 29일 미 국무장관 애치슨은 방송을 통하여 전 국민에게 “사악한 중공 침입에 대하여 미국은 그 부하된 책임을 완수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라고 부르짖었고, 동 30일에는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거듭 이러한 사태에도 “한국을 포기하지 않겠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원자폭탄 사용까지도 고려하겠다”라고 언명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12월 1일 애치슨 국무장관은 또 “미국민은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여 새로운 일대군비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라고 언명한 후 국련의 지지와 북대서양동맹 참가국 전 지역을 통한 조직의 추진과 미국 및 그 연합국에 의한 군사력의 급속한 창설 등의 6개 항목을 들어 국민에게 지지를 요청하였고, 또 트루먼 대통령은 국회에 대하여 178억 54만 달러의 국방비 추가 예산을 요청한 바 있었다. 이러한 미국의 강경정책과 트루먼 대통령의 원자폭탄 사용 선언은 국련 각국과 공산 세계를 당황하게 하였으며, 이에 따라 영국 자신도 불안을 느끼어 애트리 수상은 먼저 프랑스 수상을 만나 협의한 후 도미하여 12월 4일 트루먼 대통령과 회견하고 유명한 양거두 회담을 개시하였는데, 이 회담은 수차에 걸쳐 행하여졌으며, 양국 회담 결과는 피차의 합의를 보게 된 바, 對중공 전투 계속, 유화정책 절대 부당, 서구 방어 재편성 등의 결론에 도달하게 됨으로써 영국은 미국과 협조하여 한국 전란, 세계평화에 대한 공공 투쟁을 계속하기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당시 트루먼, 애트리 두 사람은 공동성명서까지 발표한 바 있었다. 이와 같은 양국의 성명은 전 세계에 대하여 평화에 대한 욕구를 일층 강조한 데 불과하였으며 어디까지나 한국전에 대한 국지화를 기도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를 전후하여 아시아, 아랍 13개국인 아프가니스탄, 버마, 이집트, 인도네시아, 이란, 아랍, 레바논, 파키스탄, 필리핀, 남아라비아, 시리아, 네팔 등등 중공 및 북한 괴뢰 정권에 대하여 38선 이남에 진격하지 말고 평화적 해결을 구하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한편, 미, 영, 프, 쿠바, 노르웨이, 에콰도르 등의 서방 6개국은 중공군의 한국 철퇴에 대한 요구안을 국련에 제출하여 소련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2월 7일 정치위원회에서 압도적인 가결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의 이러한 성명은 적에게 아무런 반응과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였으며, 이에 앞서 대만 문제 토의(실은 무기 연기)에 참가차 국련에 초청된 중공 대표 오수권 일행이 때마침 미국에 도착한 것을 기회로 국련 사무총장 및 국련 인도 대표와의 사이에 수차에 걸쳐 밀담이 행하여졌으나, 역시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12월 12일에는 아시아 아랍 13개국은 계속하여 국련 정치위원회에 정전을 위한 3인 위원회(정전위원회)의 설치와 극동의 당면 문제해결을 위한 평화회담 개최의 양 건을 제출하였던 바 동 13일에는 전자만이 가결되어 총회는 3인 정전위원을 임명하고 사무를 개시하게 하였다. 그 후 3인 위원회는 2회에 걸쳐 중공에 대하여 한국전에 대한 정전을 요청하였으나 이는 거부되었고 익년인 단기 4284년 1월에 들어가서 제3차로 신 정전안 5항목을 정치위원회에 제출하여 공산 블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월 13일 가결을 보게 되었다. 이처럼 국련은 한국전에 대한 평화적 해결을 희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디까지라도 중공에 대한 한국전의 불법 개입을 규탄 또는 그 책임을 추궁하였던 것이다. 당시 가결된 신 정전 안의 내용은

  1. 직접 정전
  2. 영구평화를 위한 휴전 중의 행동
  3. 적당한 단계에 외국 군대의 철퇴
  4. 휴전 중 국련의 한국 행동 승인
  5. 대만에 있어서 장래 국련의 중국 대표 등을 포함한 극동 문제 해결을 위하여 미, 영, 소, 중공을 포함한 회합의 설치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