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zzan문학상공모작품- 수필] 딸기의 배신

in #steemzzang2 day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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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딸기를 먹었다.
딸기의 달콤 새콤한 맛이 입안으로 퍼지면서 피로를 잊게 한다. 그리고 딸기맛 같은 안락함에 사로잡힌다. 나도 모르게 의자에 등을 기대면서 이대로 잠에 빠질 것 같았다.

엄마는 냉장고를 몇 번이나 열었다. 칸칸이 들여다 보고 씽크대 배수구망까지 살펴 보았다. 완전범죄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엄마는 당장 딸기를 사와야 한다며 아빠를 재촉했다. 아마 그날 집에 누가 오기로 되어있고 엄마는 손님을 위한 요리에 딸기가 필요했던 것 같았다.

일요일 아침 나는 그녀와 약속이 되어있었다. 어젯밤에 미리 싸놓은 배낭에 몰래 꺼낸 딸기 팩을 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약속장소는 집에서 십분정도 거리였다. 그렇지만 그날은 축지법을 써서 훨씬 빠른 시간에 도착했다. 그녀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깨끗한 샘물이 있는 곳에서 딸기 꼭지를 따고 깨끗이 씻어 다시 팩에 담았다. 준비한 이쑤시게도 가지런히 놓고 이어폰으로 네버엔딩 스토리를 들으며 그녀를 기다렸다.

물 위에 작은 돌멩이가 만드는 왕관이 솟아 올랐다. 그리고 샘물보다 맑은 얼굴이 다가왔다. 뽀뽀를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딸기팩을 열었다. 이쑤시게가 있었는데 그녀가 손으로 집어 나에게 준다. 나도 손이 먼저 나갔지만 “아~~~” 하라고 하는 눈짓에 그대로 해야할 것 같아 입으로 받아먹었다. 눈앞에서 별들이 날아다녔다.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세상에는 이런 행복도 있구나... 지금까지 인류가 사용하는 미사여구가 다 떠오르며 하루를 채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후두둑 후두룩 갑자기 풀포기에서 무언가 튀는 소리가 들렸다.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도 몰랐다. 비가 온다는 예보도 못 들은 것 같았고 우산은 당연히 없었다. 무조건 뛰어야 했다. 지나는 길에 본 조그만 가게를 향해 뛰었다. 빤히 보이는 거리였지만 우리는 둘다 비 맞은 생쥐꼴로 가게에 들어섰다.

컵라면과 빵, 그리고 콜라를 샀던 것 같다. 빗물이 떨어지는 파라솔 밑에서 컵라면을 기다리며 이름도 모르는 빵을 먹다 컵라면에 빵을 찍어 먹었다. 그래도 맛있었다. 킬킬 거리며 먹다 보니 그녀의 비에 젖은 머리에서 수증기가 올라가는 모습에 갑자기 슬퍼졌다. 막연하게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해 줄게 없었다.

황금 같은 고3의 황금 같은 아침 시간을 쪼갠 첫 데이트는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그날은 다시 이어지고 말았다. 가게앞 테이블에 놓고 온 딸기를 발견한 주인 아주머니께서 그 딸기를 우리 집으로 가지고 왔다. 딸기를 받아든 엄마가 그간의 나의 행적을 맞추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딸기는 장물이 되었고 나의 절도행각은 엄마를 분노하게 했다. 더욱이 그날 도서관이 아닌 여친을 만나고 있었다는 거짓말까지 포함되어 나의 죄는 딸기의 진홍빛 보다 짙은 주홍 글씨를 새기고 말았다.

물론 엄마는 두 번 다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조건으로 면죄부를 주었고 한동안 딸기만 보면 나는 얼굴이 화끈 거렸다. 우리는 둘 다 대학을 가면서 멀어졌고 지금은 장물이 아닌 내 돈 내고 산 딸기라는 신분이 다르고 충분한 거리를 지나온 겨울의 미각을 음미하고 있다.