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48)
제3절 제2차 서울 철수 작전
- 서울 시민 및 한국 정부의 소개
단기 4284년 1월 3일 적이 서울 동북방 의정부에 침입하자 다음날 4일 정부 각 기관은 서울을 다시 철수하여 부산을 임시수도로 정하였고, 국회 역시 부산으로 이전하였다. 이에 앞서 일반 시민도 6.25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하여 전부 한강 이남으로 피난하게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울 시민뿐만 아니라 한강 이남의 광범위한 거리의 주민까지도 무참(無慘)한 전화(戰禍)를 염려하여 멀리 남쪽으로 후퇴하게 하였으니 혹한 풍설을 무릎 쓰고 주야를 가리지 않고 남부여대(男負女戴) 줄을 지어 남하하는 피난민의 참경(慘景)과 고경(苦境)은 필설에 절한 바 있었다.
이번 후퇴에 있어 특히 주의할 것은 앞서 10월 중에 서울 시민을 비롯하여 각 지방민에게 시민증과 도민증을 발부한 행정적인 처치가 있었으므로 이 증명서를 갖지 아니한 자에 대하여는 간첩 또는 적성혐의자(敵性嫌疑者)로 간주하고 엄중한 취조를 행하였다.
또한 청장년에 대하여는 제2국민병에 편입시켜 모두 남으로 인솔하고 내려왔던 것인데 그 편성이 급박한 상황 하에 착수된 만큼 제반 시설 준비의 부족으로 수용과 급양과 그리고 처우에 소홀한 바 많았던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사례로서 후일에 소위 국민방위군 사건이 발생된 것으로도 수긍(首肯)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